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부터 국산 전투기 개발 (위해)때문에, 필요 기술의 연구 개발이 시작됩니다.
방위성이 제시한 요구 성능은 이하와 같다
①대 함미사일4발을 쌓은 상태로 전투 행동 반경830km.
②대공 미사일 단거리2발, 중거리4발탑재.
③전천후 운용
④고도의 전자전 능력
미츠비시, 카와사키는, 엔진 이외라면 국산 가능과 대답.
1985년에 선정이 시작되어,
F-16C,F/A-18는 공동 개발에 의한 능력 향상.
Tornado IDS는 능력 향상.
미츠비시, 카와사키는 국산 개발의 제안이 되었다.
국산 개발은, 미국으로부터의 엔진 공여가 전제이기 때문에, 미국의 거부에 의해 좌절했다.
공동 개발이 되기 전에 미츠비시는, 미국 국방총성의 사찰을 인수국산 전투기에 포함시킬 예정의 신기술을 공개했다.
①주 날개의 신소재(탄소계 복합재)
②국면 도어 레이 레이더-
③스텔스성
④CCV기술
최종적으로 개조 범위의 크기, 복합 소재의 사용, 기수의 재설계, 아비오닉스의 일본제 기기 탑재를 인정했다
당시 , 일·미는 무역마찰로 한창.
공동 개발에도 상당한 제약이 부가되었다.
①F-16C의 원시 코드의 불개시.
②미국의 일분담의 최대화.
③일본의 최신 기술을 미국에 제공.
미츠비시는 대함미사일 탑재 (위해)때문에, 수직꼬리 이외의 모두를재설계했다.
그러므로F-16C와 같은 것은, 수직꼬리 뿐이다.
한층 더 원시 코드가 개시되지 않았던 때문,FBW나 아비오닉스등은 일본제가 사용되었다.
또, 세계 최초의AESE레이더-탑재기.
시대 배경으로 번농 된F-2이지만, 최종적으로는 일본을 자유롭게 개조 할 수 있게 된 최초의 기체가 되었다.
한국인이 국산기는 아니다고 하지만, 잘못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일본이 미국에 허가없이 개조 할 수 있는 일은 일본에 있어서 꽤 큰 성과입니다.
현재도 능력 향상 개수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경험은F-3개발이 공동 개발이 되었다고 해도 우위에 교섭 할 수 있는 일이 된다.
한국의 실시하는 공동 개발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국산기로서의 F-2 완성 예상도
1978年より国産戦闘機開発の為、必要技術の研究開発が始まります。
防衛省が提示した要求性能は以下の通り
①対艦ミサイル4発を積んだ状態で戦闘行動半径830km。
②対空ミサイル 短距離2発、中距離4発搭載。
③全天候運用
④高度な電子戦能力
三菱、川崎は、エンジン以外ならば国産可能と返答。
1985年に選定が始まり、
F-16C、F/A-18は共同開発による能力向上。
Tornado IDSは能力向上。
三菱、川崎は国産開発の提案になった。
国産開発は、アメリカからのエンジン供与が前提の為、アメリカの拒否により頓挫した。
共同開発になる前に三菱は、アメリカ国防総省の査察を受け入れ国産戦闘機に盛り込む予定の新技術を公開した。
①主翼の新素材(炭素系複合材)
②フェーズドアレイレーダー
③ステルス性
④CCV技術
最終的に改造範囲の大きさ、複合素材の使用、機首の再設計、アビオニクスの日本製機器搭載を認めたF-16Cに決まった。
当時、日米は貿易摩擦の真っ最中。
共同開発にもかなりの制約が付加された。
①F-16Cのソースコードの不開示。
②アメリカの仕事分担の最大化。
③日本の最新技術をアメリカに提供。
三菱は対艦ミサイル搭載の為、垂直尾翼以外の全てを再設計した。
ゆえにF-16Cと同じなのは、垂直尾翼だけである。
さらにソースコードを開示されなかった為、FBWやアビオニクス等は日本製が使われた。
また、世界初のAESEレーダー搭載機。
時代背景に翻弄されたF-2だが、最終的には日本が自由に改造出来るようになった最初の機体になった。
韓国人が国産機では無いと言うが、間違えてはいない。
しかし、日本がアメリカに許可なく改造出来る事は日本にとってかなり大きな成果です。
現在も能力向上改修を行っています。
この経験はF-3開発が共同開発になったとしても優位に交渉出来る事になる。
韓国の実施する共同開発とは次元が違うのです。
国産機としてのF-2完成予想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