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한글은 일본이 보급시켰다


 한국인은, 원래 일본인과 같이 교육 수준이 높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터무니 없는 실수입니다.일본은, 에도시대에는 벌써 일본 전국에 번교나 서당이 있던 일에 비해, 우민 사회의 한반도는 이조 시대에는, 한문 교육이 주류로, 한글은 금지되고 있었습니다. 어째서 한글이 정부보다 금지되고 있었는가는 다음에 씁니다만, 한글 뿐만이 아니라, 지배자 계급의 양반 이외의 서민의 교육은 반대되고 있었다.원래 한자라든지 한문은 수박겉핥기의 문자 체계로, 한학의 주인은도 장미 그 문의의 독해에, 수수께끼를 풀도록(듯이) 그, 생애의 전정력을 소비하고 있었다.일로 양반 계급의 경우는, 일부러 한자를 번잡하게 하고, 서민이 읽을 수 없게 하고 있었다.


 한자가 서민이나 노비에 간단에 읽혀지면, 권위가 없어져, 쌓인 것은 아니라고 하는 실로 시시한 이유로부터입니다.

원래 유교 문화권은, 조선에 한하지 않고, 그 사회구조가 기본적으로 과거를 위한 공부가 중심이 되어, 읽고 쓰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 우민 사회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것은 근대의 이십세기가 되고 나서도 조선의 종주국 님인 시나가 그렇고, 신가이혁명 이후라도, 국민 학교 교육이 제창되었을 때에 정면으로부터 반대하는 것이 문인이었다고 하는 일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즉, 일반 대중이 교육을, 농민이나 노동자도 문자를 읽을 수 있게 되는 일을, 반대하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지요.그러나, 이것이, 시나, 조선의 20 세기 초두의 진짜 모습입니다.

 원래, 한글과는 1446년에 「세종대왕」이 만들기 「서민」이기 때문에, 어려운 한문보다 한글을 펼치려고 했지만, 당시의 「양반」이 공문서에게는 사용할 수 없으면 방치, 그리고, 대왕의 3대째가, 한글청폐쇄해 버린다.


 즉, 한반도의 서당으로 배우고 있던 것은, 한자의 읽고 쓰기 뿐이었다.

그것 만이 아니다.농민도 일꾼의 아이가 학교에 있어지는 것을 극력 반대하고, 교사가 부모를 설득하는 것이 큰 일이었다.그것은 대만에서도 같고,

금세기의 처음경, 조선, 대만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보여지는 취학 연령기의 아동은 몇 퍼센트 밖에 없었다.


 이조 조선은, 서원, 학당이 있었지만,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은, 극히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일로 여성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던 것만으로도 엘리트였다.

이것에 대해서는, 일본에 밀입국, 객지벌이하러 와 자리잡은 재일 한국인 일세가, 거의 7~하치와리의 비율로 읽고 쓰기할 수 없었던 것에도 나타나고 있다.강재언의 「일본에 의한 조선 지배의 40년」(아사히 문고 73 페이지)

 

 일본 정부가 조선에서 교육을 보급시킨 것은, 「우민 교육」에 있다고 하는 한국인, 반일 일본인도 있지만, 바보로 밖에 좋게가 없는 것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 정책과 비교해 보면 있어인가 비논리적인가 아는 일입니다.


원래 우민 정책을 취하고 있는 유교 문화권에, 어째서 교육을 보급시켰는지, 조금이라도 생각하면 아는 일입니다.

그것을, 문자를 빼앗았다는 등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보나 트집의 야쿠자 이하의 민족 뿐입니다.


 원래, 조선어는, 토호쿠, 서북, 나카 미야코, 니시난, 히가시카타, 제주도의 여섯 개의 대부분 말구분으로 나누어져 이조 시대에는, 언어적으로 브러쉬해 통일되지는 않았던 것을, 조선 총독부는, 조선어를 체계화했던 것이다.

 양반은 한문·한문어를 중심으로, 언문(은혜도 ), 언어를 배척, 경멸하고 있었다.

서울어를 표준어로서 한자, 한글  섞인 문장을 체계화한 것은, 1897년 일본의 오구라 쇼우헤이씨가 「조선어, 한글학사」로 한문 교육 주체로 90%이상을 문자의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의 교육에 사용이고라고 1913년에 본격적으로 오구라 쇼우헤이, 카나자와 쇼우이치로우 박사에 의해 한글 교육이 시작되어, 교육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완성되었다.일본인 언어학자와 교육학자를 중심으로 하는 전문가의 노력에 의하는 것이다.

 




marisa씨 반론이 있다라면, 감정적인 어휘를 사용하지 않고 자료를 더해 논리적으로 반론해 주세요!
당신이 올린 스렛드는 대략으로 잘못해가 아니지만, 자기만족적인 과대 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시의 한글은 불완전한 언어로 정확하게는 표현 되어 있지 않은 초기 한글의 시대의 물건입니다 지금도 한글에 일본어가<읽기로>들어가 있는 것은 조선어에 그 어휘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어를 맞힌<읽기로>는 일입니다.




내일의 식량 확보를 걱정하면서 소설을 즐기는 서민이, 존재하고 있어도 일이 되어 있습니다만····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는 그렇게 써서는, 없을 것입니다가···<역사 고증의 결핍>


marisa さんへ・・・

ハングルは日本が普及させた


 朝鮮人は、もともと日本人と同じように教育水準が高かったと考えている人が多いが、とんでもない間違いです。日本は、江戸時代にはすでに日本全国に藩校や寺子屋があった事に比べて、愚民社会の朝鮮半島は 李朝時代には、漢文教育が主流で、ハングルは禁止されていたのです。 どうしてハングルが政府より禁止されていたかは後で書きますが、ハングルだけでなく、支配者階級の両班以外の庶民の教育は反対されていた。そもそも漢字とか漢文は一知半解の文字体系で、漢学の大家はもっばらその文意の読解に、なぞなぞを解くようにその、生涯の全精力を 費やしていた。ことに両班階級の場合は、わざと漢字を煩雑にして、庶民が読めないようにしていた。 


 漢字が庶民や奴婢にかんたんに読まれたら、権威がなくなり、たまったものではないという実にくだらない理由からです。 

そもそも儒教文化圏は、朝鮮にかぎらず、その社会構造が基本的に科挙のための勉強が中心となり、読み書きできない人びとが多い愚民社会を前提にしている。 


 それは近代の二十世紀になってからも朝鮮の宗主国様である支那がそうであり、辛亥革命以後でも、国民学校教育が提唱されたときに真っ向から反対するのが文人であったという事でもよくあらわれている。つまり、一般大衆が教育を、農民も労働者も文字が読めるようになる事を、反対していたのです。

なんと愚かな事でしょう。しかし、これが、支那、朝鮮の20世紀初頭の本当の姿なのです。

 もともと、ハングルとは1446年に「世宗大王」が作り「庶民」の為、難しい漢文よりハングルを広げようとしたが、当時の「両班」が公文書には使えないと放置、そして、大王の3代目が、ハングル庁閉鎖してしまう。


 つまり、朝鮮半島の書堂で教えられていたものは、漢字の読み書きだけであった。

それだけではない。農民も働き手の子どもが学校にとられるのを極力反対して、教師が父母を説得するのが大変であった。それは台湾でも同じで、 

今世紀の初めごろ、朝鮮、台湾で教育を受けたとみられる 学齢期の児童は数パーセントしかいなかった。 


 李朝朝鮮は、書院、学堂があったが、教育を受けられるものは、ごく少数でしかなかった。 

ことに女性は、小学校に入れただけでもエリートであった。 

これについては、日本に密入国、出稼ぎにきて居着いた在日朝鮮人一世が、ほとんど七~八割もの割合で読み書きできなかったことにも表れている。姜在彦の『日本による朝鮮支配の40年』(朝日文庫73ページ)

 

 日本政府が朝鮮で教育を普及させたのは、「愚民教育」にあるという朝鮮人、反日日本人もいるが、アホとしかいいようがないのは、ヨーロッパ列強の植民地政策と比べてみればいか非論理的かわかる事です。


元々愚民政策をとっている儒教文化圏に、どうして教育を普及させたのか、すこしでも考えればわかる事です。

それを、文字を奪ったなどと言っているのはバカか言い掛かりのヤクザ以下の民族だけです。


 そもそも、朝鮮語は、東北、西北、中都、西南、東方、済州島の六つの大方言区分に分かれ、李朝時代には、言語的にはけっして統一されてはいなかったものを、朝鮮総督府は、朝鮮語を体系化したのだ。

 両班は漢文・漢語を中心に、諺文(おんもん)、諺語を排斥、軽蔑していた。 

ソウル語を標準語として、漢字、ハングル混じりの文章を体系化したのは、1897年日本の小倉昇平氏が「朝鮮語、ハングル学史」で漢文教育主体で90%以上が文字の読めない人達の教育に使いだして1913年に本格的に小倉昇平、金沢昇一郎博士によりハングル教育が始まり、教育が出来る様に成った。日本人言語学者と教育学者を中心とする専門家の努力によるものだ。

 




marisaさん 反論があるなら、感情的な語彙を使わず資料を添えて論理的に反論してください!!
貴方が揚げたスレッドは大筋で間違いじゃないが、自己満足的な誇大表現が含まれています

当時のハングルは不完全な言語で正確には表現できていない初期ハングルの時代の物です 今もハングルに日本語が<読みで>入っているのは朝鮮語にその語彙が存在しなかったので日本語を当てた<読みで>って事です。




明日の食糧確保を心配しながら 小説を楽しむ庶民が、存在していたって事になっているのですが・・・・
韓国の歴史教科書にはそう書いては、いないのでしょうがね・・・<歴史考証の欠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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