ミリタリー

【コラム】韓国初の衛星搭載ロケット「羅老号」の成功を祈る (中央日報) http://japanese.joins.com/article/article.php?aid=118006&servcode=100§code=120

韓国初の衛星搭載ロケット「羅老号」(KSKV−I)の打ち上げ(30日)が半月後に迫った。 紆余曲折の末に迎える、国民が待ち望んだ日だ。 打ち上げ当日の天気が良いことを、液体酸素注入が順調にいくことを、長い旅の途中に燃料が変質しないことを、第1段ロケットのエンジンが問題なく作動することを、第1段・第2段ロケットが無事に分離することを、誘導航法制御装置がきちんと作動して人工衛星が第2段ロケットから問題なく分離すること、 そして何よりも「羅老号」打ち上げの成敗に関係なく国民の持続的な支援で宇宙技術が発展することを切実に祈願する。 

宇宙事業は本質的に難しい。 自動車の部品数が約1万個であるのに対し、ロケットには約30万個の部品が入る。 このように多くの部品をきちんと作動させる能¥力はまさにその国の科学技術力だ。 したがって宇宙事業の成果で一つの国の技術レベルが端的に評価される。 韓国も「羅老号」を打ち上げることで世界技術五輪にデビューすることになる。 

しかし宇宙技術は失敗のリスクも高いということを知る必要がある。 米国・ロシア・日本など宇宙先進国は自国ロケットブランドを持つまで莫大な時間と予¥算を投資し、何度も失敗を克服した末に自国のロケットを保有した。 米国のロケット研究は1910年、ロバート・ゴダード博士によって始められた。 第2次世界大戦後、ドイツのフォン・ブラウン博士が率いるペネニュンデチームを連れてきて本格的な開発を始めた。失敗を繰り返したが、57年末、小さな人工衛星を軌道に乗せるのに成功した。 ロシアは40年ごろロケット開発を始めた。 第2次世界大戦の終戦後、ドイツに残っているペネニュンデチームチームを連れてきて本格的に開発したが、57年の人工衛星スプートニク1号の成功まで約15年かかった。 ヨーロッパでは第2次世界大戦後、英国が真っ先に宇宙開発事業を始めたが、宇宙進入には失敗を繰り返した。 1975年に欧州宇宙機関(European Space Agency)が設立され、1988年に初めて人工衛星を軌道に乗せた。 

こうした外国の前例からも分かるように、宇宙産業には失敗が付き物である点を理解しなければならない。 問題は打ち上げ1回の成敗ではなく、どうすれば持続的に宇宙産業を育成していけるかという点だ。 真の失敗は宇宙産業をあきらめることであり、真の成功は宇宙産業をより活発に推進することだ。 こうした成敗は韓国国民の手にかかっている。 

1947年にソ¥ウル大を設立する当時、アメリカ人の顧問官は工学部には機械・電気・画工・土木の4学科さえあればよいと述べた。 韓国でラジオや船舶を作る可能¥性がないからそのような学科は必要ない、という意味だ。 ただ今が不振だという理由で特定種目をあきらめれば、韓国の造船・自動車・電子産業も現在のような目覚しい発展を遂げられなかったはずだ。 1986年に米国が宇宙工学博士課程の学生の国籍を調べたことがあった。 驚くことに学生の5分の1が韓国人で、1987年の米航空宇宙局(NASA)でも韓国出身科学者の割合が最も多かった。 

これはまさに韓国が優れた人的資産を確保していることであり、素質と可能¥性を検討すれば十¥分に勝算があるということだ。 韓国の地で韓国の人工衛星を搭載した韓国初のロケットが力強く打ち上げられることを期待し、政府と国民の持続的な支援を基礎に月や火星に行く日が来ることを信じた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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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のマスコミや国民が、今回のロケットを独自技術と言いたい気持ちは理解できるが・・・


독자적인 기술도 아닌데···

【칼럼】한국 첫 위성 탑재 로켓 「라로호」의 성공을 빈다 (중앙 일보) http://japanese.joins.com/article/article.php?aid=118006&servcode=100§code=120

한국 첫 위성 탑재 로켓 「라로호」(KSKV-I)의 발사(30일)가 반달 후에 가까워졌다. 우여곡절의 끝으로 맞이하는, 국민이 기다려 바란 날이다. 발사 당일의 날씨가 좋은 것을, 액체 산소 주입이 순조롭게 가는 것을, 긴 여행의 도중에 연료가 변질하지 않는 것을, 제1단 로켓의 엔진이 문제 없게 작동하는 것을, 제1단· 제2단 로켓이 무사하게 분리하는 것을, 유도 항법 제어장치가 제대로 작동해 인공위성이 제2단 로켓으로부터 문제 없게 분리하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라로호」발사의 성패에 관계없이 국민의 지속적인 지원으로 우주 기술이 발전하는 것을 절실하게 기원한다. 

우주 사업은 본질적으로 어렵다. 자동차의 부품수가 약 1만개인데 대해, 로켓에는 약 30만개의 부품이 들어간다. 이와 같이많은 부품을 제대로 작동시키는 능력은 확실히 그 나라의 과학기술력이다. 따라서 우주 사업의 성과로 하나의 나라의 기술 레벨이 단적으로 평가된다. 한국도 「라로호」를 쏘아 올리는 것으로 세계 기술 올림픽에 데뷔하게 된다. 

그러나 우주 기술은 실패의 리스크도 높다고 하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미국·러시아·일본 등 우주 선진국은 자국 로켓 브랜드를 가질 때까지 막대한 시간과 예산을 투자해, 몇번이나 실패를 극복한 끝에 자국의 로켓을 보유했다. 미국의 로켓 연구는 1910년, 로버트·고다드 박사에 의해서 시작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독일의 폰·브라운 박사가 인솔하는 페네눌데팀을 데리고 와서 본격적인 개발을 시작했다.실패를 반복했지만, 57년말, 작은 인공위성을 궤도에 싣는데 성공했다. 러시아는 40년즈음 로켓 개발을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 후, 독일에 남아 있는 페네눌데팀팀을 데리고 와서 본격적으로 개발했지만, 57년의 인공위성 스프트니크 1호의 성공까지 약 15년 걸렸다. 유럽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영국이 맨 먼저에 우주 개발 사업을 시작했지만, 우주 진입에는 실패를 반복했다. 1975년에 유럽 우주 기관(European Space Agency)가 설립되어 1988년에 처음으로 인공위성을 궤도에 실었다. 

이러한 외국의 전례로부터도 알 수 있듯이, 우주 산업에는 실패가 부수물인 점을 이해해야 한다.문제는 발사 1회의 성패가 아니고, 어떻게 하면 지속적으로 우주 산업을 육성해 나갈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진정한 실패는 우주 산업을 포기하는 것이어, 진정한 성공은 우주 산업을 보다 활발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패는 한국 국민의 손에 걸려 있다. 

1947년에 소울대를 설립하는 당시 , 미국인의 고문관은 공학부에는 기계·전기·화가·토목의 4 학과만 있으면 좋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라디오나 선박을 만드는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학과는 필요없다는, 의미다. 지금이 부진이라고 하는 이유로 특정 종목을 포기하면, 한국의 조선·자동차·전자 산업도 현재와 같이 눈부신 발전을 이룰 수 없었을 것이다. 1986년에 미국이 우주 공학박사 과정의 학생의 국적을 조사했던 적이 있었다. 놀라는 것에 학생의 5분의 1이 한국인으로, 1987년의 미항공 우주국(NASA)에서도 한국 출신 과학자의 비율이 가장 많았다. 

이것은 확실히 한국이 뛰어난 인적 자산을 확보하고 있는 것이어, 소질과 가능성을 검토하면 10분에 승산이 있는 것이다.한국의 땅에서 한국의 인공위성을 탑재한 한국 첫 로켓이 강력하게 발사 되는 것을 기대해, 정부와 국민의 지속적인 지원을 기초에 달이나 화성에 가는 날이 오는 것을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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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매스컴이나 국민이, 이번 로켓을 독자 기술이라고 말하고 싶은 기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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