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経済 PositiveNegativeFreeStyleArguments

1696年4月 13日

順風に乗って船が出発した.





4月 28日

望むことが少しまろやかに吹くのにお腹が進んだ. 午後 4,5時くらいにフェングプングが大きく起きて波は空に着きそうで, 配意眉目(尾木)が折れてこわれて, ほとんど抜けるようになった. 黄色い代わりに上げてたとえ水中に抜けて死ぬことは兔れたがフェングプングで大海に押されて一日晩中漂流した.





5月 6日


水がすべて落ちた. 小さな謀を試して見ようと思って海水を釜に盛って釜蓋を逆に閉めて焼酒(焼酒) 下るようにして釜蓋にやっと半分どんぶりほどの蒸溜水(蒸溜水)を受けたが, その味が果して平気だった. それを各人に分けて食べるよちょっと飢渇(飢渇)を解くようにした. その後に交替しながらたきつけて蒸溜水を受け取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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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un Darは慶尚道から江原道に北上して魚を販売するために出航した途中に風浪に会って日本に流れはじめ, 海水を沸かして蒸溜水で作って米は水にふやかして耐えて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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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は多くの人々に言うのを,“前に私が日本地図を見た事があったが, 東はすべて陸地だった. また通信社を遂行して往き来した人の言葉を聞いたら, ‘その中間に大阪があって, 皇帝という者がいて, 東北部屋強豪(江戸)という所には関白(関白)がある.大阪性で陸地にだけつながって強豪まで細いには 16‾17日がかかる.’ した.もう私たちは東海が終える所まで行くと必ず日本の地だろうから, これは空が助けた紛れだ.”したら,


先人(船人)たちはすべて言うのを,“結局陸地が会う事ができないから, これはまさしくがらんとした大きい海と通じています.”

とは, みんな空を呼んで, 親を呼びながら泣きわめい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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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の海流に流れたら日本に到着するはずだから, 私たちは帰ることができると言ったが, いくら時間が経っても日本が見えないから, 私たちは日本を度が外れてがらんとした海に漂流したことと言いながら死を直感する.














朝鮮人たちは, 北海道の島にやっと到着して, その所で延期が立つ民家に向けて行って見た.








彼らの姿を見たら, 皆押した服を着たし,青黒い髪の毛に長いひげ顔は暗い色だ.

私たちは皆驚いて, お腹を止めてからは進まなかった.


しかし黙黙とお互いに眺めてばかりしたから, 彼らも今までうちの朝鮮人みたいな顔を見たことがない人々だからこんなに静かにいるのやないか? 彼らの面相を詳らかによく見たら 絶対に日本人ではなくて, 結局正体が分からなかった.



彼らの家の前にはフェッデを無数に作っておいて魚を森のように歩いておいたし, 鯨の砲(脯)も山盛り先

ラム積もっていた.男女があるいは木皮で組んだ押した麻布の長い服を着たし, あるいは熊皮と狐皮または

てん皮で作った毛裏を着た.


彼らのかんかんはやっと限り寸[寸] 余りだったし, ひげはすべて結んだが, あるいは一定木[尺]あるいは一足や

になった. 耳には大きい恩顧里を甘かったし, 身には黒い毛が出ていた. ヌンザウィは皆白くて,男女が

履き物をはいていなかった.

 










初めに見る顔の繩文人を見て, 絶対に日本人ではなくて, 日本語も通じない. あのやつらも反対に私たちのような人の顔を見たことがないから私たちを見て静かにいることか? と記録






彼らは本来字でお互いに通じる風習がなくて, お互い言語で通じ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


口とお腹を示してお腹がすいていてのどが渇くという振りを試しにやって見たら,魚汁(魚湯)を小さな器一つに盛ってくれるだけ, 米を飢えてしなかった.


“天下の人間は全部米を食べる. こいつらは人の形態をしているはずだから, 耕作する方法が分からないことがイッゲッヌンが? これは必ず私たち多くの人のご飯を食べさせる費用を憚って, 米を惜しむためにこのように飯を炊かないのだ.” と思った.








描いてからは, 家ごとに行って飯を炊くかを調べたら, 皆飯を炊かないで, ただ魚汁に魚の飼うことを交ぜて食べていて, 彼らがもともと飯を炊いて食べない者等なのを分かった.

梨には米が落ちたからどうすることができなくて旅行用器を内報ながら米をくれと要請して見たが, 答えることが分からなかった.

私は米粒を示したように見えたが頭を振ってからは答えないことを見たら, こいつらは本当に米や豆が分からない者等だ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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初めには繩文人も人間の形態だから農業が分からないことができないと思ったが, 本当に繩文人は農業が分からなくて, 履き物もないことを悟った朝鮮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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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は丘の上に上がって, あまねく通って見物をして見たら, 平原(平原)と広野(広野)は沃土(沃土) lさがなかったし, 流れる小川の水, 厚い堤防がすべて田で作ることができたが, 漢字[尺]も行かなかった.



どんな所に至ったら四人が海と下水が通じる語句で網をかけて肉を取っていた. 網は 7‾8発[把]に過ぎなかったが, 実に組んだのではなく, 木皮の糸[木皮糸]で組んだのだった. 取った魚は, ますとその外名前分からない雑魚が限りなかった. 私が取っておいた魚を見て羨ましがって触ったら, その中で一定木[尺]が越えるます 20余匹を私の前に投げてからは持って行きなさいと示した.



またてん皮の服を着た者が私のこれから近寄って私が着ている藍明紬のチョゴリを示して, 私が着ているてん皮服を脱いでは, 交賛に示しながらしゃべるのに, 変えて着ようとそうなようだった. そうするので, 私は変えようとすることだと分かってからは直ちに承諾して服を脱いでくれて変えたが,彼が好むことを分かった.

 




5月14日そしてその後-


群れてそれぞれ毛裏を持って来て私たち服と変えようと言う人が何人もなるかどうかを分からなかった.

先人たちはあるいは器を与えて変えたりしたが私も持っていた服をすべて酒庫, てんガッオッ九つ

枝と選り分けて変えた. ガックンにただ修正(水晶) 一つ一つと変えるのを請ずるから, 私は修正

二つの錠ずつを持って, てん皮二席漿果変えたら, その皮の数は 60枚もな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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繩文人は朝鮮人の服と玉と品物を珍しく思って, 自分たちの革衣と交換がほしかった. 後には数字を数え切れない位に多くの繩文人が群がって来たし朝鮮人は玉を渡してくれて大きいてん皮を得て利得を取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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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日もとどまることがなしに長長(長長) 10日を街, 約千余里まで行ったのにずっとその顔の人間だけ見える.実に私たちが帰ることができる方策を問うあてがなくてどうすることが分からなかった.また南側を向けて 7日を行ったがやっぱりその輩らのようでどうする道理がなかった.

ずっと南側を向けてから 4日になった日,海岸の高い所で急に手を振りながら呼ぶ者があった.詳らかに見たら, その人間の顔は以前のやつらとは全然違って確かに日本人の顔だった.


日本人が言うのを “日本人がその所で漂流をすれば, 彼らは日本人を全部殺してしまってその肉を食べるとたまに住んで逃げて来た者等が伝えます. もし何日だけもっと漂流したら, もっと恐ろしくて危ない所でした. しかしその災いを兔れたからこれも空が助けたことなので, 君は必ず長寿(長寿)する方です.”した.




7月 1日


“haiの言語で ‘mazmai’だと言うことは何の言葉です?”


“Matsumaeを言うのです.”


“angrapeは何です?”


“平安というですね.”


“‘bargiyi’は何です?”


“美しいという話です.”


“‘akki’は何です?”


“水[水]です.”


“‘abi’は何です?”


“火[火]です.”


彼らの言語を倭国語と比べてみたら, 完全に違う.



長い間漂流するお腹で過ごして, また野原で眠りながら熱い熱にゆでられて長期(気)の掩襲を受けたし, 飢渇(飢渇)証で身がいたまれたうえで, 夜なら蚊に刺されて, また蚤とここにかまれる苦しさにあって気力がすべて抜けた. 夜には海洋(海洋)の中流(中流)から仮面(仮眠)と昼に順風に会えば, 海岸(海岸)に付いて航海して, もし順風に会うことができなければ潟(浦口)にお腹を停泊して動かなかった. 停泊する所にたとえ人家があることはしましたが, 皆こんにちはの輩らなのでその家の湿り気(湿気)と寄り集まる蚤のためお腹の上だけできなかっ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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繩文人の言語は倭国語と完全に違って, 彼らの住居環境はとても劣悪で私たちは苦労がひどかったと記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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以後の記録は, 救出を手伝ってくれた日本人に対する感謝表現と, 時を書いて日本人に下賜をするとか, 大阪に進入して関白と話を交わしたくだらない内容だけで 1年ぶりに朝鮮に帰ることができたと言います.



- 漂録で抜純






 


[ 역사 ] 홋카이도에 표류 당한 한국인 (17세기)

1696년 4월 13일

순풍을 타고 배가 출발했다.





4월 28일

바람이 조금 순하게 불기에 배가 나아갔다. 오후 4,5시 쯤에 횡풍이 크게 일어나 파도는 하늘에 닿을 듯하고, 배의 미목(尾木)이 부러지고 부서져, 거의 빠지게 되었다. 노를 대신 질러 비록 물속에 빠져 죽는 것은 면했지만 횡풍으로 대해에 떠밀려 밤새도록 표류했다.





5월 6일


물이 다 떨어졌다. 작은 꾀를 시험해 보려고 생각하여 바닷물을 솥에 담아 솥뚜껑을 거꾸로 닫고 소주(燒酒) 내리듯이 하여 솥뚜껑에 겨우 반 사발 가량의 증류수(蒸溜水)를 받았는데, 그 맛이 과연 담담하였다. 그것을 각 사람에게 나누어 먹여 약간 기갈(飢渴)을 풀게 했다. 그 후로 번갈아 가면서 불을 지펴 증류수를 받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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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 Sun Dar은 경상도에서 강원도로 북상해 생선을 판매하기 위해 출항하던 도중에 풍랑을 만나서 일본으로 흘러가기 시작, 바닷물을 끓여 증류수로 만들고 쌀은 물에 불려서 견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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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전에 내가 일본 지도를 본 일이 있었는데, 동쪽은 다 육지였다. 또 통신사를 수행하여 왕래했던 사람의 말을 들으니, ‘그 중간에 오사카가 있어, 황제라는 자가 있고, 동북방 강호(江戶)라는 곳에는 관백(關白)이 있다. 대판성에서 육지로만 이어져 강호까지 가는 데는 16~17일이 걸린다.’ 하였다. 이제 우리는 동해가 다하는 곳까지 가면 반드시 일본의 땅일 것이니, 이는 하늘이 도운 요행이다.” 하니, 


선인(船人)들은 다 말하기를, “끝내 육지를 못 만나니, 이건 틀림없이 텅 빈 큰 바다와 통해 있습니다.”

하고는, 다들 하늘을 부르고, 부모를 부르며 통곡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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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해류로 흘러간다면 일본에 도착할 것이니까, 우리들은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일본이 보이지 않기에, 우리는 일본을 지나쳐 텅 빈 바다에 표류한 것이라며 죽음을 직감하다.














한국인들은, 홋카이도의 섬에 가까스로 도착해, 그곳에서 연기가 나는 민가를 향해 가보았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모두 누른 옷을 입었고, 검푸른 머리칼에 긴 수염에다가 얼굴은 어두운 색이다. 

우리들은 모두 놀라, 배를 멈추고는 나아가지 않았다.


그러나 묵묵히 서로 바라다보기만 하였으니, 그들도 이제까지 우리 한국인같은 얼굴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니까 이렇게 조용히 있는 것이나 아닐까? 그들의 면상을 자세히 살펴보니 절대로 일본인은 아니고, 끝내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의 집 앞에는 횃대를 무수히 만들어 놓아 물고기를 숲처럼 걸어 놓았고, 고래의 포(脯)도 산더미처

럼 쌓여 있었다. 남녀가 혹은 나무 껍질로 짠 누른 베의 긴 옷을 입었고, 혹은 곰 가죽과 여우 가죽 또는 

담비 가죽으로 만든 털옷을 입었다. 


그들의 머리털은 겨우 한 치[寸] 남짓하였고, 수염은 다 매었는데, 혹은 한 자[尺] 혹은 한 발이나 

되었다. 귀에는 큰 은고리를 달았고, 몸에는 검은 털이 나 있었다. 눈자위는 모두 희고, 남녀가 

신발을 신지 않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의 조몬인을 보고, 절대로 일본인은 아니고, 일본어도 통하지 않는다. 저 놈들도 반대로 우리들과 같은 사람의 얼굴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우리를 보고 조용히 있는 것인가? 라고 기록






그들은 본래 글자로 서로 통하는 풍습이 없고, 피차 언어로 통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입과 배를 가리키며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르다는 시늉을 시험삼아 해 보였더니, 어탕(魚湯)을 작은 그릇 하나에 담아 줄 뿐, 쌀을 주려 하지 않았다. 


“천하의 인간은 전부 쌀을 먹는다. 이놈들은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는 터이니, 농사 짓는 방법을 모를 수 있겠는가? 이것은 반드시 우리 여러 사람의 밥을 먹이는 비용을 꺼리고, 쌀을 아끼느라 이처럼 밥을 짓지 않는 것이다.” 고 생각하였다. 








그리고는, 집집마다 가서 밥을 짓는가를 알아 보았더니, 모두 밥을 짓지 않고, 다만 어탕에다 물고기의 기름을 섞어서 먹고 있어서, 그들이 본시 밥을 지어 먹지 않는 자들임을 알았다. 

배에는 쌀이 떨어졌기에 어찌할 수가 없어서 여행용 그릇을 내보이면서 쌀을 달라고 요청해 보았지만, 대답할 바를 몰랐다. 

나는 쌀알을 가리켜 보였지만 머리를 흔들고는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니, 이놈들은 정말로 쌀이나 콩을 모르는 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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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조몬인도 인간의 형태니까 농사를 모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조몬인은 농사를 몰라, 신발도 없는 것을 깨달은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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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덕 위로 올라가, 두루 다니며 구경을 해보니, 평원(平原)과 광야(廣野)는 옥토(沃土) 아님이 없었고, 흐르는 냇물, 두터운 둑이 다 논으로 만들 수가 있었는데, 한 자[尺]도 갈지 않았다. 



어떤 곳에 이르니 네 사람이 바다와 하수가 통하는 어구에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물은 7~8발[把]에 지나지 않았는데, 실로 짠 것이 아니라, 나무 껍질의 실[木皮絲]로 짠 것이었다. 잡은 고기는, 송어와 그 외 이름 모를 잡어가 무수했다. 내가 잡아 놓은 물고기를 보고 부러워하며 만지니, 그중에서 한 자[尺]가 넘는 송어 20여 마리를 내 앞에 던지고는 가져가라고 가리켰다. 



또 담비 가죽의 옷을 입은 자가 내 앞으로 다가서서 내가 입고 있는 남빛 명주의 저고리를 가리키고, 제가 입고 있는 담비 가죽 옷을 벗어서는, 번갈아 가리키며 지껄이는데, 바꾸어 입자고 그러는 것 같았다. 그러므로, 나는 바꾸고자 하는 것인줄 알고는 즉시 허락하여 옷을 벗어 주고 바꾸었는데, 그가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5월14일 그리고 그 이후-


떼지어 각기 털옷을 가지고 와 우리 옷과 바꾸자고 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선인들은 혹은 그릇을 주고 바꾸기도 하였는데 나도 가지고 있던 옷을 다 주고, 담비 갖옷 아홉 

가지와 가려서 바꾸었다. 갓끈에 단 수정(水晶) 하나 하나와 바꾸기를 청하기에, 나는 수정 

두 알씩을 가지고, 담비 가죽 두석 장과 바꾸었더니, 그 가죽의 수는 60장이나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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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몬인은 한국인의 옷과 구슬과 물건을 귀하게 여겨, 자신들의 가죽옷과 교환을 원했다. 나중에는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조몬인이 몰려왔고 한국인은 구슬을 건네주고 큰 담비 가죽을 얻어 이득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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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도 머무름이 없이 장장(長長) 10일을 가, 약 천여 리까지 갔는데도 계속 그 얼굴의 인간만 보인다. 실로 우리가 돌아갈 수 있는 방책을 물을 길이 없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다시 남쪽을 향해 7일을 갔지만 역시 그 무리들과 같아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계속 남쪽을 향하여 가다가 4일이 되던 날, 해안의 높은 곳에서 갑자기 손을 흔들며 부르는 자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그 인간의 얼굴은 이전의 놈들과는 전혀 다르고 분명히 일본인의 얼굴이었다.


일본인이 말하길 "일본인이 그곳으로 표류를 하면, 그들은 일본인을 전부 죽여버리고 그 고기를 먹는다고 가끔 살아 도망쳐 온 자들이 전해 줍니다. 만일 며칠만 더 표류했더라면, 더욱 무섭고 위험할 뻔했습니다. 그러나 그 화를 면했으니 이 또한 하늘이 도운 것이어서, 그대는 꼭 장수(長壽)할 분입니다.” 하였다. 




7월 1일


“hai의 언어에서 ‘mazmai’라 하는 것은 무슨 말이오?”


“Matsumae을 말하는 것입니다.”


“angrape는 무엇이오?”


“평안이라는 말입니다.”


“‘bargiyi’는 무엇이오?”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akki’는 무엇이오?”


“물[水]입니다.”


“‘abi’는 무엇이오?”


“불[火]입니다.”


그들의 언어를 일본어와 견주어 보니, 완전히 다르다.



오랫동안 표류하는 배에서 지내고, 또 들판에서 잠을 자면서 뜨거운 열에 삶아지고 장기(瘴氣)의 엄습을 받았고, 기갈(飢渴)증으로 몸이 상해진데다가, 밤이면 모기에게 물리고, 또 벼룩과 이에 뜯기는 괴로움을 당해서 기력이 다 빠졌다. 밤에는 해양(海洋)의 중류(中流)에서 가면(假眠)하고 낮에 순풍을 만나면, 해안(海岸)을 따라 항해하고, 만일 순풍을 만나지 못하면 포구(浦口)에 배를 정박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정박하는 곳에 비록 인가가 있기는 하였지만, 모두 하이의 무리들이어서 그 집의 습기(濕氣)와 몰려드는 벼룩 때문에 배 위만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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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몬인의 언어는 일본어와 완전히 다르며, 그들의 주거환경은 너무 열악해서 우리들은 고생이 심했다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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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기록은, 구출을 도와준 일본인에 대한 감사 표현과, 시를 적어서 일본인에게 하사를 하거나, 오사카에 진입해 관백과 이야기를 나눈 시시한 내용뿐으로 1년만에 조선에 돌아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 漂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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