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로신/액체산소 산화제과잉 예연소기 기술은 다단연소 사이클 엔진인 RD-170이 개발된 1980년대 구소련에서 처음 개발되었고 지금은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이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우크라이나의 제니트, 미국의 아틀라스, 러시아의 앙가라 등 주력 발사체에 활발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중국은 러시아의 도움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개발을 이어나갔습니다. 이후에도 우주개발이 턱에 부딪힐 때마다 기술이전을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한 예로, 구소련이 붕괴될 때 중국은 액체 산소/케로신 엔진인 RD-120 엔진을 들여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엔진은 첨단 기술의 산물로 실물이 눈 앞에 있어도 쉽게 복사할 수 없습니다. 중국도 무려 15년이라는 기간동안 RD-120을 연구했고 결국 이를 바탕으로 성능이 크게 향상된 YF-100 엔진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이 엔진은 중국의 차세대 로켓인 창정 5, 6, 7호에 사용될 계획입니다.

미국은 아폴로 프로젝트 이후 우주왕복선 프로그램부터는 액체수소/액체산소 엔진에 주력하면서 케로신/액체산소 엔진 개발이 힘을 잃었고 이 분야에 대해서는 그동안 큰 연구개발 성과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큰 추력을 필요로 했던 미국은 케로신/액체산소 엔진에 대한 신규 개발의 부담을 지는 대신 수소와 케로신의 중간 성능을 보여주는 메탄 엔진 쪽에 관심을 갖고 주력했습니다. 2011년에 들어서는 민간기업인 블루오리진(Blue Origin)이 산화제과잉 예연소기를 사용하는 액체메탄/액체산소 다단연소 사이클 엔진인 BE-4 엔진 개발을 시작하여 2016년에 첫 엔진 시험을 수행했고, 현재에도 계속 개발 중에 있습니다. 스페이스 X(SpaceX)는 아예 이를 한 단계 더 뛰어넘어 액체메탄/액체산소를 쓰면서 산화제과잉 예연소기와 연료과잉 예연소기를 동시에 사용하는 전유동 다단연소 사이클엔진의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현재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RD-180 엔진을 구매해 아틀라스 V(Atlas V)발사체에 사용하고 있고, 안타레스(Antares) 발사체는 러시아의 NK-33을 구매해 사용하다가 현재 안타레스 200 시리즈부터는 역시 러시아의 RD-181을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우주발사체의 대러시아 의존도가 높아지자 미국은 자국의 케로신/액체산소 엔진 개발의 필요성을 인식했으며 에어로젯 로켓다인(Aerojet Rocketdyne)은 2014년부터 케로신/액체산소 산화제과잉 다단연소사이클 엔진인 AR1의 개발을 시작하였습니다. 미국으로서는 이 분야에 대해서는 이제 막 발을 들여놓은 셈입니다.

우주선진국 중에도 산화제과잉 고압 연소에 대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특히 케로신/액체산소 분야는 더욱더 적습니다. 기술 보유국이 적다는 것이 필요성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현재 이 분야에 대해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활용한 우주개발에 매진하고 있는 국가가 우주발사체 최상위 그룹이라 할 수 있는 러시아, 미국, 중국 정도라는 점을 상기하여 보면 이 기술이 매우 필요하면서도, 그러나 생각보다 난이도가 있는 분야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가 이 부분에 대한 기술을 자체 개발하여 상당 부분 확보하였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걸음 한 걸음씩 쌓여가는 기술은 우리나라 미래 우주발사체의 밑거름이 될 것이라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