石田梅岩という江戸時代の心学の先生が、自分の子供の頃のエピソードを語った話。
ある日、幼少の梅岩先生が裏山の自分の家の土地で遊んでいた。夕方まで遊んでいて、暗くなってきたので帰ったが、土地の奥の方にドングリの木が生えていて、根元にドングリが沢山落ちていた。子供の事なので、幼少の先生はドングリを拾えるだけ拾って家に持って帰った。そして、夕ご飯の時に誇らしげに父親に見せた。すると父親は、血相を変えて怒鳴りつけ、すぐ元の場所に返してこいと言ってきた。幼少の梅岩先生は、泣きながら夜道を山へと走り、暗い中でドングリの木を探して根本にドングリを返した。
そのドングリの木は、ちょうど隣の家の土地との境辺りに生えていたからだ。
西洋人がオーストラリア大陸に入植し、開拓を始めた頃の事。西洋人達は家を建て、柵で囲い、また牛や鶏など家畜の牧場も柵で囲った。しかし、原住民のアボリジニ達はその柵の意味が理解できなかった。そもそも彼らに『私有』の概念自体乏しかったのだ。
当然彼らは、柵を乗り越えて牛や鶏を狩り、また畑の作物を収穫した。当然、彼らは西洋人に野蛮人として迫害される事となった。
이시다 바이간이라고 하는 에도시대의 심학의 선생님이, 자신의 어릴 적의 에피소드를 말한 이야기.
있다 일, 유소의 매암선생님이 뒷산의 자신의 집의 토지에서 놀고 있었다.저녁까지 놀고 있고, 어두워졌으므로 돌아갔지만, 토지의 안쪽에 종리의 나무가 나 있고, 근원에 종리가 많이 떨어지고 있었다.아이의 일이므로, 유소의 선생님은 종리를 주울 수 있을 만큼 줍고 집에 가지고 돌아갔다.그리고, 저녁 밥때에 자랑스러운 듯하게 부친에게 보이게 했다.그러자(면) 부친은, 안색을 바꾸어 고함쳐 곧 원래의 장소에 돌려주고 와라고 말해 왔다.유소의 매암선생님은, 울면서 밤길을 산으로 달려, 어두운 가운데 종리의 나무를 찾아 근본에 종리를 돌려주었다.
그 종리의 나무는, 정확히 근처의 집의 토지와의 경계 근처에 나 있었기 때문이다.
서양인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 이주 해, 개척을 시작했을 무렵의 일.서양인들은 집을 세우고 책으로 둘러싸, 또 소나 닭 등 가축의 목장도 책으로 둘러쌌다.그러나, 원주민의 아보리니들은 그 책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었다.원래 그들에게 「사유」의 개념 자체 부족했던 것이다.
당연히 그들은, 책을 넘어 소나 닭을 사냥해, 또 밭의 작물을 수확했다.당연, 그들은 서양인에게 야만인으로서 박해되는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