伝統文化
[伽揶文化圏踏査 11] 国立金海博物館の鉄器遺物

 

 

鉄衣王国街だ. 伽揶に対する話が出る時ならいつも漏れ無く出る言葉の中で一つがまさにこの言葉だ. 伽揶の歴史をよく見るにあって決して漏らすことができない部分が物心で, また伽揶と係わる遺物の中で土器とともに主従を成すのがまた鉄器だからこんなニックネームが付いたのだ. 鉄器によって伽揶は大きい勢力を形成することができたし, ひとときは新羅を圧迫する水準まで上がることができた.

 

このように伽揶と鉄器の関係は非常に密接だ. 物心は青銅器とは違いもうちょっと手に入れやすくて堅いから武器に作るあつらえ向きだ. それに農機具などでも作ることができるし, 当時世界でその価値を認められたから交易の主な対象でもあった. そして当時優秀な鉄器を持ったこれは他の人々に比べて優越な位置にあり得たし, 伽揶も例外ではなかった.

 

伽揶勢力が成長することができた背景がまさにこの鉄器にあった. 記録を通じて伽揶鉄器の優秀さを分かって, 考古学籍遺物としてもこのような傾向は充分に発見される. また鉄器の登場は単純に優秀な武器を作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点を超えて, 征服戦争の手始めを知らせる序曲だった. 以後の歴史は既存の青銅器時代よりずっと激しくて乱れている時代に走り上げるようになって, 同時に文化の発達や社会の発達を成す大きいきっかけになる.

 

物心はどんなに生産しようか?

 

 

  
▲ 昌原ボングリムドングユゾックの製鉄油で 韓国文物研究員によって発掘された悠久として, 4‾5世紀敬意伽揶時代製鉄遺跡に推定される
c。 韓国文物研究員

 

昌原ボングリムドングユゾック

 

2007年 10月, 言論を通じて驚きべきな消息が一つ知られた. すぐ江原文化再演旧ソでホンチョン鉄挺里


가야에 "철의 왕국"이 붙은 이유는?

[가야문화권 답사 11] 국립김해박물관의 철기유물
 

철의 왕국 가야. 가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언제나 빠짐없이 나오는 말 중 하나가 바로 이 말이다. 가야의 역사를 살펴봄에 있어서 결코 빼먹을 수 없는 부분이 철이고, 또한 가야와 관련된 유물 중에서 토기와 함께 주종을 이루는 게 또한 철기이기 때문에 이런 별명이 붙은 것이다. 철기로 인하여 가야는 큰 세력을 형성할 수 있었고, 한때는 신라를 압박하는 수준까지 오를 수 있었다.

 

이렇듯 가야와 철기의 관계는 매우 밀접하다. 철은 청동기와는 달리 좀 더 구하기가 쉽고 단단하기 때문에 무기로 만들기 제격이다. 게다가 농기구 등으로도 만들 수 있고, 당시 세계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기 때문에 교역의 주된 대상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우수한 철기를 가진 이는 다른 이들에 비해 우월한 위치에 있을 수 있었으며, 가야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가야세력이 성장할 수 있던 배경이 바로 이 철기에 있었다. 기록을 통해서도 가야 철기의 우수함을 알 수 있으며, 고고학적 유물로서도 이러한 경향은 충분히 발견된다. 또한 철기의 등장은 단순히 우수한 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넘어, 정복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이후의 역사는 기존의 청동기시대보다 훨씬 격렬하고 어지러운 시대로 치닫게 되며, 동시에 문화의 발달이나 사회의 발달을 이루는 큰 계기가 된다.

 

철은 어떻게 생산할까?

 

  
▲ 창원 봉림동유적의 제철유구 한국문물연구원에 의해 발굴된 유구로서, 4~5세기 경의 가야시대 제철유적으로 추정된다
ⓒ 한국문물연구원
창원 봉림동유적

 

2007년 10월, 언론을 통하여 깜짝 놀랄만한 소식이 하나 알려졌다. 바로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홍천 철정리 Ⅱ 유적지를 발굴하던 중 철기유물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철기유물이 무슨 대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유물은 우리나라 최초의 철기유물로서 탄소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640년에서 620년 사이, 즉 기원전 7세기경의 유물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를 통하여 우리나라 철기시대의 상한을 높일 수도 있지만 이를 확신하기엔 좀 더 많은 유물들이 출토되어 자료를 축적해야 한다고 본다.

 

역사상에서 철기생산이 본격적으로 이뤄진 것은 기원전 1000년 무렵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철기가 제작되었으며 우리나라는 기원전 4~3세기 정도부터 유입되고, 기원전 1세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철기시대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야지역은 기원전후 단계에 철광석을 이용한 철 생산이 본격화되었다.

 

이러한 철의 생산은 크게 5단계로 나누어지는데, 채광, 제련, 용해, 정련, 단련 등이 그것이다. 채광(採鑛)은 철광석을 캐내는 작업으로서 주변에 있는 우수한 철산지가 있어야 가능한데, 가야지역은 양산 등 철산지가 풍부하였다. 다음은 제련(製鍊)으로서 철광석에서 철을 뽑아내는 공정이다. 제철로에 철을 넣고 숯으로 불을 지피는데, 철은 일반적으로 1500℃ 이상의 온도에서 녹지만, 숯과 함께 넣으면 1300℃ 정도에서 녹는다고 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철과 철찌꺼기(Slag)가 분리된다. 최근 한국문물연구원에 의해 창원 봉림동유적에서 4~5세기경의 제철유적이 발견된 바가 있는데, 이곳을 가야시대의 제철유적으로 보고 있다.

 

  
▲ 단야도구 경남 양산 북정리와 합천 옥전고분군 등에서 출토된 유물들로서 철괴를 불에 달궈 다양한 도구를 제작할 수 있는 유물들이다. 동아대학교박물관 등에 소장되어있다
ⓒ 철의 왕국 가야
단야도구

 

그 다음 단계는 바로 용해와 정련이 있다. 용해(鎔解)는 주조(鑄造)라고도 하는데, 제련공정에서 얻어진 환원철 중 탄소량이 높은 선철을 녹여 주조제품을 만드는 작업을 말한다. 이때 쓰이는 것이 도가니와 거푸집인데, 거푸집에 만들고자 하는 제품의 모양을 만들고 그 속에 쇳물을 부어 철기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철기를 주조철기라고 하며 솥이나 도끼 등이 이에 해당한다.

 

정련(精鍊)은 단야(鍛冶)라고도 하며 환원철 중 탄소량이 낮은 철괴를 조정하여 단조용 소재로 만드는 작업이다. 이때 쓰이는 것이 집게, 망치, 받침모루, 끌, 숫돌 등으로서 가야지역에서는 양산 북정리나 합천 옥전 등에서 이와 같은 유물들이 출토된 바 있다. 다음 단계는 단련(鍛鍊)으로서 철소재를 불에 달궈 두드려서 단조철기를 만드는 작업이다. 이를 통하여 주로 무기나 농기구 등이 만들어지며, 이 경우 주조를 한 것 보다 내구성이 강하다고 한다.

 

가야 주요 수출품이자 화폐였던 덩이쇠

 

  
▲ 덩이쇠 김해 대성동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로서 가야시대엔 화폐나 교역품으로 이용되었다. 당시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 철을 구하기 위해 가야로 왔었다
ⓒ 국립김해박물관
덩이쇠

 

이러한 가야의 철기문화를 반영해 주는 유물들은 무엇이 있을까? 여러 철제품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철정(鐵鋌), 즉 덩이쇠가 돋보인다. 덩이쇠란 요즘의 제철소에서 만드는 큰 철판과 같은 성격의 것으로서 3세기 후반에서 6세기에 걸쳐 부산과 김해지방의 대형고분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다.

 

<삼국지>의 기록에서도 이러한 덩이쇠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변진조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변진의) 나라에서는 철(鐵)이 생산되는데, 한 ․ 예 ․ 왜인들이 모두 와서 사간다. 시장에서의 모든 매매는 철로 이루어져서 마치 중국에서 돈을 쓰는 것과 같으며, 또 (낙랑과 대방의) 두 군(郡)에도 공급하였다.

 

  
▲ 김해 대성동 29호분과 39호분 39호분이 29호분을 파괴하면서 조성되었는데, 29호분의 피장자가 안치된 자리엔 덩이쇠들이 가지런히 깔려있다
ⓒ 정동귀
대성동고분군

 

즉 이러한 덩이쇠가 당시에는 화폐처럼 쓰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기록에서처럼 외부와의 교역품으로서 인기가 좋았는데, 이는 가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의 국가들은 이런 덩이쇠를 교역품으로 높은 의의를 두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서기> 신공황후 46년 봄 3월의 기록에서도 나오며, 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마노스쿠네[斯摩宿禰]는 종자인 니하야[爾波移]와 탁순인(卓淳人) 과고(過古) 둘을 백제국에 보내, 그 왕을 위로하게 하였다. 백제의 근초고왕은 기뻐하고 후대하였다. 오색의 채견(綵絹) 각 한 필, 각궁전(角弓箭)과 아울러 철정(鐵鋌) 40매를 니하야에게 주었다.

 

여기에서 나온 철정을 우리가 아는 덩이쇠와 동일한 것이라 본다면, 당시 백제에서도 널리 만들고 또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사용되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달러와도 같은 화폐가치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가야의 왕족들과 귀족들이 묻혀있는 대성동고분군에서도 덩이쇠들이 많이 보이는데, 3세기 후반의 고분인 29호분의 경우 피장자가 눕는 공간에 이런 덩이쇠를 깔아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29호분의 피장자는 오늘날 우리가 꿈꾸는 돈방석과 같은 돈침대에서 저승생활을 보내길 염원했던 걸까?

 

가야는 철로 무엇을 만들었을까?

 

  
▲ 용봉무늬고리자루칼 합천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로서 가야인들의 뛰어난 공예 수준을 보여준다. 실전에서는 물론 지도층의 위세품으로서도 기능하였다
ⓒ 오은석
용봉무늬고리자루칼

 

그럼 가야는 철로 무엇을 만들었을까? 가야에서 만들어진 철제품은 수량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대표적으로는 갑옷, 투구, 무기, 마구, 농기구, 그리고 제례용품 등이 있다. 역시 돋보이는 존재는 무기와 갑주로서, 사실 우리가 고대의 무기체계 등을 파악 할 때 고구려 고분벽화와 함께 가장 많이 참조하는 게 가야의 철제유물들이다.

 

이 시기가 되면 소국 간의 혹은 국가 간의 영역다툼이나 정복전쟁이 활발하게 이뤄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무기가 급속도로 발달하게 되며, 철기의 등장은 무기의 위력을 배가시킨다. 청동기보다 내구도가 높고, 보급률도 높게 유지할 수 있으며 다양한 무기를 통해 수많은 전술들을 구가할 수 있게 된다.

 

가야에서 출토되는 무기들을 보면 화살촉이나 칼, 도끼, 창 등을 여럿 볼 수 있다. 특히 칼의 경우 고리자루칼로 대표되는 장식성이 뛰어난 칼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특히 가야의 경우엔 용무늬와 봉황무늬 등을 다양하게 이용하고 금과 은으로 상감과 장식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칼들은 실전적인 용도 외에도 위세품으로의 성격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 금동장식투구 합천 옥전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로서 가야 철제투구 유물 중 명작이다. 금동으로 장식한 화려 모습을 보여준다
ⓒ 국립김해박물관
금동장식투구

 

가야의 갑옷은 주로 판갑으로 알려져 있다. 가야에서는 판갑이 발달하였는데 본래는 나무나 가죽, 짐승 뼈로 갑옷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4세기에 들어선 철로 된 갑옷과 투구가 등장한다. 갑옷과 투구에도 장식을 가미하는데, 합천 옥전에서 발굴된 금동장식투구가 대표적이다.

 

또한 말에게도 갑옷을 씌우는 이른바 개마기병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러한 구체적인 유물이 가야지역에서 여럿 발견된다. 합천 옥전고분군이나 김해 대성동고분군 등에서 말머리가리개가 나오며, 함안 마갑총에서는 거의 완전한 형태의 말갑옷이 출토된 바 있다.

 

이처럼 풍부한 철제유물이 나오는 가야이기 때문에 흔히 가야를 철의 왕국이라고 부른다. 기록과 유물 등으로도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많기 때문에 그러한 수식어가 붙은 것이다. 가야의 영광을 이끈 건 가야인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이 철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가야는 비록 작은 나라로 알고 있지만 이들이 남긴 유산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결코 작은 나라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출처 : 가야에 "철의 왕국"이 붙은 이유는?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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