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1907 皇宮優と円丘壇

 

皇宮優

1899年に多くの神位を仕えるために円丘壇の北に至恩 8各 3階の建築物として 現在小公洞朝鮮ホテル後にあり史蹟 157号に指定されている.

 

 

円丘壇の精子

高宗が 1897年に皇帝即位式を行った円丘壇は 1913年日製によって破壊されたし, その席には鉄道ホテル(現朝鮮ホテル)が立ち入った.

 

 

1892光戯文

都城東南の方に位した 4うわさの一つだ.
お問い合わせ左右城壁は日帝の時取り払われてから 1975年南に 15m 移されて復元された.

 

 

洪指紋

洪指紋はハンブックムンとも言うのに, 仁王山後便はしっこにあるタングツンデソングの成文だ.
洪指紋門樓と右側の呉間水門は 1921年崩れていたが, 1976年から復元工事を始めて過去原型を捜してみることができる.

東大門

 

小疑問は西小門と呼ばれたが日帝の時もとの通りに工事で完全に破壊されて今はその跡を捜すことができない.

 

創意文科城郭

 

 
ヘファムンと城郭

 

ヒェファムンは東小門だと言うのに, 今の鍾路区恵化洞と三仙洞の間に位している 4うわさ中の一つだ.
1928年道路拡張過程で取り払われてから 1994年元々の位置すぐ側に復元された.
 出処 : ソウル特別市社編纂委員会

 

 

 

都城(仁王山哭声)

 

ソウル 60里まわりを玄武島の蛇のようにくねくねつながって護衛している漢陽の都城は最初南山と北岳山を除き土で城郭を積んだ.

 

これを世宗が皆石で積んだから, 延べ人員 32万 2,400人が動員されて 98日ぶりに完成を見た.
大規模人力動員を通じる短期の工事だった.
 
昔の法道どおり付こうとすると城郭は四角形模様にならなければならないが漢陽の山勢を逆わないで作るとはくねくね酸性になってムルギョルチョッダ. 城郭の基本門戸は東・西・南 ・北の 4大門だったが, 以外にも 4うわさとその外の多くの門があった.
4うわさはヒェファムン・チァングウィムン・小疑問・光戯文だ. 
その中光戯文は水口門(水口門), または時構文(屍口門 : 死骸が出る門)と呼ばれた.
朝鮮時代に人が死ねばその死骸は必ず西の方は西小門で, 東は光戯文で出るようにして, 他の門ではパスす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した.
このために時構文という名前ができたのだ.

 

そして水口門という名称は清渓川が水門近くを通じて性外に流れ出して, 南山の水が光戯文近所をパスして行くと言って付けられた名前だ.
ソウルではコレラなどの伝染病が流行れば患者たちを光戯文の外に出して捨てたりした.
ここに田舍人々は “漢陽へ行ったら水口門石垣のドルがルを掻いて来なさい”と頼んだりしたが, それは光戯文外ドルがルが病魔を退けるのに效験があると信じたからだ.
人々は光戯文と言う(のは)名前より水口門または時構文と呼んだ.
そして ‘悪い願うことは時構文で吹く’と言う言葉もあった.
またすべて死ぬようになった人を ‘時構文順番’と言ったから, 両班はもちろん普通人もこの門で出入りすることを有り難くないように思った.
 
出処 : ソウル特別市社編纂委員会

 

北岳山と景福宮 (遠く見える建物)

 

 

1892年チァングウィムン

チァングウィムンは都城の西北の方門で人々の往来があまり多くなかったし, 主に洗剣亭一帯軍人たちの門戸に活用された.

風水地理上景福宮を押す形勢だと言って通行が閉鎖されたこともあった.
霊鳥 17年(1741)に重建されて今に至る.
 出処 : ソウル特別市社編纂委員会
 
 

 

 

都城西の方城壁

 

 

1890年代普信閣

 

東大門

 

 

 

六朝距離(通り)

 

 

今は消えた書誌とチォンヨンゾング. 清水官

 
立つのは今の西大門区天然洞にあった.
立つのは《韓経知略(漢京識略)》に “蓮華が繁茂で夏季に成安義人々が蓮華見物する所にここが一番だ”と言った.ヨンモッがには天然征夷欄精子があったが, 元々こちらは李へグィ(李海重)という人の別荘であって競技(景気)監営のズングヤング(中営)で使われた. チォンヨンゾング横には高麗時代どの賃金が雨宿りしたという素敵な反松亭(盤松亭)があったと言う.
 この素適なチォンヨンゾング横に日本の初公使館が立ち入ったからすぐ清水官だ. 清水官はソウルに初めて建設された日本公使館で 1880年から 1882年壬午軍乱の時まで使われている途中軍乱の時仏陀消えた.   


한양 사진

1907 황궁우와 원구단

 

황궁우

1899년에 여러 신위를 모시기 위하여 원구단의 북쪽에 지은 8각 3층의 건축물로서 현재 소공동 조선호텔 뒤에 있으며 사적 157호로 지정되어 있다.

 

 

원구단의 정자

고종이 1897년에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던 원구단은 1913년 일제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그 자리에는 철도호텔(현 조선호텔)이 들어섰다.

 

 

1892광희문

도성 동남쪽에 위치한 4소문의 하나이다.
문의 좌우 성벽은 일제 때 헐렸다가 1975년 남쪽으로 15m 옮겨져 복원되었다.

 

홍지문

홍지문은 한북문이라고도 하는데, 인왕산 뒷 편 끝자락에 있는 탕춘대성의 성문이다.
홍지문 문루와 오른쪽의 오간수문은 1921년 허물어져 있었는데, 1976년부터 복원공사를 시작하여 과거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동대문

 

소의문은 서소문으로 불렸는데 일제 때 도로 공사로 완전히 파괴되어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창의문과 성곽

 

 
헤화문과 성곽
혜화문은 동소문이라고 하는데, 지금의 종로구 혜화동과 삼선동 사이에 위치해 있는 4소문 중 하나이다.
1928년 도로확장 과정에서 헐렸다가 1994년 원래의 위치 바로 옆에 복원되었다.
 출처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도성(인왕산 곡성)

 

서울 60리 둘레를 현무도의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져 호위하고 있는 한양의 도성은 애초 남산과 북악산을 제외하고는 흙으로 성곽을 쌓았다.
이것을 세종이 모두 돌로 쌓았으니, 연 인원 32만 2,400명이 동원되어 98일만에 완성을 보았다.
대규모 인력 동원을 통한 단기의 공사였다.
 
옛 법도대로 따르자면 성곽은 사각형 모양이 되어야 하겠지만 한양의 산세를 거스르지 않고 짓다보니 굽이굽이 산성이 되어 물결쳤다. 성곽의 기본 출입문은 동·서·남 ·북의 4대문이었으나, 이외에도 4소문과 그 밖의 여러 문이 있었다.
4소문은 혜화문·창의문·소의문·광희문이다. 
그 가운데 광희문은 수구문(水口門), 또는 시구문(屍口門 : 시체가 나가는 문)으로 불려졌다.
조선시대에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는 반드시 서쪽은 서소문으로, 동쪽은 광희문으로 나가게 하고, 다른 문으로는 통과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시구문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수구문이라는 명칭은 청계천이 수문 근처를 통해 성 밖으로 흘러나가고, 남산의 물이 광희문 부근을 통과하여 나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에서는 콜레라 등의 전염병이 유행하면 환자들을 광희문 밖에 내다 버리곤 하였다.
이에 시골 사람들은 “한양에 가거든 수구문 돌담의 돌가루를 긁어 오라”고 부탁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광희문 밖 돌가루가 병마를 물리치는데 효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광희문이란 이름보다 수구문 또는 시구문이라 불렀다.
그리고 ‘못된 바람은 시구문으로 분다’는 말도 있었다.
또 다 죽게 된 사람을 ‘시구문 차례’라고 했으니, 양반은 물론 보통 사람도 이 문으로 드나드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출처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북악산과 경복궁 (멀리 보이는 건물)

 

 

1892년 창의문

창의문은 도성의 서북쪽 문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그다지 많지 않았으며, 주로 세검정 일대 군인들의 출입문으로 활용되었다.

풍수지리상 경복궁을 누르는 형세라 하여 통행이 폐쇄된 적도 있었다.
영조 17년(1741)에 중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출처 : 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도성 서쪽 성벽

 

 

1890년대 보신각

 

동대문

 

 

육조거리

 

지금은 사라진 서지와 천연정. 청수관

 
서지는 지금의 서대문구 천연동에 있었다.
서지는《한경지략(漢京識略)》에 “연꽃이 무성하여 여름철에 성안의 사람들이 연꽃 구경하는 곳으로 여기가 제일이다”라고 하였다.연못가에는 천연정이란 정자가 있었는데, 원래 이곳은 이해중(李海重)이라는 사람의 별장이었다가 경기감영의 중영(中營)으로 사용되었다. 천연정 옆에는 고려시대 어느 임금이 비를 피했다는 멋진 반송정(盤松亭)이 있었다고 한다.
 이 멋들어진 천연정 옆에 일본의 첫 공사관이 들어섰으니 바로 청수관이다. 청수관은 서울에 처음으로 건설된 일본공사관으로 1880년부터 1882년 임오군란 때까지 사용되다가 군란 때 불타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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