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조선왕조가 일본 에도 막부에 12회 (1607년~1811년)에 겅쳐 통신사를 보냈다

漢城에서 일본 에도까지 약 5.000리 (4.000km)를 왕래하는데 6개월에서 1년이 걸렸다

통신사 규모는 300명에서 500명 정도였다고 한다

 

 

통신사 행로  

 

통신사 일행이 漢城에서 출발하여 부산을 거쳐   대마도에 도착한 후에는 약 1.500명의

일본인이 안내와 경호를 맡았다 

 조선통신사   (쓰시마 민속 박물관   )

일본이 조선통신사에 사용한 비용은 상당했다고 한다

漢城(서울)에서 출발하여 부산까지 가는 비용은 조선이 부담했지만

 

부산에서 출항하여 일본으로 들어 가는 비용과 다시 일본에서 부산으로 돌아갈때 까지 드는 비용은

전액 일본이 부담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에도 막부의 조선통신사 접대 비용은  100만냥에서 130만냥인데 이것은 에도의 1년 예산과 같았다  

1709년 에도 막부의 예산이 76만냥에서 77만냥이었다는 것을 참작하면 조선통신사 접대 비용 100만냥은

엄청난 비용이다 (현재 가치 약 700억엔)

 

통신사 접대 비용은 에도 막부 뿐 아니라  통신사 행렬이 지나가거나 머무는 각 지방의 관청에서도 비용을

부담하고 있었다고 한다

통신사가 지나가는 곳에서는 1년전 부터  주민들에게 특별세가 부과되었고 또 통신사가 체류하는 동안에는  

최상의 요리와 숙소 여흥  등을 제공해야 했다

NHK 보도에 의하면 일본이 조선 통신사에 사용한 접대 비용은  현재 가치로 1회 약 1.000억엔 정도였다고 한다

 

 

히로시마현 시모카마가리 섬 쇼토엔 조선통신사 자료관

 조선통신사가 먹은 음식

 

조선통신사는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조선통신사가 닭을 훔치고 있었을까요 ?

 

 

通信使訪淀城圖

이 그림은 1748년 洪啓禧를 주축으로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 일행이 누선을 타고 해상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  교토 남쪽 淀藩에 도착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당시 이들 통신사를 접대한 와타나베 모리아리가 이 광경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였다고 한다  

 

위 그림은 영인본으로( 朝鮮人來聘記 )에 실린 그림과 일치한다

 

 

이 그림은 빨간 부분을 확대한 그림이다

일본 넷상에서는 닭을 훔치고 일본 서민과 싸우고  있는 조선통신사를 그린 그림으로

교토대학 소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넷상에서 조선통신사가 일본인의 닭을 훔치는 증거로 거론되는 그림이다  

그런데 그림의 빨간 부분을 보면 위에 건물이 있다 이 건물은 下行所인데 통신사를 위한 식품 재료 등을

준비하는 건물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닭은 일본의 민가에서 기르는 닭이 아니고 조선통신사의  접대를 위한 닭이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당시의 모습을 그린( 朝鮮人來聘記 )에는 닭이 달아난 기록은 있지만 닭을 훔치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일본인들이 조선통신사가 닭을 훔쳤다는 증거로 제시하는 자료는  신빙성 없는 것 뿐이었다

예를들면 통신사 일행이 난폭한 馬를 붙잡는 장면의 그림이나 계단에서 침을 밷거나 노상방뇨를  했다는  

 등 닭과 관련없는 것을 증거로 제시했다  

또 조선통신사가 닭을 훔쳤다는 기록이 교토대학 역사 자료관에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런데 신경이 쓰이고 있는 것은 제일 우측에 보면 일본인이 몽둥이로 조선통신사 일행을  치려고 하는

장면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활쏘기에는 능하지만 싸움에는 소질이 없다

닭과 관련해서 기록이 있을까? 그래서 찾아 보았다  

 

1719년에 통신사로 파견된  申維翰이 쓴  (海遊錄)에 따르면

통신사 일행은 하루에 닭 300마리와 달걀 2.000개를  공급받았다고 한다

 

 

1711년 (朝鮮人來朝物語 )에 실린 그림이다

육류를 요리하는 주방의 모습이다

돼지 양 닭 등이 보인다

육식을 좋아하는 조선통신사 일행을 위해 일본인들은 돼지 닭 등 가축을 미리 사육하거나 다른 지역에서

구입하여 제공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史料 등으로 조선통신사가 닭을 훔치지 않았다는  증거로  될 수 있을까? 

 

그림 전체에서 일부분을  잘라내고 그것만  확대하여  조선통신사를 비난하거나  혐한의 재료로 활용했다는

그 자체가 옹졸하고 치졸한 행태라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

 


朝鮮通信使

朝鮮王朝が日本江戸幕府に 12回 (1607年‾1811年)にゴングチョ通信社を行かせた

漢城から日本江戸まで約 5.000里 (4.000km)を往き来するのに 6ヶ月から 1年がかかった

通信社規模は 300人から 500人位だったと言う

通信社行路

通信社一行が 漢城で出発して釜山を経って対馬島に到着した後には約 1.500名医

日本人が案内と警護を引き受けた

朝鮮通信使 (対馬民俗博物館 )

日本が朝鮮通信使に使った費用は相当したと言う

漢城(ソウル)で出発して釜山まで行く費用は朝鮮が負担したが

釜山で出航して日本に入って行く費用とまた日本で釜山に帰るまで入る費用は

全額日本が負担した

記録によれば江戸幕府の朝鮮通信使接待費用は 100万両で 130万両なのにこれは江戸の 1年予算のようだった

1709年江戸幕府の予算が 76万両で 77万両だったということを斟酌すれば朝鮮通信使接待費用 100万両は

おびただしい費用だ (現在価値薬700億円)

通信社接待費用は江戸幕府のみならず通信社行列が過ぎ去るとかとどまる各地方の官庁でも費用を

負担していたと言う

通信社が過ぎ去る所では 1年前から住民たちに特別税が賦課されたしまた通信社が滞留する間には

最上の料理と宿所余興などを提供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NHK 報道によれば日本が朝鮮通信社に使った接待費用は現在価値で 1回約 1.000億円位だったと言う

広島県時モカ馬加里島ショトには朝鮮通信使資料官

朝鮮通信使が食べた食べ物

朝鮮通信使は至れり尽せりなもてなしを受けていた

ところで本当に朝鮮通信使がニワトリを盗んでいたんでしょうか ?

通信使訪淀城図

が絵は 1748年 洪啓禧を主軸で日本に派遣された通信社一行が涙せんに沿って海上旅行の終わり

終着地京都南側 淀藩に到着する場面を描いた絵だ

当時これら通信社を応待したWatanabeモリアリがこの光景を文と絵で記録したと言う

上の絵は影印本で( 朝鮮人来聘記 )に積まれた絵と一致する

が絵は赤い部分を拡大した絵だ

日本ネッサングではニワトリを盗んで日本庶民と争っている朝鮮通信使を描いた絵で

京都大学所長だと明らかにしている

ネッサングで朝鮮通信使が日本人のニワトリを盗む証拠に挙論される絵だ

ところで絵の赤い部分を見れば上に建物があってこの建物は 下行所なのに通信社のための食品材料などを

準備する建物だと言う

だからニワトリは日本の民家で育てるニワトリではなくて朝鮮通信使の接待のためのニワトリがないか?

そんな可能性があると考えられる

当時の姿をグリーン( 朝鮮人来聘記 )にはニワトリの逃げた記録はあるがニワトリを盗む記録はないと言う

日本人たちが朝鮮通信使がニワトリを盗んだという証拠で提示する資料は信憑性ないことだけだった

例えば通信社一行が荒っぽい 馬をつかまえる場面の絵や階段で打つことを ?ことや路上放尿をしたという

などニワトリと関係ないことを証拠で提示した

また朝鮮通信使がニワトリを盗んだという記録が京都大学歴史資料官にあるのか疑わしい

ところで気になっていることは一番右側に見れば日本人が棒で朝鮮通信使仲間を打とうと思う

場面だ

朝鮮の士たちは弓術には上手いがけんかには下地がない

ニワトリと係わって記録があるか? それで捜してみた

1719年に通信社に派遣された 申維翰が使った (海遊録)によれば

通信社一行は一日にニワトリ 300匹とたまご 2.000個を供給受けたと言う

1711年 (朝鮮人来朝物語 )に積まれた絵だ

肉類を料理するキッチンの姿だ

豚羊ニワトリなどが見える

肉食が好きな朝鮮通信使仲間のために日本人たちは豚ニワトリなど家畜をあらかじめ飼育するとか他の地域で

購入して提供したりしたと言う

こんな 史料 などで朝鮮通信使がニワトリを盗まなかったという証拠になることができるか?

絵全体で一部分を切り捨ててそれだけ拡大して朝鮮通信使を責めるとか嫌韓の材料で活用したという

そのものがせせこましくて稚拙な行動と考えられないです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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