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新羅>・<百済>皆以<倭>為大国,
結局文法的にこの文章に対する結論はそうです
新羅百済人がなぜをクンナラで思った. と言う解釈と
新羅百済人がなぜを持って大きい国になるようにした. ( 大きい国を作った)
二つの解釈がすべて可能です. この場合一般的な論理的プロセスはどの解釈が常識にもっと符合するかと言うことになるでしょう. もちろん新羅百済人が 倭だと言う地域で国家のフレームを立てた. と言う解釈は現代の日本人韓国人において共通的にすごく不快な解釈であるだけでなく私たちが持っている常識とも行き違います.

 

そうですこれを一般的に新羅百済人はなぜを大きい国で思っただと解釈するようになることはこれが語法的に 100% 確信を持ってする解釈ではなくそのまま私たちの固定観念がなぜを建国した主体が新羅百済人という解釈が私たちの常識と大きく行き違うからこれを排除してそのまま私たちの通念に挟んで合わせて新羅百済人はなぜを大きい国で思った  と解釈したことに過ぎないのです.

 

或有以皮為舟者  この文章をあるいは皮で船を作る者がいてと解釈します. あるいは皮をお腹でここは者がいる. と解釈しないです. 前の解釈が私たちの一般的な常識通念と一致するからそれほど解釈します. それと似ているのです

 

が時点でこの前に話したイシワタリShinichiへの話を一度吟味して見ます

イシワタリシンイチへの主張は日本の古代史研究を大和中心士官のため停滞されていてと言う一言で表現します. そして最近の考古学籍発掘それも日本宮内庁の日本チォンファングルングは事由財産なので掘り出さない. と言う前近代的な発想によってよほど制限的な発掘にもかかわらず上の文章を新羅百済人がなぜを持って大きい国を作ったと解釈しなければならない遺物たちが列島で出土されていますが変わることはないです. 停滞されているという非難を聞いても当たりますね..

 

 

 

初めてこの人を接した時の感じはそうでした. この主張の実は可否を別にして日本人がこんな主張をするというのがすごくフレッシュだったし不思議だったということ. そして日本人として不可欠でぶつかるようになる宗教的民族的限界を飛び越えてひたすら歴史的実は糾明にだけ一一生を貢献する姿.. 本当に印象的だったです

 

そして韓国を見ます. 韓国の古代史研究は鎭火していましょうか? 日本人のような宗教的民族的制約がない韓国人においてこんな主張は倦まず弛まず少数意見に開進されたがよく話す講壇史学係では全然論議されることができません. 本当に皮肉としか言いようがないです.


韓国では少数だけ主張されて日本でむしろ活発に論議される部分たち..

日本の傀儡政府だと言っても構わない李明博政権, 南大門をテウォモックゴもたんたんと高い席を維持する親日史学者イ・ビョンドのソンザブン.. その学脈の延長船上にある韓国学界.. そしてたびたび聞こえる日本右翼資金の韓国学界流入..

 

こんなことまで話せば限度終りもないだろうしかしまちがいなく
その反対側の変化もあります.

 

文を書いている私も日本人との対抗の次元でこの分野に関心を持った
平凡な人です. どの位平凡なのかすれば平凡な人々がそのように
大学入学が決まってから国史受験書が机にあることさえうんざりして
速かに古い本屋に八苦二度と国史本はチョダも見なかろう ‾ そんな
覚えますね

こんな私のような平凡な人もインターネットの発達で韓国中国日本の各種
史料をマウスでクリックだけで蝕合することができるし翻訳機と少しの基礎的な
日本語実力で日本側の主張なども分かるようになりました. 何より
ウェブにマウスをがジョだ対面自動で漢字が翻訳される.. 大変に玉篇を捜さなくても良いシステムが取り揃えてくれたというのです.これは非常に重要な変化です

 

 

そして私はよほど長い間ネリョウォッドン韓日古代史論争を終熄させることができる重要な変曲点を見つけました. それがこのブックサ解釈は何が正しいか?に対する

その間日本と韓国の一刻で倦まず弛まず少数説で申し立てられたが心証だけあって物証はなかった列島の新羅百済分局説に対して中国正史に記録されているのにただ解釈ができないということを見つけることで

がブックサ解釈を正しくすればその祈願をわからない
列島百済分局説と大和中心士官のギルゴだと論争を終熄させることができる
理論的な基盤が用意されることです

 

よほらがひどすぎますか ‾ いつになるか分からない勝った連載を付いて来ることができたらこれはほらではないと言うことが分かるようになるでしょう. しかし私はネチズンたちがマウスをクリックして各種史料たちを自ら検討してそれなりに独自の結論を下すように願います. それが歴史が停滞されるように願う者等に対する膺懲になるはずだから

 

 

そして気になる広開土大王碑文話申し上げます ‾

 


한일 고대사 (5) - 정체된 한일 고대사 연구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
결국 문법적으로 이 문장에 대한 결론은 그렇습니다
신라 백제인이 왜를 큰나라로 여겼다. 라고 하는 해석과
신라 백제인이 왜를 가지고 큰 나라가 되게 하였다. ( 큰 나라를 만들었다)
두가지 해석이 다 가능합니다. 이 경우 일반적인 논리적 프로쎄쓰는 어느 해석이 상식에 더 부합하는가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물론 신라 백제인이 倭라고 하는 지역에서 국가의 틀을 세웠다. 라고 하는 해석은 현대의 일본인 한국인에게 있어서 공통적으로 무척 불쾌한 해석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상식과도 어긋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을 일반적으로 신라 백제인은 왜를 큰 나라로 여겼다 라고 해석하게 되는 것은 이것이 어법적으로 100% 확신을 가지고 하는 해석이 아니라 그냥 우리의 고정 관념이 왜를 건국한 주체가 신라 백제인이라는 해석이 우리의 상식과 크게 어긋나기 때문에 이것을 배제하고 그냥 우리의 통념에 끼워 맞춰" 신라 백제인은 왜를 큰 나라로 여겼다"  라고 해석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或有以皮爲舟者  이 문장을 혹은 가죽으로 배를 만드는 자가 있다 라고 해석합니다. 혹은 가죽을 배로 여기는 자가 있다. 라고 해석하지 않습니다. 앞의 해석이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 통념과 일치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석합니다. 그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지난 번에 이야기 했던 이시와타리 신이치로의 이야기를 한번 음미해봅니다

이시와타리 신이찌로의 주장은 일본의 고대사 연구를 야마토 중심 사관 때문에 "정체되어 있다" 라고 하는 한마디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 그것도 일본 궁내청의 일본 천황릉은 사유 재산이므로 발굴하지 않는다. 라고 하는 전 근대적인 발상에 의해 상당히 제한적인 발굴에도 불구하고 위 문장을 " 신라 백제인이 왜를 가지고 큰 나라를 만들었다" 라고 해석해야 하는 유물들이 열도에서 출토되고 있습니다만 바뀌는 것은 없습니다. 정체되어 있다는 비난을 들어도 맞겠지요..

 

 

처음 이 사람을 접했을 때의 느낌은 그랬습니다. 이 주장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일본인이 이런 주장을 한다는 것이 무척 참신했고 신기했다는 것. 그리고 일본인으로서 필연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종교적 민족적 한계를 뛰어넘어 오로지 역사적 사실 규명에만 한 평생을 공헌하는 모습.. 참 인상적이었지요

 

그리고 한국을 봅니다. 한국의 고대사 연구는 진화하고 있을까요? 일본인과 같은 종교적 민족적 제약이 없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이런 주장은 꾸준히 소수 의견으로 개진되었지만 흔히 이야기 하는 강단 사학계에서는 전혀 논의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 아이러니 합니다.


한국에서는 소수만 주장되고 일본에서 오히려 활발하게 논의되는 부분들..

일본의 괴뢰 정부라고 해도 무방할 이명박 정권, 남대문을 태워먹고도 담담하게 높은 자리를 유지하는 친일 사학자 이병도의 손자분.. 그 학맥의 연장 선상에 있는 한국 학계.. 그리고 종종 들려오는 일본 우익 자금의 한국 학계 유입..

 

이런 것까지 이야기 하면 한도 끝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틀림없이
그 반대편의 변화도 있습니다.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일본인과의 대항의 차원에서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평범한 사람입니다. 어느 정도 평범하냐 하면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듯
대학 입학이 결정되고 나서 국사 수험서가 책상에 있는 것 조차 지겨워서
신속하게 헌 책방에 팔고 다시는 국사 책은 쳐다도 보지 않으리라 ~ 그런
기억이 나는군요

이런 저 같은 평범한 사람도 인터넷의 발달로 한국 중국 일본의 각종
사료를 마우스로 클릭만으로 취합할 수 있고 번역기와 약간의 기초적인
일본어 실력으로 일본 측의 주장들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웹에 마우스를 가져다 대면 자동으로 한자가 번역되는.. 힘들게 옥편을 찾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이 갖추어 주었다는 것입니다.이것은 매우 중요한 변화입니다

 

그리고 저는 상당히 오랫동안 내려웠던 한일 고대사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중요한 변곡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이 이 북사 해석은 무엇이 올바른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동안 일본과 한국의 일각에서 꾸준히 소수설로 제기되었지만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던 열도의 신라 백제 분국설에 대해서 중국 정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단지 해석을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함으로써

이 북사 해석을 올바르게 하면 그 기원을 알 수 없는
열도 백제 분국설과 야마토 중심 사관의 길고긴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이론적인 기반이 마련되는 것입니다

 

아 허풍이 너무 심합니까 ~ 언제가 될 지 모를 이 긴 연재를 따라올 수 있다면 이것은 허풍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네티즌들이 마우스를 클릭해서 각종 사료들을 스스로 검토해서 나름대로 독자적인 결론을 내리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역사가 정체되기를 바라는 자들에 대한 응징이 될테니까요

 

그리고 궁금해하시는 광개토대왕 비문 이야기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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