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日本歴史上一番血なまぐさかった 明


에도시대의 대화재 - 명력의 大火(한글판)

일본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明暦의 대화재 중에서 오늘은 浅草御門에 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日本歴史上一番血なまぐさかった 明暦の大火の中で今日は 浅草御門に対して調べます.

『むさしあぶみ』より、明暦の大火当時の浅草門。牢獄からの罪人解き放ちを「集団脱走」と誤解した役人が門を閉ざしたため、逃げ場を失った多数の避難民が炎に巻かれ、塀を乗り越えた末に堀に落ちていく状況。
「사주 등자」에, 메이레키의 대화 당시의 아사쿠사문.감옥으로부터의 죄인 해방을「집단 탈주」라고 오해한 공무원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도망갈 장소를 잃은 다수의 피난민이 불길에 감겨지고 담을 넘은 끝에 굴에 떨어져 가는 상황.

『むさしあぶみ』は、浅井了意による仮名草子で、万治4年(1661年)刊行。以後何度か刊行された。明暦3年(1657年)1月に発生した明暦の大火のことを記しており、被害状況を伝える図版も見られる。
「사주 등자」는, 아사이 료이에 의한 에도시대 유행한 통속소설로, 만치 4년(1661년) 간행.이후 몇 번이나 간행되었다.명력 3년(1657년) 1월에 발생한 메이레키의 대화를 적고 있어 피해 상황을 전하는 도판도 볼 수 있다.

明暦の大火の際、役人が門を閉めてしまったために神田・日本橋側から浅草の方へ避難しようとしていた一般民衆が行き場を失い、2万人以上もの犠牲者を出すという大惨事
메이레키의 대화때, 공무원이 문을 닫아 버렸기 때문에 칸다・니혼바시측으로부터 아사쿠사에 피난하려고 하고 있던 일반 민중이 갈 곳을 잃어, 2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다고 하는 대참사

【明暦の大火と浅草御門】
明暦三年(1657)の江戸大火の際、囚人の逃走を防ぐため、浅草門警備の役人が門を閉ざしたために一般市民の避難路が断たれ、ここで多くの溺死、焼死者を出した。

「...浅草橋まであとひと跨ぎというところまで来た。湯島のほうから延びて来る火は、もう佐久間町あたりの大名屋敷を焼きはじめたとみえ、横さまに吹きつける風は燻(いぶ)されたように、煙と熱気に充ちていた。おせんは絶えず幸太の背中にいるお祖父さんに話しかけ、元気をつけたり、励ましたりしていたが、このとき人の動きが止まって、前のほうから逆に、押し戻してくるのに気が付いた。「押しちゃあだめだ、戻れもどれ」「どうしたんだ先へゆかないのか」「御門が閉った」
そんな声が前のほうから聞え、まるで堰(せき)止められた洪水が逆流するかのように、犇(ひし)ひしと押詰めた群衆がうしろへと崩れてきた。おせんは幸太の腕へ両手でしがみついた。
명력 3년(1657)의 에도 대화재때, 죄수의 도주를 막기 위해, 아사쿠사문 경비의 공무원이 문을 닫았기 때문에 일반 시민의 피난로가 끊어져 여기서 많은 익사, 불에 타죽은 사람을 냈다.
「. . .浅草橋까지 사람의 발자취가  가까운 곳까지 왔다湯島 쪽으로부터 늘어나 오는 불은, 이제 佐久間町 근처의 다이묘에게 주어지는 택지를 태우기 시작했다고 보여 옆으로 내뿜는 바람은 훈제될 것처럼 , 연기와 열기에 가득했다.오센은 끊임 없이 幸太의 등에 있는 할아버지에 말을 건네 원기를 내게했다, 격려하거나 하고 있었지만, 이 때 사람들의 움직임이 멈추고, 앞쪽으로 부터 반대로, 되밀어 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밀면 좋지 않다,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어디」「어떻게 해서 앞으로 가지 않는 것인가」「御門이 닫혔다」
그런 소리가 앞쪽으로부터 들려 마치 제방에 막힌 홍수가 역류 하는 것 같이, 거세게 밀집한 군중이 뒤로 무너져 왔다.오센은 幸太의 팔에 양손으로 매달렸다.
「幸さん御門が閉ったんですって」「そんなことはないよ」彼は頭を振った、「..なにかの間違いだ、この人数を抛(ほう)って門を閉めるなんて、そんなばかなことが」
「御門が閉まったぞ」そのとき前のほうからそう叫ぶ声がした。「....御門は、閉まった、みんな戻れ、浅草橋は渡れないぞ」
その叫び声は口から口へ伝わりあらゆる人々を絶望に叩きこんだ、沸き立つような喧噪がいっときしんと鎮まり、次いでひじょうな怒りの呶号(どごう)となって爆発した。浅草御門を閉められたとすれば、かれらが火からのがれる道はない。火事は北とと西から迫っている。然も恐るべき速さで迫って来ている。東は隅田川だ、浅草橋はたった一つ残された逃げ口だったのだ。「門を叩き毀(こわ)せ」誰かがそう喚(わめ)いた。「踏み潰して通れ」
するとあらゆる声がそれに和して鬨(とき)をつくった。
「門を毀せ」「押しやぶってしまえ」
それは生死の際に押詰められた者のしにものぐるいな響きをもっていた。群衆は眼にみえないちからに押しやられて、再び浅草橋のほうへと雪崩をうって動き出した。
「행씨 고몬이 닫혔다」「그렇지 않아」그는 머리를 흔들었다, 「. .무엇인가의 실수다, 이 인원수를 내팽겨쳐 문을 닫다니 그렇게 바보같은 일이」
「고 몬이 닫혔어」그 때 앞쪽으로부터 그렇게 외치는 소리가 났다.「. . . .고몬은, 닫힌, 모두 돌아가, 아사쿠사바시는 건널 수 없어」그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는 입으로부터 입에 전해져 모든 사람들을 절망에 두드려 넣은, 들끓는 떠들석함이 잠시 진정되고, 그 다음에 대단한 분노의 노호가 되어 폭발했다.아사쿠사 고몬을 닫을 수 있었다고 하면, 그들이 불로부터 빠져나갈 길은 없다.화재는 북쪽과와 서쪽에서 강요하고 있다.아주 무서운 속도로 임박해 오고 있다.동쪽은 스미다강이다, 아사쿠사바시는 단 하나 남겨진 도망갈 길이었던 것이다.「문을 두드려 부숴라」누군가가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밟아 잡아서 통과할 수 있다」하면 모든 소리가 거기에 화합하고 함성을 만들었다.
「문을 깨뜨릴 수 있다」「밀어 깨부셔라」
그것은 생사 시에 밀어 부쳤던 사람의 필사적인  외침이 있었다.군중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까지 밀리고, 다시 아사쿠사바시 쪽으로 눈사태를 쳐 움직이기 시작했다.

幸太はここの群衆の中から脱けだした。彼には浅草橋の門の閉まった理由がすぐわかった。門の彼方もすでに焼けているのだ。風が強いからみえないが、さっき茅町の通りで見たとき、もう柳原のあたりが赤くなっていた、おそらく馬喰町の本通りあたりまで焼けてきたに違いない。よしそうでないにしても、「御門」という制度は厳しいもので、いちど閉められたらたやすく明く筈はないし、群衆の力ぐらいで毀せるものでもなかった。彼はすばやくみきわめをつけ、けんめいに人波を押し分けて神田川の岸へぬけ、そのまま平右衛門町から大川端へと出て来た。」
『山本周五郎「柳橋物語」』
幸太는 여기의 군중 중으로 부터 벗어났다.그는 아사쿠사바시의 문이 닫힌 이유를 금방 알았다.문의 저 쪽도 벌써 타고 있다.바람이 강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지만, 조금 전 카야마치대로에서 보았을 때, 이제 야나기하라의 근처가 붉어지고 있던, 아마 바쿠로초의 혼도리 근처까지 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좋아 그렇지 않다고 해도, 「고몬 」이라고 하는 제도는 어려운 것으로, 한 번 닫을 수 있으면 용이하게 열릴리는 없고, 군중 힘정도로 깨뜨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그는 재빠르게 물가에 붙여 열심에 인파를 밀어 헤쳐 간다 강의 기슭에 빠져 그대로 헤이우에몬 마을에서 오오카와단으로 나왔다.」

그런데 浅草御門의 참상에 대하여 실록에서는 다르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ところが 浅草御門の惨状に対して実録では違うように記述とあります.

孝宗 19卷, 8年(1657 丁酉 / 청 순치(順治) 14年) 8月 5日(乙亥) 3번째기사
영의정 정태화가 일본 강호의 화재 소식을 전하다           
○ 領議政鄭太和請對, 上召見之。 上謂太和曰: “卿見洪喜男乎。” 太和曰: “臣果見之。 江戶失火, 甚慘云矣。 大槪彼國關白年少, 耽觀戲子, 故執政輩相議, 先設坑塹於一處, 置火藥其中, 佯以觀其戲爲言, 盡聚戲子於此, 而放火於其中, 一城之內, 無遺燒盡。至於避火之人, 沒於城壕而死者, 四十餘萬云矣。” 上曰: “彼國人物極盛云, 天道必如此矣。
”영의정 정태화가 청대하니 상이 불러 보았다. 상이 태화에게 이르기를,
“경이 홍희남(洪喜男)을 보았는가?”
하니, 태화가 아뢰기를,
“신 이 그를 보았습니다. 강호(江戶)에 불이 났는데 매우 참혹했다 하였습니다. 대개 저 나라의 관백(關白)이 연소하여 배우들의 연기 구경을 탐하기 때문에 재상의 무리가 상의하여 먼저 한 곳에 구덩이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화약을 장치해 두었습니다. 그러고는 거짓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구경한다고 말을 퍼뜨려 배우들을 모두 이곳으로 모이게 한 다음 그 속에 불을 놓았는데, 온 성안이 남김없이 모두 타버렸고 심지어는 불을 피하는 사람들이 성의 해자에 빠져 죽은 자가 모두 40여 만 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저 나라 인물이 매우 번성하다고 하였는데 천도가 반드시 이렇게 할 것이다.”

洪喜男
 본 관은 남양(南陽), 자는 자열(子悅)이다. 조선 중기의 역관으로 일본에 6번, 명나라에 두번 사신으로 다녀왔다. 특히 임진왜란 이후에는 대일(對日)교섭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일본에 파견되었고, 그 공으로 1년 동안에 3계급이나 특진하여 50세 전에 숭록대부(崇祿大夫)의 위계에 올라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가 되었다.
本貫は南陽, 字は子悦だ. 朝鮮中期の 譯官で日本に 6回, 明に二度使臣で行って来た. 特に壬辰の乱以後には対日交渉に困難がある度に日本に派遣される, その功勞で 1年の間に 3階級や特進して 50歳の前に崇禄大夫の位階に登って知中樞府事にな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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