桜の花見は日帝残滓!
花見の習慣をやめない限り意味がないw
【コラム】サクラの原産地論争に意味がない理由=韓国
韓国経済新聞/中央日報日本語版 2015.04.05
それなら現在の韓国でサクラの花を楽しむ風習はどこからきたのか。日本の影響であることは否めない。日本の代表的なサクラの品種で日帝強占期に韓国に多く植えられたソメイヨシノが済州島(チェジュド)のサクラが起源になったという学説が合っていたとしてもだ。
「サクラ済州島原産地説」は、解放後にサクラの木を切ろうとする動きを阻止し、多くの韓国人がサクラの花を楽しんで感じる「倭色」に対する不便さを減らしてくれた。だが、私たちは花の原産地とその花を楽しむ文化は別個という事実を便利に忘れていた。
原産地がどこであれ、昔からサクラの花への愛が最も強いのは日本だった。だから最近中国まで加勢して三国志になってしまったサクラの原産地論争は植物学的には意味があっても文化的には格別な意味はない。私たちの祖先はサクラの花より別の春の花をはるかに愛した。チョン・ギの「梅花草屋図」で士人が雪のようなウメを鑑賞し、申潤福(シン・ユンボク)の「年少踏青」で妓生と粋人が赤く咲き誇るツツジを楽しむが、サクラの花を見物する絵は見たことがない。これに対しサクラの花が登場する日本の浮世絵は数えられないほど多い。
そのためサクラの花が済州島原産であることを掲げて韓国の伝統でないサクラ祭りをはっきりしない民族主義で包装するのは自己欺瞞だけのことだ。対案は2種類だ。民族主義精神を潔癖症的に発揮してサクラ祭りをすべて廃止するか、そうでなければサクラの花と民族主義的原産地論争の連係を断ち切り、花見が日本から来たことを認めた上で、韓国式に創造的に発展させサクラ祭り文化の主導権を握るかだ。
「サクラ済州島原産地説」は、解放後にサクラの木を切ろうとする動きを阻止し、多くの韓国人がサクラの花を楽しんで感じる「倭色」に対する不便さを減らしてくれた。だが、私たちは花の原産地とその花を楽しむ文化は別個という事実を便利に忘れていた。
原産地がどこであれ、昔からサクラの花への愛が最も強いのは日本だった。だから最近中国まで加勢して三国志になってしまったサクラの原産地論争は植物学的には意味があっても文化的には格別な意味はない。私たちの祖先はサクラの花より別の春の花をはるかに愛した。チョン・ギの「梅花草屋図」で士人が雪のようなウメを鑑賞し、申潤福(シン・ユンボク)の「年少踏青」で妓生と粋人が赤く咲き誇るツツジを楽しむが、サクラの花を見物する絵は見たことがない。これに対しサクラの花が登場する日本の浮世絵は数えられないほど多い。
そのためサクラの花が済州島原産であることを掲げて韓国の伝統でないサクラ祭りをはっきりしない民族主義で包装するのは自己欺瞞だけのことだ。対案は2種類だ。民族主義精神を潔癖症的に発揮してサクラ祭りをすべて廃止するか、そうでなければサクラの花と民族主義的原産地論争の連係を断ち切り、花見が日本から来たことを認めた上で、韓国式に創造的に発展させサクラ祭り文化の主導権を握るかだ。
왕앵을 아무리 심어도 헛됨!그렇다면 현재의 한국에서 사쿠라의 꽃을 즐기는 풍습은 어디에서 왔는가.일본의 영향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일본의 대표적인 사쿠라의 품종으로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 많이 심어진 왕벚꽃나무가 제주도(제주도)의 사쿠라가 기원이 되었다고 하는 학설이 맞고 있었다고 해도다.
「사쿠라 제주도 원산지설」은, 해방 후에 사쿠라의 목이 채 안되려고 하는 움직임을 저지해, 많은 한국인이 사쿠라의 꽃을 즐기고 느끼는 「야마토색」에 대한 불편함을 줄여 주었다.하지만, 우리는 꽃의 원산지와 그 꽃을 즐기는 문화는 별개라고 하는 사실을 편리하게 잊고 있었다.
원산지가 어디서 저것, 옛부터 사쿠라의 꽃에의 사랑이 가장 강한 것은 일본이었다.그러니까 최근 중국까지 가세 해 삼국지가 되어 버린 사쿠라의 원산지 논쟁은 식물학적으로는 의미가 있어도 문화적으로는 각별한 의미는 없다.우리의 조상은 사쿠라의 꽃보다 다른 봄의 꽃을 아득하게 사랑했다.정·기의 「매화꽃 초가집도」로 무사가 눈과 같은 매화를 감상해, 신윤복(신·윤보크)의 「연소 봄에 파랗게 난 풀을 밟고 다님」으로 기생과 풍류인이 붉게 한창 피는 철쭉을 즐기지만, 사쿠라의 꽃을 구경하는 그림은 본 적이 없다.이것에 대해 사쿠라의 꽃이 등장하는 일본의 강호시대의 풍속화는 셈등 없을 정도 많다.
그 때문에 사쿠라의 꽃이 제주도 원산인 것을 내걸어한국의 전통이 아닌 사쿠라 축제를 확실치 않은 민족주의로 포장하는 것은 자기기만만의 일이다.대안은 2 종류다.민족주의 정신을 결벽증적으로 발휘해 사쿠라 축제를 모두 폐지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사쿠라의 꽃과 민족주의적 원산지 논쟁의 연계를 끊어, 꽃놀이가 일본에서 온 것을 인정한 다음, 한국식에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사쿠라 축제 문화의 주도권을 잡을까다.
벚꽃 봐는 일제 잔재!
꽃놀이의 습관을 그만두지 않는 한 의미가 없는 w
【칼럼】사쿠라의 원산지 논쟁에 의미가 없는 이유=한국
한국 경제 신문/중앙 일보 일본어판 2015.04.05
「사쿠라 제주도 원산지설」은, 해방 후에 사쿠라의 목이 채 안되려고 하는 움직임을 저지해, 많은 한국인이 사쿠라의 꽃을 즐기고 느끼는 「야마토색」에 대한 불편함을 줄여 주었다.하지만, 우리는 꽃의 원산지와 그 꽃을 즐기는 문화는 별개라고 하는 사실을 편리하게 잊고 있었다.
원산지가 어디서 저것, 옛부터 사쿠라의 꽃에의 사랑이 가장 강한 것은 일본이었다.그러니까 최근 중국까지 가세 해 삼국지가 되어 버린 사쿠라의 원산지 논쟁은 식물학적으로는 의미가 있어도 문화적으로는 각별한 의미는 없다.우리의 조상은 사쿠라의 꽃보다 다른 봄의 꽃을 아득하게 사랑했다.정·기의 「매화꽃 초가집도」로 무사가 눈과 같은 매화를 감상해, 신윤복(신·윤보크)의 「연소 봄에 파랗게 난 풀을 밟고 다님」으로 기생과 풍류인이 붉게 한창 피는 철쭉을 즐기지만, 사쿠라의 꽃을 구경하는 그림은 본 적이 없다.이것에 대해 사쿠라의 꽃이 등장하는 일본의 강호시대의 풍속화는 셈등 없을 정도 많다.
그 때문에 사쿠라의 꽃이 제주도 원산인 것을 내걸어한국의 전통이 아닌 사쿠라 축제를 확실치 않은 민족주의로 포장하는 것은 자기기만만의 일이다.대안은 2 종류다.민족주의 정신을 결벽증적으로 발휘해 사쿠라 축제를 모두 폐지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사쿠라의 꽃과 민족주의적 원산지 논쟁의 연계를 끊어, 꽃놀이가 일본에서 온 것을 인정한 다음, 한국식에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사쿠라 축제 문화의 주도권을 잡을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