伝統文化紹介 Relationship

卑弥呼の「鬼道」は道教(五斗米道)か?

以下、某サイト引用(抜粋)

1.さて最近、といっても何年か前になるが、NHKで邪馬台国が畿内にあったのではないかと言う説を様々に検証されていた。

その際に次のような説を紹介されたのである。

「1」中国の正史である三国志に「鬼道」と言う言葉が何箇所か使われているが、それは日本の邪馬台国と中国の同時代の「五斗米道」(最初に教団化された道教の1つ)を指している。

つまり卑弥呼は「五斗米道」に仕え衆を惑わしていたのだ。

つまり三国志とは邪馬台国を知るためにも根本的な歴史書になるわけだが、そこで「鬼道」と言う言葉が日本の邪馬台国と中国の同時代の「五斗米道」以外に見当たらないとされている。

なお、魏王朝はのちに晋王朝に替わった。これは「禅譲」(前の王朝の皇帝が、息子に統治能力が無いと判断した場合、部下の有徳者に統治権をゆだねること)によって行われたため、「三国志」を書いた晋の歴史家は魏王朝に好意的である。

「2」そこで卑弥呼の「鬼道」と中国道教の「五斗米道」が同じものであるとすると、北九州か畿内かのどちらかに「五斗米道」の痕跡が強く残っているはずである。

それをNHKに出演された畿内説の古代史家は発見されたと言う。

それが箸墓周辺で発見された2千7百個の桃の種と割れた銅鐸の破片である。

1.これがどうして「五斗米道」の痕跡ということになるのか?

まず五斗米道においては鏡と剣が魔力を持つものとして重視される。

たとえば北極星の神格化である最高神の「天皇大帝」は権威の象徴として剣と鏡の2種の神器を持つとされる。

わが国の天皇神道自体が五斗米道の影響を強く受けていることは明確であろう。

だが重要なことは割れた銅鐸の破片があったということだ。

NHKでは実験もされたのだが、叩いても銅鐸は簡単には割れない。

かなりの高温にして大きな力を加えることでやっと割ることが出来る。

つまり銅鐸の破片とは故意に銅鐸を破壊する儀式のため行った可能性が強い。

実は当時の畿内では凶作が続いていたと言う。そこで従来の宗教であった銅鐸信仰が権威を失い、中国から入れた五斗米道に仕えよく衆を惑わす卑弥呼が畿内で国王になったのだという。

つまり銅鐸信仰から今日の天皇制が三種の神器に入れている銅剣信仰への飛躍があったのではないかと言う。

1.次に2千7百個の桃の種である。桃もやはり五斗米道で重視されている魔力を持った食べ物である。

北九州ではこれほどの桃の種は発見されていないのに畿内では発見された、これは重いという。

1.そこでこれについて検討するわけだが、邪馬台国の卑弥呼が五斗米道を信仰していたとしても一向に構わないと思う。

現に北九州では古くから銅剣と銅鏡が信仰されていた。

これは別に五斗米道の影響ではなく、東アジアで広く銅剣と銅鏡が信仰されていた影響である

(ただし畿内では同時期に銅鐸と銅鏡への信仰が行われていた)。

しかしこれは卑弥呼が五斗米道を信仰していたとしても矛盾はない。

1.又卑弥呼が魏の皇帝からもらったと言う百枚の銅鏡は三角縁神獣鏡と呼ばれている。

つまり鏡の裏側に神と獣の像が描かれているわけだが、この「神」は全て道教の神々である。

中には「西王母」「東王父」という名前の書かれたものもあり、崑崙山に住む不老長寿の道教の神々であることが分かる。

当時の魏は儒教と法家と兵家が中心の国家であった。仏教や道教は禁止はされていなかったが強い統制がかけられていた。

だから魏の皇帝がわざわざ邪馬台国に道教の神々の鏡を送ったのは日本側の希望だった可能性は決して少なくないと私は考える。

つまり果たして五斗米道であったかどうかは別にして、邪馬台国が既に何らかの中国道教の影響を受けていたことは可能性が大きい。

ちなみに魏の曹操は道教関係の神社を大量に取り壊している。たとえば黄帝と老子を祭った「濯竜宮」や済南付近の6百以上の祠を取り潰している。

曹操は日本の織田信長と同じで、非合理的なものは信じないし、人々の目を開かせようといつも試みる人であった。

これが魏の伝統であり、この傾向はさらに次の王朝である晋にも(初期には)受け継がれた。

(注)要するに魏はイデオロギー上は儒教国家だったのだから、儒教で重んじられる孔子や顔回、あるいは天帝の像を鏡に描けば良かったのである

(後漢から魏への王朝の交替も儒教思想に基づき「禅譲」形式で行われた)。

三角縁神獣鏡に儒教関係の像でも仏像でもなく道教の神々が描かれていたことは重要な点である。

1.ただし全く中国の「五斗米道」の直輸入のままのことを卑弥呼がやっていたとは考えにくい。

と言うのは当時の中国と日本では社会状況が違いすぎ、宗教とはそのときの社会が求めるため、無意識の構造に応えるため発生あるいは定着するものだからである。

当時の中国では、宦官(かんがん)が勢力を強め後漢が滅びる直前であり、支配階級の搾取が強まって農村は荒れ果てていた。

税を払えない農民が追及を恐れ大量に流民になった。

このような社会では2つの宗教へのニーズが発生する。

第1に社会不安から神経症となり、心身症(心の問題から発生した体の様々な病気)患者が大発生することだ。

これは信頼する宗教指導者が祈祷をすれば直る。

第2に農村と言う旧共同体を離れた流民が大量発生したが、彼らは何らかの絆の強い共同体を求めたのである。

新興宗教教団に組織されることでこれも解決する。

1.こうして中国で初めて道教の教団が作られた。

まず最初に現れたのが張角を指導者とする「太平道」である。

彼らが農民反乱を組織し、「黄巾の乱」を引き起こし、のちの3国の皇帝となる曹操・劉備や孫権の父親である孫堅らと戦って短期間で滅ぼされた。

1.次に現れた道教教団こそが問題の「五斗米道(ごとべいどう)」で張魯を指導者とする。

また五斗米道は「天師道」とも呼ばれる。

張魯はまじないで病気を治し、教団の武力で漢中地方(長安と四川省の中間に位置する盆地)を支配。政教一致の王国をつくった。

ここが卑弥呼と似ているのである。

そして約30年間にわたり漢中を支配したが、215年A.D.に魏の曹操に攻められて降伏した。

このときのことが三国志に特筆されているが、張魯は宝物庫を封印し、これは国家のものだ、自分が持ち出すわけにはいかないとしてそのまま逃げた。

こう言うことがこの時代できわめてまれだったため曹操は大いに人柄をたたえ、彼を鎮南将軍に任命。彼の5人の子供も全て大名に取り立てた。

しかも彼の娘を自分の息子の嫁にした。

こうして五斗米道は太平道と違い生き残りに成功し、のちに現れる全ての道教教団は全てこの派の影響を受け継ぐものとなった。

1.何れにしても「鬼道」と言う言葉が「三国志」には邪馬台国と「五斗米道」にしか使われていないのだとしたら(そう言われているが)、やはり三国志の編纂過程でこの両者に強い関連性があると見られていた可能性は高い。

つまり一般的には「鬼道」とは、中国の正統政権の信仰する以外の神を祭る宗教の意味である。

なお「鬼神」と言う言葉もあり、これは祖先の霊のことである。「鬼神」と「鬼道」を混同してはならない。

また三国志以前の歴史書にやはり「鬼道」と言う言葉が使われており、これは文字通りの「祖先の霊が通る通り道」の意味であると言う。

つまり一般的には「鬼道」とは、中国の正統政権の信仰する以外の神を祭る宗教の意味で使われており、だから中国である宗教を正統なものとしていたのに急にそれを異端として弾圧する場合「鬼道」のことばが使われる。

たとえば446年A.D.に中国北半を支配していた蒙古族の立てた「北魏」の太武帝は、大規模な仏教弾圧(「廃仏令」)を行うが、このとき太武帝はみことのりで仏教を「鬼道」と呼んでいる

(「魏書」釈老志/三国志の「魏書」とは別物)。


1.つまり邪馬台国も「五斗米道」もどちらも宗教国家を建てた。しかも道教の影響を邪馬台国は受けていた。

また「五斗米道」で重視される鏡や剣を魔力あるものとして重視していたのである。

これらのことから三国志では邪馬台国と「五斗米道」を一体のものと考え「鬼道」と呼んだ可能性はある。と言うよりもその可能性が強いであろう。

単に「鬼道」がシャーマニズム信仰を意味するなら、三国時代には中国周辺にいくらでもシャーマニズム信仰の種族が沢山いたのに邪馬台国と「五斗米道」だけが特筆される理由が分からなくなる。

だが一方、三国志編纂者が本当に100%邪馬台国と「五斗米道」をイコールのものと考えたならば、単に両者を「鬼道」と呼ぶだけでなくもっと明確に書くはずである。

だからここに強い一体性を考えながらも、いわば邪馬台国は「五斗米道」の血を分けた子供のようなものだとでも考えていたのではないか。

1.邪馬台国と「五斗米道」の関連性を明らかにされた点は邪馬台国畿内説を唱える学者の方々の功績であると私は思う。

また本当に伝わったのは「五斗米道」だったのか?もう1つの同じ時期に成立した「太平道」の方ではなかったかも考えるべき点である。

というのは、「太平道」は華南に多く広まった。

「五斗米道」は最初漢中盆地に広まり、のち全土に広がった。

時間的経過を考えると、物理的には日本には太平道のほうが伝わりやすい。

どちらも似たものだったと考えられている(太平道のほうが呪術性が強い)。

引用 了

ネタとしては、何年も前のものだ。

ここで、いくつか気になる点を書く。

1.鏡と剣の信仰は、辰王のものが古いとの説がある。

 おそらく、道教は、辰王からなんらかの影響をうけたものと考える。

2.銅鐸が遺棄された件であるが、銅鐸に書かれた絵から大地の豊穣を祝う地母神信仰の祭器であったと考えられる。

 しかし、引用サイトの記述とは逆に弥生時代末期は気候変動の時代であり、気候変動が地母神信仰を終わらせたと考えられる。

3.仏教は応神朝からあったとの説があり、飛鳥時代には蘇我氏が仏教を持ち出した。

 蘇我氏を倒すことにより、天皇は邪魔されることなく卑弥呼以来の道教にもとずく「天皇大帝」(天皇)を自称することができたのだろう。


히미코의 「귀도」는 도교(오두미도)인가?

히미코의 「귀도」는 도교(오두미도)인가?

이하, 모사이트 인용(발췌)

1.그런데 최근, 이라고 해도 몇년전이 되지만, NHK로 사마일국이 기나이에 있던 것은 아닐까 말하는 설을 님 들에 검증되고 있었다.

그 때에 다음과 같은 설을 소개되었던 것이다.

「1」중국의 마사시인 삼국지에 「귀도」라고 하는 말이 몇군데인가 사용되고 있지만, 그것은 일본의 사마일국과 중국의 동시대의 「오두미도」(최초로 교단화 된 도교의 하나)을 가리키고 있다.

즉 히미코는 「오두미도」를 시중들어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삼국지와는 사마일국을 알기 위해서도 근본적인 역사서가 되는 것이지만, 거기서 「귀도」라고 하는 말이 일본의 사마일국과 중국의 동시대의 「오두미도」이외에 눈에 띄지 않는다고 여겨지고 있다.

덧붙여 위왕조는 후에 진왕조에 바뀌었다.이것은 「선양」(전의 왕조의 황제가, 아들에게 통치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을 경우, 부하의 유덕자에게 통치권을 맡기는 것)에 의해서 행해졌기 때문에, 「삼국지」를 쓴 진의 역사가는 위왕조에 호의적이다.

「2」거기서 히미코의 「귀도」라고 중국 도교의 「오두미도」가 같은 것이다고 하면, 키타큐슈나 기나이인가의 어딘가에 「오두미도」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것을 NHK에 출연된 기나이설의 고대사가는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것이저묘 주변에서 발견된 2천 7백개의 복숭아의 종과 갈라진 종모양의 청동기의 파편이다.

1.이것이 어째서 「오두미도」의 흔적이라는 것이 되는지?

우선 오두미도에 대하고는 거울과 검이 마력을 가지는 것으로서 중시된다.

예를 들어 북극성의 신격화인 최고신의 「천황 대제」는 권위의 상징으로서 검과 거울의 2종의 신기를 가진다고 여겨진다.

우리 나라의 천황 신도 자체가 오두미도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는 것은 명확하겠지.

하지만 중요한 (일)것은 갈라진 종모양의 청동기의 파편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다.

NHK에서는 실험도 되었지만, 두드려도 종모양의 청동기는 간단하게는 갈라지지 않는다.

상당한 고온으로 해 큰 힘을 더하는 것으로 겨우 나눌 수 있다.

즉 종모양의 청동기의 파편과는 고의로 종모양의 청동기를 파괴하는 기시키이기 때문에 간 가능성이 강하다.

실은 당시의 기나이에서는 흉작이 계속 되고 있었다고 한다.거기서 종래의 종교인 종모양의 청동기 신앙이 권위를 잃어, 중국에서 들어갈 수 있던 오두미도를 시중들어서 구 사람들을 유혹하는 히미코가 기나이에서 국왕이 되었던 것이라고 한다.

즉 종모양의 청동기 신앙으로부터 오늘의 천황제가 삼종의 신기에 넣고 있는 동검 신앙에의 비약이 있던 것은 아닐까 말한다.

1.다음에 2천 7백개의 복숭아의 종이다.복숭아도 역시 오두미도로 중시되고 있는 마력을 가진 음식이다.

키타큐슈에서는 이 정도의 복숭아의 종은 발견되어 있지 않은데 기나이에서는 발견된, 이것은 무겁다고 한다.

1.거기서 이것에 대해 검토하는 것이지만, 사마일국의 히미코가 오두미도를 신앙하고 있었다고 해도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키타큐슈에서는 옛부터 동검과 청동제의 거울이 신앙되고 있었다.

이것은 별로 오두미도의 영향이 아니고, 동아시아에서 넓게 동검과 청동제의 거울이 신앙되고 있던 영향이다

(다만 기나이에서는 동시기에 종모양의 청동기와 청동제의 거울에의 신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히미코가 오두미도를 신앙하고 있었다고 해도 모순은 없다.

1.또 히미코가 위의 황제로부터 받았다고 하는 백매의 청동제의 거울은 삼각연 중국 고대 거울로 불리고 있다.

즉 거울의 뒤편에 신과 짐승의 상이 그려져 있는 것이지만, 이 「신」은 모두 도교의 신들이다.

안에는 「서왕모」 「아즈마왕부」라고 하는 이름이 쓰여진 것도 있어, 곤륜산에 사는 불로 장수의 도교의 신들인 것을 안다.

당시의 위는 유교와 법가와 효게가 중심의 국가였다.불교나 도교는 금지는 되어 있지 않았지만 강한 통제를 걸칠 수 있고 있었다.

그러니까 위의 황제가 일부러 사마일국에 도교의 신들의 거울을 보낸 것은 일본측의 희망이었던 가능성은 결코 적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즉 과연 오두미도였는지 어떠했는지는 따로 하고, 사마일국이 이미 어떠한 중국 도교의 영향을 받고 있던 것은 가능성이 크다.

덧붙여서 위의 조조는 도교 관계의 신사를 대량으로 무너뜨리고 있다.예를 들어 황제와 노자를 제사 지낸 「헹굼 용궁」이나 제남 부근의 6백 이상의 사를 취해 잡고 있다.

조조는 일본의 오다 노부나가와 같고, 비합리적인 것은 믿지 않고, 사람들의 눈을 열게 하려고 언제나 시도하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위의 전통이며, 이 경향은 한층 더 다음의 왕조인 진에도(초기에는) 계승해졌다.

(주) 요컨데 위는 이데올로기상은 유교 국가였던 것이니까, 유교로 존중할 수 있는 공자나 안회, 있다 있어는 천제의 상을 거울에 그리면 좋았기 때문에 있다

(후한으로부터 위에의 왕조의 교체도 유교 사상에 근거해 「선양」형식에서 행해졌다).

삼각연 중국 고대 거울에 유교 관계의 상도 불상도 아니게 도교의 신들이 그려져 있던 것은 중요한 점이다.

1.다만 완전히 중국의 「오두미도」의 직수입 인 채의 일을 히미코가 하고 있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당시의 중국과 일본에서는 사회 상황이 너무 달라서 종교와는 그 때의 사회가 요구하기 위해, 무의식의 구조에 응하기 위해 발생 있다 있어는 정착하는 것이니까이다.

당시의 중국에서는, 내시(내시)가 세력을 강하게 해 후한이 멸망하기 직전이며, 지배계급의 착취가 강해지고 농촌은 몹시 황폐해지고 있었다.

세를 지불할 수 없는 농민이 추궁을 무서워해 대량으로 유랑민이 되었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2개의 종교에의 요구가 발생한다.

제1에 사회불안으로부터 신경증이 되어, 심신증(마음의 문제로부터 발생한 몸의 님 들인 병) 환자가 대발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신뢰하는 종교 지도자가 기도를 하면 고쳐진다.

제2에 농촌이라고 하는 구공동체를 떠난 유랑민이 대량 발생했지만, 그들은 어떠한 정의 강한 공동체를 요구했던 것이다.

신흥 종교 교단에 조직 되는 것으로 이것도 해결한다.

1.이렇게 해 중국에서 처음으로 도교의 교단이 만들어졌다.

우선 최초로 나타난 것이 장각을 지도자로 하는 「태평도」이다.

그들이 농민 반란을 조직 해, 「황건의 란」을 일으켜, 후의 3국의 황제가 되는 조조·유비나 손권의 부친인 손견등과 싸우고 단기간으로 멸해졌다.

1.다음에 나타난 도교 교단이 문제의 「오두미도(박봉 어때)」로 장노를 지도자로 한다.

또 오두미도는 「오두미도」라고도 불린다.

장노는 주술로 병을 치료해, 교단의 무력으로 한중 지방(장안과 사천성의 중간에 위치하는 분지)을 지배.정교 일치의 왕국을 만들었다.

여기가 히미코와 닮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약 30년간에 걸쳐 한중을 지배했지만, 215년 A.D.에 위의 조조에게 공격받아 항복했다.

이 때의 일이 삼국지에 특필되고 있지만, 장노는 보물고를 봉인해, 이것은 국가의 것이다, 자신이 꺼낼 수는 없다고 해 그대로 도망쳤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이 시대 에서 극히 보기 드물었던 유익 조조는 많이 인품을 기려 그를 진남 장군으로 임명.그의 5명의 아이도 모두 영주에게 등용했다.

게다가 그의 딸(아가씨)를 자신의 아들의 신부로 했다.

이렇게 해 오두미도는 태평도와 달라 생존에 성공해, 후에 나타나는 모든 도교 교단은 모두 이 파의 영향을 계승하는 것이 되었다.

1.어느 쪽으로 해도 「귀도」라고 하는 말이 「삼국지」에는 사마일국과 「오두미도」밖에 사용되지 않은 것이라고 하면(그렇게 말해지고 있지만), 역시 삼국지의 편찬 과정에서 이 양자에게 강한 관련성이 있다라고 보여지고 있던 가능성은 높다.

즉 일반적으로는 「귀도」란, 중국의 정통 정권의 신앙하는 이외의 신을 제사 지내는 종교의 의미이다.

또한 「도깨비」라고 하는 말도 있어, 이것은 조상의 영혼으로 있다.「도깨비」와「귀도」를 혼동 해서는 안 된다.

또 삼국지 이전의 역사서에 역시 「귀도」라고 하는 말이 사용되고 있어 이것은 문자 그대로의 「조상의 영혼이 통과하는 가는 길」의 의미이다고 한다.

즉 일반적으로는 「귀도」란, 중국의 정통 정권의 신앙하는 이외의 신을 제사 지내는 종교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이니까 중국인 종교를 정통인 것으로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것을 이단으로서 탄압하는 경우 「귀도」의 말이 사용된다.

예를 들어 446년 A.D.에 중국 북반을 지배하고 있던 몽고족이 세운 「북위」의 태무제는, 대규모 불교 탄압( 「폐불령」)을 실시하지만, 이 때 태무제는 봐 일김으로 불교를 「귀도」라고 부르고 있다

( 「위서」석로지/삼국지의 「위서」란 별개).


1.즉 사마일국도 「오두미도」도 어느쪽이나 종교 국가를 세웠다.게다가 도교의 영향을 사마일국은 받고 있었다.

또 「오두미도」로 중시되는 거울이나 검을 마력 있다 것으로 해 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일로부터 삼국지에서는 사마일국과 「오두미도」를 일체의 것이라고 생각해 「귀도」라고 부른 가능성은 있다.이렇게 말하는 것보다도 그 가능성이 강할 것이다.

단지 「귀도」가 샤머니즘 신앙을 의미한다면, 삼국시대에는 중국 주변에 얼마든지 샤머니즘 신앙의 종족이 많이 있었는데 사마일국과 「오두미도」만이 특필되는 이유를 모르게 된다.

하지만 한편, 삼국지 편찬자가 정말로 100%사마일국과 「오두미도」를 이콜의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단지 양자를 「귀도」라고 부를 뿐만 아니라 더 명확하게 쓸 것이다.

이니까 여기에 강한 일체성을 생각하면서도, 말하자면 사마일국은 「오두미도」가 피를 나눈 아이와 같은 것이라고에서도 생각하고 있던 것은 아닌가.

1.사마일국과 「오두미도」의 관련성을 밝혀진 점은 사마일국 기나이설을 주창하는 학자의 분들의 공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정말로 전해진 것은 「오두미도」였는가?또 하나의 같은 시기에 성립한 「태평도」의 분은 아니었을지도 생각해야 할 점이다.

그렇다고 하는 것은, 「태평도」는 화남에 많이 퍼졌다.

「오두미도」는 최초 한중 분지에 퍼져, 후전 국토에 퍼졌다.

시간적 경과를 생각하면, 물리적으로는 일본에는 태평도 쪽이 전해지기 쉽다.

어느쪽이나 닮은 것이었다 라고 생각되고 있다(태평도 쪽이 주술성이 강하다).

인용끝

재료로서는, 몇 년이나 전의 것이다.

여기서, 몇개인가 궁금한 점을 쓴다.

1.거울과 검의 신앙은, 진왕의 것이 낡다는 설이 있다.

 아마, 도교는, 진왕으로부터 하등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2.종모양의 청동기가 유기된 건이지만, 종모양의 청동기에 쓰여진 그림으로부터 대지의 풍양을 축하하는 지모신 신앙의 제기였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인용 사이트의 기술과는 반대로 야요이 시대 말기는 기후 변동의 시대이며, 기후 변동이 지모신 신앙을 끝냈다고 생각할 수 있다.

3.불교는 응신조로부터 있었다는 설이 있어, 아스카 시대에는 소가씨가 불교를 꺼냈다.

 소가씨를 넘어뜨리는 것으로, 천황은 방해받는 일 없이 히미코 이래의 도교에도와 부엉이 「천황 대제」(천황)을 자칭 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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