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ソウルは東西南北の山とその間にある平地で城郭が過ぎ去って中広い平地に都市が形成された. 都市の真ん中で東を向けて清渓川が流れるのにその北を北村, 南側を南村と呼んだ. 今の北村は景福宮と昌徳宮の間にある村を示すのにこちらには朝鮮時代高位官僚たちを含めた王族, 士大夫たちが居住する高級住宅街だった.

 一方に南村は衆人や官職がない沒落両班たちがたくさん暮した. 南村は南側に南山があって日の光がよく入らないで雨が降れば地がジルポックゴリでよく乾かなかったからここに住んだ貧しい両班たちは主に下駄をはいて歩いた. 硬い木履き物が底とぶつかってかちゃんかちゃん音がたくさん出て貧しくて芯の強いこの地域両班たちはかちゃん発というニックネームが付いた.

 またナムズブックビョング(南酒北餠)という言葉のあるのに北村は餠をよく作って南村はお酒をよく作るという意味だ. 宴や行事が多かった北村は餠の需要が多かったし貧しかった南村はお酒を作って生計を立てる家が多かったから生じた言葉だ.

 

 近代の開港後に徐徐に外国人と外国資本が入って来ながら外国人居住地が形成された. 日本人たちがたくさん 入って来たがソウル南山の下を中心に居住地を形成した. 南村は徐徐に日本人たちの中心距離(通り)になったし併合後には開発がもっと加速化されて今の明洞や忠武路は当時日本人たちの繁華街だった.

 これに反して朝鮮滅亡後北村の両班たちは沒落して経済的主導権も日本人に奪われて北村は相対的に立ち後れされた朝鮮人たちの住居区域だった. 日製末期に 変わる前まで行政区域も朝鮮人居住地域は 洞で日本人居住地域は 町で分けられていた.

 

 

 

 今の北村は過去有名人と芸術家たちの家たちがあってソウルの名門高等学校たちが位していたし大部分は移転した. 写真は冬恋歌(冬のンナヌ)に出た中央高等学校本館で高麗大学校本館を設計した建築家バク・ドンジンが 1937年に設計こんにちはだった.

 

 北村は現在ソウルで韓屋が一番多く密集した地域なのに朝鮮時代には高級住宅街だった. 北には山があって山から下る清い水が豊かだったし高い丘陵に位して日の光が良い明堂だったし宮廷とも近くて朝鮮の高級公務員たちがたくさん暮した. 朝鮮の滅亡後に彼らは沒落したし大きな住宅は維持することができなくて売れるようになった.

 

 今が韓屋たちは 1930年代から 1960年代に集中的に作られたことなのに当時住宅業者たちが以前の広い住宅の宅地を細かく分割して小型の韓屋たちを大量で作って売った. これら韓屋たちは狭い地に垣根と屋根がお互いに触れ合って過去の公衆写真を見れば幾多の黒い瓦屋根たちが


서울 북촌의 한옥

 

 서울은 동서남북의 산과 그 사이에 있는 평지로 성곽이 지나가고 가운데 넓은 평지에 도시가 형성되었다. 도시의 한가운데로 동쪽을 향해 청계천이 흘러가는데 그 북쪽을 북촌, 남쪽을 남촌이라 불렀다. 지금의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마을을 가르키는데 이 곳에는 조선시대 고위관료들을 비롯한 왕족, 사대부들이 거주하는 고급 주택가였다.

 반면에 남촌은 중인이나 벼슬이 없는 몰락 양반들이 많이 살았다. 남촌은 남쪽에 남산이 있어 햇빛이 잘 들지 않고 비가 오면 땅이 질퍽거리고 잘 마르지 않았기 때문에 여기에 살았던 가난한 양반들은 주로 나막신을 신고 다녔다. 딱딱한 나무 신발이 바닥과 부딪혀 딸깍딸깍 소리가 많이 나서 가난하고 고집이 있는 이 지역 양반들은 딸깍발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또 남주북병(南酒北餠)이라는 말이 있는데 북촌은 떡을 잘 만들고 남촌은 술을 잘 만든다는 뜻이다. 잔치나 행사가 많았던 북촌은 떡의 수요가 많았고 가난했던 남촌은 술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하는 집이 많았기 때문에 생긴 말이다.

 

 근대의 개항 후에 점차 외국인과 외국자본이 들어오면서 외국인 거주지가 형성되었다. 일본인들이 많이 들어왔는데 서울 남산 아래를 중심으로 거주지를 형성하였다. 남촌은 점차 일본인들의 중심거리가 되었고 병합 후에는 개발이 더 가속화되어 지금의 명동이나 충무로는 당시 일본인들의 번화가였다.

 이에 반해 조선 멸망 후 북촌의 양반들은 몰락하고 경제적 주도권도 일본인에게 빼앗겨 북촌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한국인들의 주거구역이었다. 일제 말기에 바뀌기 전까지 행정구역도 한국인 거주지역은 洞으로 일본인 거주지역은 町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지금의 북촌은 과거 유명인사와 예술가들의 집들이 있고 서울의 명문 고등학교들이 위치해 있었고 대부분은 이전하였다. 사진은 겨울연가(冬のンナヌ)에 나왔던 중앙고등학교 본관으로 고려대학교 본관을 설계한 건축가 박동진이 1937년에 설계하였다.

 

 북촌은 현재 서울에서 한옥이 가장 많이 밀집한 지역인데 조선시대에는 고급주택가였다. 북쪽에는 산이 있고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이 풍부했고 높은 구릉에 위치해 햇빛이 좋은 명당이었고 궁궐과도 가까워 조선의 고급 공무원들이 많이 살았다. 조선의 멸망 후에 그들은 몰락했고 커다란 주택은 유지할 수 없어 팔리게 되었다.

 

 지금이 한옥들은 1930년대에서 1960년대에 집중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당시 주택업자들이 이전의 넓은 주택의 택지를 잘게 분할해 소형의 한옥들을 대량으로 만들어 팔았다. 이들 한옥들은 좁은 땅에 담장과 지붕이 서로 맞닿아 과거의 공중사진을 보면 수많은 검은 기와지붕들이 囗匚冂凵의 모양으로 집합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북촌말고도 서울 곳곳에는 이런 주택들이 많았다.

 

 

 이런 개량된 근대한옥들은 대량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전과는 다른 규격화된 벽돌이나 나무, 무늬들을 사용하였고 기존에 주택건축에 많이 사용되던 돌,흙, 나무, 종이에 유리나 벽돌, 금속  등 근대의 새로운 재료들이 적극적으로 사용되었다. 전통이란 것도 기존의 것을 바탕으로 시대에 따라 진화하고 모습이 달라지는 법이다.

 

 

 60~70년대 개발독재시대, 서울은 인구가 급증하였고 면적이 확장되었으며 땅투기와 건설 붐이 일었다. 빌딩과 아파트들이 세워지고 효율과 속도가 강조되던 시대, 서울에는 높은 콘크리트 건물들로 채워졌고 평지 도심에 있던 한옥들은 상당수가 사라지게 되었다. 북촌의 경우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나 궁궐과 가까워 건축 규제가 있었고 중심 도심에서 떨어진 비탈진 구릉에 위치하기 때문에 개발이 느렸기 때문에 타지역보다 많은 한옥들이 남게 되었다.

 

 규제란 것도 개인의 재산침해의 논란도 있었기 때문에 약 20년 전에 완화가 되었는데 이후 연립주택들이 곳곳에 세워지다가 다시 한옥보존지구로 지정이 되어 현재의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제력이 높아지면서 다시 전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마당으로 햇빛이 떨어지고 비 오는 소리가 들리는 자연친화적인 한옥이 선호되기 시작했는데 원래 서민들이 살던 낙후된 지역이었던 이곳에 공방과 갤러리, 카페나 식당 등 여러 문화시설이 생기고 많은 관광객들이 오게 되면서 한옥의 금전적인 가치는 상당히 오른 반면 원래의 주민들의 생활이 점차 없어진다는 것은 그렇게 반가운 일은 아니다.

 

 

 언덕 아래 경복궁과 청와대로 가는 길로 이어지는 삼청동의 거리는 곳곳에 한옥을 리모델링한 색다른 모습의 건물들과 여러 분위기 좋은 가게, 문화시설이 밀집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아름다운 거리다.

 

 한옥은 예전에는 일상적인 주거지였고 얼마전에는 낙후된 주거지였으며 지금은 선호되는 주거지가 되었다. 한옥은 시대에 따라 모습이 변해가며 기능도 달라지고 있다. 어떤 물건이라도 가치는 머물러 있지 않으며 시대나 관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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