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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を読む】あわや朝鮮領…「竹島=日本」は英国のおかげ? 平和条約に秘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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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国が不法占拠を続ける島根県・竹島。戦後、日本の領域を決定した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の草案作成をめぐり、竹島を日本領とする上で英国が重要な役割を果たしたことは、あまり知られていない。英国内に残る当時の資料を島根県竹島問題研究会の藤井賢二委員が調査・分析し、その経緯を論文にまとめて発表した。藤井氏は「英国には『東西冷戦』が念頭にあった。帰属のあいまいな島嶼は紛争の要因となり、それが社会主義陣営に利益をもたらすとの懸念を抱いていた」と説明する。


■初めから「竹島=日本領」ではなかった


 1952年に発効した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に「日本国は、朝鮮の独立を承認して、済州島、巨文島及び欝陵島を含む朝鮮に対するすべての権利、権原及び請求権を放棄する」という条文がある。これによって、日本が朝鮮を放棄するに当たり、朝鮮に付随する島は済州島、巨文島、鬱陵島の3島と明確に規定された。竹島は、放棄する島に含まれなかったのだ


 「ただ、条約の草案作成段階から『竹島=日本領』と明確にされていたわけではなかった」


 英国国立公文書館が所蔵する日本の被占領期(1945~52年)に作成された資料を調査・分析し、「対日講和条約と竹島」と題する論文を「島嶼研究ジャーナル」8巻2号(島嶼資料センター刊)に発表した藤井氏が言う。藤井氏は同条約の成立過程に着目し、条約の英国草案や米英間協議の議事録などを精査した。



■英国草案でも一時、日本領から外れた竹島


 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が成立するまでには、米英など連合国が草案を作成し、最終的に米英2国間の協議で決定された。


 英国が51年2月に草案を作った際、竹島は日本の主権範囲の中に入っていた。しかし、同年3月の草案では、一転して竹島は日本の主権範囲から外れる。その理由は明らかではないが、日本の主権範囲をはっきり線で囲んで示すという手法は変わらなかった。


 「前年の50年11月、駐日英国連絡公館(日英国交回復までの間の英国大使館の名称)が本国政府に送った報告が影響している」と藤井氏。その報告とは「日本に近接する水域にある多くの島嶼は明らかに日本の主権下に残さねばならない」「日本に近接するどの島嶼も主権についての紛争が残ることにならないよう、非常に慎重な原案づくりが不可欠である」という内容だった。


■島名の列挙避けた米国草案


 一方、米国側は、英国より前の47年3月から草案を作成。当初は日本領として残す島名を列挙する形を取り、竹島は朝鮮領として放棄することとしていた。だが、49年11月の草案について米国政府から意見を求められたシーボルド駐日政治顧問代理が、再考を勧告。これを受け、同年12月の草案では、竹島を日本領として存続させることにした


 その後、50年4月に就任したダレス米国務長官顧問の主導で、米国草案は日本領として残す島名の列挙などがなくなり、簡潔な表現となっていった。また、日本の朝鮮放棄を決めた条文でも朝鮮に付属する島名が消えた。


 「ただし、草案から竹島の名前が消えたとはいえ、米国の『竹島は日本が保持する』との考えに変わりはなかった」と藤井氏。50年10月に米国政府が豪州政府の質問に答えた書簡で、そのことが明らかにされていた。


 51年4月25日から5月4日まで、対日講和条約に関する米英間の協議がワシントンで行われた。


■日本の竹島除外に再考の余地-と英国


 協議に際し、英国外務省が自国の代表団に与えた文書がある。「どの島嶼も主権についての紛争を残すことにならないよう、非常に慎重な原案作成が不可欠である」。そのような紛争は、ソ連や他のアジアの社会主義国家に利益をもたらすことになる、とあった。


 さらに、地図などを使わず簡潔な表現にとどめた米国草案では、済州島と竹島の主権をめぐる論争が起きる可能性があると指摘し、日本の主権範囲を線で囲む英国草案が最善だとした。


 一方、英国草案についても「これらの島嶼の処理が明確に述べられていないという批判にさらされるかもしれない」と問題点を認めた。英国草案では、日本領から外された竹島がどの国に帰属するか、明記されていなかったからだ。


 藤井氏は、英国側の文書について「竹島を日本領から外すのには再考の余地があると英国が考えていた箇所もある。英国が、竹島を済州島や鬱陵島と明確に区別した点にも注目したい」と指摘する。「独島(竹島の韓国名)は鬱陵島の一部だから、日本は放棄したはずだ」とする、韓国内の主張を退けられるからだ。


■日本が放棄する領域を挙げる方法で合意


 こうして始まった米英協議。米国側は「日本の周りに線を巡らせると、日本を柵の中に追い込むように見える」と、領域を線で囲むとする英国方式の問題点を指摘した。英国はこれに同意する一方、日本と朝鮮との間にある島々の帰属を明確にするよう求めた。


 この結果、米英共同草案では、日本の領域を規定する条文がない米国草案で合意。一方で、朝鮮放棄を規定する条文では「朝鮮(済州島、巨文島及び欝陵島を含む)に対するすべての権利、権原及び請求権を放棄する」と、朝鮮に属する島々の名がはっきりした。


 その後の交渉を経て、冒頭で紹介した条文となる。藤井氏は「日本に近接する島々の帰属を明確にして紛争の発生を防ぐという英国の方針は、対日講和条約において竹島が朝鮮に含まれないことを明らかにした」と評価する。


 一方で、「英国は、個々の島の帰属について、歴史的な観点ではなく、あくまでも紛争の回避という観点で考えたのだろう」とも指摘する。


■韓国の草案修正要求、米は明確に拒否


 「『竹島は日本に帰属する』ということを、より明確にしたのは皮肉にも韓国自身の行動だった」と藤井氏が言う。48年に成立した韓国政府は51年7月、共同草案の修正を要望。日本が放棄する島に独島などを加えるよう求めた。しかし、米国政府は「私たちの情報によれば、竹島は朝鮮の一部として取り扱われたことは決してない」とし、竹島は日本に属すると回答して修正要求を拒否した。


 こうして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は51年9月に調印、翌52年4月に発効した。ところが、韓国はその直前の1月に「海洋主権宣言」を行い、日本海など朝鮮半島周辺海域に主権を及ぼすとする「李承晩ライン」を一方的に設定した。そして李ライン内に竹島を含め、54年には竹島に海洋警察隊を常駐させて近づく日本の船舶を排除した。


 英国が望んだように、紛争の要因となる懸念を払拭してサンフランシスコ平和条約が成立したにもかかわらず、竹島は韓国によって占拠され続け、解決の糸口が見えない日韓間の深刻な領土問題として今なお横たわっている。



竹島を日本領から外した地図(日本国際問題研究所提供)

竹島を日本領から外した地図(日本国際問題研究所提供)



https://www.sankei.com/west/news/190617/wst1906170001-n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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つまり、「朝鮮 人が諸悪の根源」と言うことだな。

( ´-д-)


하마터면 조선령.


【세계를 읽는】하마터면 조선령…「타케시마=일본」은 영국의 덕분? 평화 조약에 비화


그 외의 사진을 본다(1/2매)



 한국이 불법 점거를 계속하는 시마네현·타케시마.전후, 일본의 영역을 결정한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의 초안 작성을 둘러싸고, 타케시마를 일본령으로 하는데 있어서 영국이 중요한 역할을 완수한 것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영국내에 남는 당시의 자료를 시마네현 타케시마 문제 연구회의 후지이 켄지 위원이 조사·분석해, 그 경위를 논문에 정리해 발표했다.후지이씨는 「영국에는 「동서냉전」이 염두에 있었다.귀속의 애매한 크고 작은 섬들은 분쟁의 요인이 되어, 그것이 사회주의 진영에 이익을 가져온다라는 염려를 안고 있었다」라고 설명한다.


■처음부터 「타케시마=일본령」은 아니었다


 1952년에 발효한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에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능도를 포함한 조선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방폐한다」라고 하는 조문이 있다.이것에 의해서, 일본이 조선을 방폐하는에 해당되어, 조선에 부수 하는 섬은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의 3섬과 명확하게 규정되었다.타케시마는, 방폐하는 섬에 포함되었던 것이다.


 「단지, 조약의 초안 작성 단계로부터 「타케시마=일본령」과 명확하게 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영국 국립 공문서관이 소장하는 일본의 피점령기(1945~52년)에 작성된 자료를 조사·분석해, 「대일강화조약과 타케시마」라고 제목을 붙이는 논문을 「크고 작은 섬들 연구 저널」8권 2호(크고 작은 섬들 자료 센터간)에 발표한 후지이씨가 말한다.후지이씨는 동조약의 성립 과정에 주목해, 조약의 영국 초안이나 미국과 영국간 협의의 회의록등을 정밀 조사 했다.


■영국 초안에서도 한때, 일본령으로부터 빗나간 타케시마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이 성립하기까지는,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국이 초안을 작성해, 최종적으로 미국과 영국 2국간의 협의에서 결정되었다.


 영국이 51년 2월에 초안을 만들었을 때, 타케시마는 일본의 주권 범위나카에 들어가 있었다.그러나, 동년 3월의 초안에서는, 일전해 타케시마는 일본의 주권 범위로부터 빗나간다.그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일본의 주권 범위를 분명히 선으로 둘러싸 나타내 보인다고 하는 수법은 변하지 않았다.


 「전년의 50년 11월, 주일 영국 연락 공관(일영 국교 회복까지의 사이의 영국 대사관의 명칭)이 본국 정부에 보낸 보고가 영향을 주고 있다」라고 후지이씨.그 보고와는 「일본에 근접하는 수역에 있는 많은 크고 작은 섬들은 분명하게 일본의 주권하에 남기지 않으면 안 된다」 「일본에 근접하는 어느 크고 작은 섬들도 주권에 대한 분쟁이 남는 것에 안 되게, 매우 신중한 원안 만들기가 불가결하다」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시마나의 열거 피한 미국 초안


 한편, 미국측은, 영국보다 전의 47년 3월부터 초안을 작성.당초는 일본령으로서 남기는 시마나를 열거하는 형태를 취해, 타케시마는 조선령으로서 방폐하는 것으로 하고 있었다.하지만, 49년 11월의 초안에 대해 미국 정부로부터 의견이 구할 수 있던 시보르드 주일 정치 고문 대리가, 재고를 권고.이것을 받아 동년 12월의 초안에서는,타케시마를 일본령으로서 존속시키기로 했다.


 그 후, 50년 4월에 취임한 다레스 미국무장관 고문의 주도로, 미국 초안은 일본령으로서 남기는 시마나의 열거등이 없어져, 간결한 표현이 되고 갔다.또, 일본의 조선 방폐를 결정한 조문에서도 조선에 부속되는 시마나가 사라졌다.


 「다만, 초안으로부터 타케시마의 이름이 사라졌다고는 해도,미국의 「타케시마는 일본이 보관 유지한다」라고의 생각에 변화는 없었다」라고 후지이씨.50년 10월에 미국 정부가 호주 정부의 질문에 답한 서간으로, 그것이 밝혀지고 있었다.


 51년 4월 25일부터 5월 4일까지, 대일강화조약에 관한 미국과 영국간의 협의가 워싱턴에서 행해졌다.


■일본의 타케시마 제외에 재고의 여지-와 영국


 협의에 즈음해, 영국 외무성이 자국의 대표단에게 준 문서가 있다.「어느 크고 작은 섬들도 주권에 대한 분쟁을 남기는 것에 안 되게, 매우 신중한 원안 작성이 불가결하다」.그러한 분쟁은, 소련이나 다른 아시아의 사회주의 국가에 이익을 가져오게 된다, 라고 있었다.


 게다가 지도등을 사용하지 않고 간결한 표현에 세운 미국 초안에서는, 제주도와 타케시마의 주권을 둘러싼 논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라고 지적해, 일본의 주권 범위를 선으로 둘러싸는 영국 초안이 최선이라고 했다.


 한편, 영국 초안에 대해서도 「이러한 크고 작은 섬들의 처리가 명확하게 기술되지 않다고 하는 비판에 노출될지도 모른다」라고 문제점을 인정했다.영국 초안에서는, 일본령으로부터 떼어진 타케시마가 어느 나라에 귀속하는지, 명기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지이씨는, 영국측의 문서에 대해 「타케시마를 일본령으로부터 제외하는데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와 영국이 생각하고 있던 개소도 있다.영국이, 타케시마를 제주도나 울릉도와 명확하게 구별한점에도 주목하고 싶다」라고 지적한다.「독도(타케시마의 한국명)는 울릉도의 일부이니까, 일본은 방폐했을 것이다」라고 하는, 한국내의 주장을 거부되기 때문이다.


■일본이 방폐하는 영역을 올리는 방법에 합의


 이렇게 해서 시작된 미국과 영국 협의.미국측은 「일본의 주위에 선을 둘러싸게 하면, 일본을 책안에 몰아넣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영역을 선으로 둘러싼다고 하는 영국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했다.영국은 이것에 동의 하는 한편, 일본과 조선과의 사이에 있는 섬들의 귀속을 명확하게 하도록 요구했다.


 이 결과, 미국과 영국 공동 초안에서는, 일본의 영역을 규정하는 조문이 없는 미국 초안에 합의.한편, 조선 방폐를 규정하는 조문에서는 「조선(제주도, 거문도 및 울능도를 포함한다)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방폐한다」라고, 조선에 속하는 섬들의 이름이 뚜렷한.


 그 후의 교섭을 거치고, 첫머리에서 소개한 조문이 된다.후지이씨는 「일본에 근접하는 섬들의 귀속을 명확하게 해 분쟁의 발생을 막는다고 하는 영국의 방침은, 대일강화조약에 대해 타케시마가 조선에 포함되지 않는 것을 분명히 했다」라고 평가한다.


 한편, 「영국은, 개개의 섬의 귀속에 대해서, 역사적인 관점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분쟁의 회피라고 하는 관점에서 생각했을 것이다」라고도 지적한다.


■한국의 초안 수정 요구, 미는 명확하게 거부


 「「타케시마는 일본에 귀속한다」라고 하는 것을, 보다 명확하게 한 것은 짓궂게도 한국 자신의 행동이었다」라고 후지이씨가 말한다.48년에 성립한 한국 정부는 51년 7월, 공동 초안의 수정을 요망.일본이 방폐하는 섬에 독도등을 더하도록 요구했다.그러나, 미국 정부는 「우리의 정보에 의하면, 타케시마는 조선의 일부로서 취급된 것은 결코 없다」라고 해, 타케시마는 일본에 속한다고 회답해 수정 요구를 거부했다.


 이렇게 해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은 51년 9월에 조인, 다음 52년 4월에 발효했다.그런데 , 한국은 그 직전의 1월에 「해양 주권 선언」을 실시해, 일본해 등 한반도 주변 해역에 주권을 미친다고 하는 「이승만 리인」을 일방적으로 설정했다.그리고 이 라인내에 타케시마를 포함해 54년에는 타케시마에 해양 경찰대를 상주시켜 가까워지는 일본의 선박을 배제했다.


 영국이 바라본 것처럼, 분쟁의 요인이 되는 염려를 불식해 샌프란시스코 평화 조약이 성립했음에도 불구하고, 타케시마는 한국에 의해서 점거계속 되어 해결의 실마리가 안보이는 일한간의 심각한 영토 문제로서 지금 더 가로 놓여 있다.



타케시마를 일본령으로부터 제외한 지도(일본 국제 문제 연구소 제공)

타케시마를 일본령으로부터 제외한 지도(일본 국제 문제 연구소 제공)



https://www.sankei.com/west/news/190617/wst1906170001-n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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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한국인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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