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前掲示物で

1939年上海派遣軍第14丙站病院外科病棟に勤めた陸軍軍医いわゆる分かりなさいデツオ (麻生徹男)が書いた

報告書 (花柳病積極的予防法)に対して調べた

が報告書によると

1939年 北九州から中国上海でひかれて来た慰安婦 100人の中に 80人は朝鮮女性で 20人は日本女性だったが 

女性たちの性病保菌可否を検診して見たら

朝鮮女性は性病が疑心される 者が極少数なのに比べて日本女性は大部分現在急性症状を見せている

と言った

当時 北九州は鉱山科軍需工場が密集された地域で遊郭すなわち公認性売買業店が盛業していたし

公娼私娼合わせて性売買女性たちが約 30万名ほどあったと言う

また隣近には炭鉱があったが炭鉱には貧しい朝鮮人労動者が多かったし

朝鮮人労動者たちの娘たちがいた

日本軍御用商人たちは工場食堂などに就職することができると女性たちを欺いて上海に連れて行って慰安所に入れた

当時 北九州から中国上海に行った日本女性たちは大部分売春業に携わった女性たちだったから

朝鮮人女性たちは大部分売春経験がない一般家庭の少女たちだった

こんな朝鮮女性たちを工場食堂など仕事だと欺いて慰安所に入れて慰安婦生活を強要したから就業詐欺で

犯罪と言うことだ

慰安婦は売春婦というのは日本女性に当たることだろう?

報告書(花柳病積極的予防法)によれば

半島朝鮮人女性たちは年が幼くて初心者(娘)で見える 者が多くておもしろい

一般的に娼婦の質は幼いほど良好だ

戦地に送る娼婦は年が幼い 者を要するのに

年上な日本売春婦は 皇軍将兵たちに送る贈り物で相応しくないと建議している

朝鮮は伝統的儒教社会だった

朝鮮女性たちは着物を口は日本女性たちと比べることができない位   貞操 観念が透徹した

こんな根深い儒教社会朝鮮で慰安婦を募集しながら慰安婦の性格に対して具体的に説明をして公開的に募集するという

のは現実的に不可能な事だったろう

だからまやかしや就業詐欺や誘拐拉致など方法が動員されていたことだ 

慰安婦が売春婦という根拠はどこにあるか

多くの日本人たちは 1944年 10月に作成された報告書 <日本軍戦争虜審問見て 49:韓国人慰安婦  >の内容を根拠で

慰安婦は売春婦と主張をする

報告書には

慰安婦は兵士の便宜のために日本軍隊に属した売春婦または職業的な従軍民間人に異同ではないと書いている

が内容を根拠で慰安婦は売春婦と主張している

ところでランダム洋子 (random yoko)みたいな日本人は報告書の内容で

日本に不利な内容には言及をしなながら巧みに内容を捏造している

報告書には

慰安婦募集方法に対する内容がある

1942年 5月初日本人業者たちは日本が新たに征腹した東南アジアの日本領土に

慰安サービスのための韓国女性たちを募集するために韓国に到着した

が慰安サービスの性格は明らかに説明されなかったし

病院で負傷兵の包帯を巻いてくれるなど病院の一般業務と説明された

見てどこにも韓国女性たちが日本軍隊に属する売春婦で自ら資源をしたという記録はない 

が写真は豪奢な慰安婦生活をしている慰安婦の写真だと多くの日本人から非難を浴びる写真だ

ところでこの写真に対する出処を調べよう 

めがねをかけた人は日本人ルポ作家 <数えるがクオ 千田夏光>だ

写真を持っている人は韓国人放送 pdだ

数えるがクオ (千田夏光 )は 1962年毎日新聞本社出版局長に委嘱を受けて写真資料を整理した

2万 5.000点もなる日本軍の戦争写真だった 

が写真を整理した中に珍しい写真一枚を見つけた (上の慰安婦写真)

中国華北地方で敵陣を向けて 黄河を渡る日本軍の写真あげくこの写真が一枚入っていた

数えるGaku来る先輩にこの写真は何なのかと問ったら

黄河を渡るゾセンピ(朝鮮人慰安婦を卑下じる言葉)と答えたと言う

が慰安婦たちは川を渡ってどうして笑っているのだろう?

かりそめにも地獄みたいな慰安所から脱することができて嬉しかったのではないか

ランダム洋子 (random yoko)みたいな日本人たちは 1944年 10月に作成された

日本軍戦争虜審問報告書の内容とともにこの写真をあげている 

内容と写真を 編集してあげて全体と騷ぐ日本人たちは反省し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う

それでは米軍が作成した <日本軍戦争虜審問報告書>を見よう

四角部分

及ぶが (myitikyna)で女性たちはたいてい大きい 2階家屋(元々学校建物)から生活したし

女性たちは一つの独立された部屋を提供受けたその部屋で女性たちは生活と眠ってビジネスを行った

ミチナでは彼らの食べ物は慰安所業者を通じて提供受けて購買したし日本軍から食糧配給を受けなかった

他の所に比べればミャンマーで彼らは豪奢な水準でよく暮らしたこれはミャンマーでの 2年目生活で特にそうだった

彼らは兵士らと違い食べ物と物品がひどく統制されて配給される状況ではなかったが持ちたい品物を購買するお金が

多かったからよく暮らした

彼らは服履き物タバコ化粧品を買うことができたし

家から来る慰安かばんを郵送受けた兵士らから多い贈り物をもらった

慰安婦負おうという慰安婦女性たちが初めて契約する時受けたお金金額に注いで慰安婦たちの総収の 50%‾60% ほどを占めた

これは平均的な一ヶ月間 1人の慰安婦が 1.500円ほどの収入をあげてこの中に 750円を業者に与えるというのを

意味する

業者たちは食料品やその他物品を慰安婦に高額をもらって売ってこの女性たちを大変にさせた ...............

...........................................................................

よく読んで見れば内容に矛盾する点が発見される

慰安婦たちは兵士らと違い食べ物と物品がひどく統制されて配給される状況ではなかったが持ちたい品物を購買するお金が

多かったからよく暮らした

業者たちは食料品やその他物品を慰安婦に高額をもらって売ってこの女性たちを大変にさせた 

慰安婦 1人が 1.500円の収入をあげれば 750円ほどを業者に与える

また負おうという慰安婦に食料品や服履き物化粧品,など物品を高額をもらって売ってこの慰安婦女性たちを大変にさせた 

ところで慰安婦たちがお金が多かったしよく暮らした??

内容に矛盾店の発見される理由は米軍たちが証言を土台で報告書を書きながら慰安婦と業者の証言を皆参考した

だからと見える

内容を総合して見れば

負おうという慰安婦の一ヶ月月給で  50%から 60%を占めていたしまた食べ物やその外物品たちを

慰安婦に高額をもらって売って慰安婦女性たちを大変にさせたということだ

すなわち大きいお金を儲けていた方は日本人業者と言わなければならないでしょう 


매춘부는 일본 여성이었다

앞 게시물에서

1939년 상하이 파견군 제14병참 병원 외과 병동에 근무했던 육군 군의관 소위 아소 데츠오 (麻生徹男)이 쓴

보고서 (화류병 적극적 예방법)에 대해서 알아 보았다

이 보고서에 의하면

1939년 北九州에서 중국 상하이로 끌려 온 위안부 100명 중에 80명은 조선 여성이고 20명은 일본 여성이었는데  

여성들의 성병 보균 여부를 검진해 보니

조선 여성은 성병이 의심되는 者가 극소수인데 비해 일본 여성은  대부분  현재 급성 증상을 보이고 있다

라고 하였다

 

 

당시 北九州는 광산과 군수공장이 밀집된 지역으로 유곽 즉 공인 성매매 업소가 성업하고 있었고

공창 사창 합해 성매매 여성들이 약 30만명 가량 있었다고 한다

 

또 인근에는 탄광이 있었는데 탄광에는 가난한 한국인 노동자가 많았고

한국인 노동자들의 딸들이 있었다

 

 

일본군 어용 상인들은 공장 식당 등에 취직할 수 있다고 여성들을 속이고 상하이로 데리고 가서 위안소에 넣었다

 

당시 北九州에서 중국 상하이로 간 일본 여성들은 대부분 매춘업에 종사했던 여성들이었으니

한국인 여성들은 대부분 매춘 경험이 없는 일반 가정의 소녀들이었다

이런 조선 여성들을 공장 식당 등 일이라고 속이고 위안소에 넣어 위안부 생활을 강요했기 때문에  취업사기이며

범죄라고 하는 것이다

 

 

위안부는 매춘부라는 것은 일본 여성에 해당되는 것일까?

 

 

보고서(화류병 적극적 예방법)에 의하면

반도 한국인 여성들은 나이가 어리고 초심자(처녀)로 보이는 者가 많아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창부의 질은 어릴수록 양호하다

戰地에 보내는 창부는 나이가 어린 者를 필요로 하는데

나이가 많은 일본 매춘부는 皇軍장병들에게 보내는 선물로 적합하지  않다고 건의하고 있다

 

 

조선은 전통적 유교사회였다

조선 여성들은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성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貞操 관념이 투철했다

 

이런  뿌리 깊은 유교 사회 조선에서  위안부를 모집하면서 위안부의 성격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하며 공개적으로 모집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속임수나 취업사기나 유괴 납치 등 방법이 동원되고 있었던 것이다  

 

 

위안부가  매춘부라는 근거는 어디에 있는가

많은 일본인들은 1944년 10월에 작성된  보고서 <일본군 전쟁 포로 심문 보고서 49:한국인 위안부  >의 내용을 근거로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주장을 한다

보고서에는 

위안부는 병사의 편의를 위해  일본 군대에 소속된 매춘부 또는 직업적인  종군 민간인에 다름 아니다 라고 쓰고 있다

이 내용을 근거로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랜덤 요코 (random yoko)같은 일본인은  보고서의 내용에서

일본에 불리한 내용에는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교묘하게 내용을 날조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위안부 모집 방법에 대한 내용이 있다

 

 

1942년 5월초 일본인 업자들은 일본이 새로 정복한 동남 아시아의 일본 영토에

위안 서비스를 위한 한국 여성들을 모집하기 위해 한국에 도착하였다

이 위안 서비스의 성격은 분명하게 설명되지 않았고

병원에서 부상병의 붕대를 감아 주는 등 병원의 일반 업무라고 설명되었다 

 

 

 

보고서 어디에도 한국 여성들이 일본 군대에 소속되는 매춘부로  스스로  자원을 하였다는 기록은 없다  

 

 

이 사진은 호사스러운 위안부 생활을 하고 있는 위안부의 사진이라고 많은 일본인으로 부터 비난받는 사진이다

 

그런데 이 사진에 대한 출처를  알아 보자  

 

 

 

 

안경을 낀 사람은 일본인 르뽀 작가 <센다 가쿠오 千田夏光>다

사진을 들고 있는 사람은 한국인 방송 pd다

 

센다 가쿠오 (千田夏光 )는 1962년 마이니치 신문 본사 출판국장에게 위촉을 받고 사진 자료를 정리하였다

2만 5.000점이나 되는 일본군의 전쟁 사진이었다  

이 사진들을 정리하던 중에 희한한 사진 한장을 발견하였다 (위 위안부 사진)

중국 화북 지방에서 적진을 향해 黃河를 건너는 일본군의 사진들 끝에 이 사진이 한장 들어 있었다

센다 가쿠오는 선배에게 이 사진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黃河를 건너는 조센삐(한국인 위안부를 비하하는 말)이라고 대답하였다고 한다

 

이 위안부들은 강을 건너며 왜 웃고 있는 것일까?

잠시라도 지옥 같은 위안소에서 벗어날 수 있어 기뻤던 것은 아닐까

 

 

랜덤 요코 (random yoko)같은 일본인들은 1944년 10월에 작성된

일본군 전쟁 포로 심문 보고서의 내용과 함께 이 사진을  올리고 있다  

내용과 사진을  편집해서 올리고 전체라고   떠드는 일본인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미군이  작성한 <일본군 전쟁 포로 심문 보고서>를 보자 

 

 

네모 부분

미치나 (myitikyna)에서 여성들은 대개 큰 2층 가옥(원래 학교 건물)에서 생활했으며

여성들은 하나의 독립된 방을 제공받았다 그 방에서 여성들은 생활하고 잠을 자고 비즈니스를 행하였다

미치나에서는 그들의 음식은 위안소 업자를 통해 제공받아 구매했으며 일본군으로 부터 식량 배급을 받지 않았다

 

 

다른 곳에 비하면 버마에서 그들은 호사스러운 수준으로 잘살았다 이것은 버마에서의 2년째 생활에서 특히 그러하였다

그들은 병사들과 달리 음식과 물품이 심하게 통제되어 배급되는 상황이 아니었으나 가지고 싶은 물건들을 구매할 돈이

많았기 때문에 잘살았다

 

그들은 옷 신발 담배 화장품을 살 수 있었으며

집으로 부터 오는 위안 가방을 우송받은 병사들로 부터 많은 선물을 받았다

 

 

 

 

위안부 업자는 위안부 여성들이 처음  계약할 때 받은 돈 액수에 따라 위안부들의  총수입의 50%~60% 가량을  차지하였다

이것은 평균적인 한달 동안 1명의 위안부가 1.500엔 가량의 수입을 올리며 이 중에 750엔을 업자에게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업자들은 식료품이나 기타 물품을 위안부에게 고액을 받고 팔아 이 여성들을 힘들게 하였다 ...............

...........................................................................

 

잘 읽어 보면 내용에 모순되는 점이 발견된다

 

위안부들은 병사들과 달리 음식과 물품이 심하게 통제되어 배급되는 상황이 아니었으나 가지고 싶은 물건들을 구매할 돈이

많았기 때문에 잘살았다

 

업자들은 식료품이나 기타 물품을 위안부에게 고액을 받고 팔아 이 여성들을 힘들게 하였다   

 

 

 

위안부 1명이 1.500엔의 수입을 올리면 750엔 가량을 업자에게 준다

또 업자는 위안부에게 식료품이나 옷 신발 화장품,등 물품을 고액을 받고 팔아 이 위안부 여성들을 힘들게 하였다  

그런데  위안부들이 돈이  많았고 잘 살았다?? 

 

내용에  모순점이 발견되는 이유는 미군들이 증언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쓰면서 위안부와 업자의 증언을 모두 참고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용을 종합해 보면

 업자는 위안부의 한달 월급에서   50%에서 60%를    차지하고 있었고  또 음식이나 그 외 물품들을

위안부에게 고액을 받고  팔아  위안부 여성들을  힘들게 했다는 것이다

 

즉 큰 돈을 벌고 있었던 쪽은 일본인 업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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