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오지마에서 일·미 합동 위령식
유족이나 정부 관계자등이 추도
양국의 유족이나 정부 관계자등 약 300명이 참례해, 약 2만 9000명에 달하는 전몰자를 애도했다.
부친이 이오지마에서 전사한 이오지마 협회의 테라모토철 아키라 회장(74)은 「비참한 싸움을 두 번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영원하게 후세에 구전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라고추도의 말을 말했다.
전투에 참가한 노우 맨·스미스 전 해병대 중장은 「이 식전이 화해와 존경의 생각 중(안)에서 항상 인계되어 가는 것을 기원합니다」라고 인사했다.
이오지마에서는 1945년 2월에 상륙한 미군과의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전개되어 일본측의 희생자는 약 2만 1900명에 달했다.
약 1만 1450기둥의 유골은 지중에 메워진 채로로 여겨지고 수집이 계속되고 있다.
https://news.nifty.com/article/domestic/society/12145-227336/
과거의 일·미 합동 위령식
진혼 동기의 벚꽃, 순검의 보, 바다하마, 젊은 독수리의 노래 연주는 해상 자위대오음악대
이오지마의 싸움
일본군은 수비 병력 20,933명중96%의 20,129명이전사 있다 있어는 전투중의 행방불명이 되었다.
한편, 미군은 전사 6,821명·전상 21,865명의 합계 28,686명의 손해를 받았다.
태평양전쟁 후기의 상륙전에서의 미군 공략 부대의 손해 실수가 일본군을 웃돈 희유인 싸움이며,
필리핀의 싸움 (1944-1945해)이나 오키나와전과 함께제이차 세계대전의 태평양 전선 굴지의 최격전지의 하나로서 알려진다.
硫黄島で日米合同慰霊式
遺族や政府関係者らが追悼
両国の遺族や政府関係者ら約300人が参列し、約2万9000人に上る戦没者を悼んだ。
父親が硫黄島で戦死した硫黄島協会の寺本鉄朗会長(74)は「悲惨な戦いを二度と繰り返さぬよう、永く後世に語り継ぐ責任と義務がある」と追悼の言葉を述べた。
戦闘に参加したノーマン・スミス元海兵隊中将は「この式典が和解と尊敬の念の中で常に引き継がれていくことを祈念します」とあいさつした。
硫黄島では1945年2月に上陸した米軍との間で激しい戦闘が繰り広げられ、日本側の犠牲者は約2万1900人に上った。
約1万1450柱の遺骨は地中に埋まったままとされ、収集が続けられている。
https://news.nifty.com/article/domestic/society/12145-227336/
過去の日米合同慰霊式
鎮魂 同期の桜、巡検の譜、海ゆかば、若鷲の歌 演奏は海上自衛隊呉音楽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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硫黄島の戦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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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軍は守備兵力20,933名のうち96%の20,129名が戦死あるいは戦闘中の行方不明となった。
一方、アメリカ軍は戦死6,821名・戦傷21,865名の計28,686名の損害を受けた。
太平洋戦争後期の上陸戦でのアメリカ軍攻略部隊の損害実数が日本軍を上回った稀有な戦いであり、
フィリピンの戦い (1944-1945年)や沖縄戦とともに第二次世界大戦の太平洋戦線屈指の最激戦地の一つとして知られ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