私の伯父は陸軍幼年学校にいたことが自慢だった。
13歳で入学し、15歳で卒業した後は陸軍予科士官学校、その後には陸軍士官学校に入れる名門だ。
徳島の田舎育ちの伯父だったが、大阪の幼年学校から休暇中に帰省すると、田舎の憲兵が敬礼するほどだったそうだ。
そんな伯父が名門学校の身分を謳歌する時期は短かった。何しろ日本が戦争に負けて、幼年学校自体が廃校になったのだ。
その後地元の高等学校に入学し、学費が無料というだけの理由で東京商船大学に入学し、船乗りになった。
船乗りの間は随分と浮き名を流していたそうだ。父を含めて兄弟で男は四人だが(この伯父の上の兄は戦死)、この伯父が一番女性関係で母親を悩ませた。祖母本人がそう私に言ったのだから、間違い無い。港ごとに恋人がいるような生活だったそうだ。
そんな伯父は函館生まれで8人兄弟、上の7人は全て男という恐ろしい兄弟の末っ子の女性を妻にした。やはり妻になった人は港町の人だった。
機関長を最後に陸の仕事になり、取締役にまで昇進した。毎晩会社の交際費で飲んで、タクシーで帰宅し、東海道線のグリーン車で出社する優雅かつ不健康な生活をしていた。
ある日、いつものように飲んで駅からタクシーに乗って帰宅したら、家の前に祖母と伯母(伯父の母と妻)が玄関で待っていたそうだ。お、ご丁寧に並んで待っている、でも叱られるのか?なんて思いながらタクシーを降りたら、房総半島沖で会社の商船が沈没し、船長を残して全員退船したということだった。会社から連絡があったので、着替えを用意して、帰宅したらすぐにそのタクシーで東京に行けるように、二人で待っていたというのだ。一発で酔いが覚めたのは言うまでもない。
辛いことも、悲しいことも、本当は自慢な事も、全ておもしろおかしく話してくれる、頼りがいのある伯父だった。
五年前、私がアメリカに留学中の時に父から悲報という表題のメールが届いた。その伯父が自宅前の石段で倒れ、昏睡状態で病院に運ばれたというのだ。病院の医師からは、親しい人をすぐに呼びなさいと言われたそうだ。
船乗りの伯父は強かった。驚異的な生命力で三日は生きたのだが、看病の甲斐無く最後は亡くなった。
最期を看取れないで残念だった。お前も海外に行くのか、良かったな、頑張れよと笑顔で送り出してくれた伯父に何の報告も出来ずに別れるのは残念だった。
帰国後、伯父が買い込んで残した洋酒が数十本も我が家に届いた。理由は不明だが我が家の家系には酒が飲めない人が多く、伯父の他には私ぐらいしかいなかったのだ。その酒を取って置いても古くなるだけだから飲んでいたが、ついに最後の一本になったので、こんな駄文を書いた。
13세에 입학해, 15세에 졸업한 후는 육군 예과 사관학교, 그 후에는 육군 사관 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명문이다.
토쿠시마의 시골뜨기의 백부였지만, 오사카의 유년 학교로부터 휴가중에 귀성하면, 시골의 헌병이 경례할 만큼이었다고 한다.
그런 백부가 명문 학교의 신분을 구가하는 시기는 짧았다.어쨌든 일본이 전쟁에 지고, 유년 학교 자체가 폐교가 되었던 것이다.
그 우시로지원의 고등학교에 입학해, 학비가 무료라고 하다는 이유만으로 토쿄 쇼센대학에 입학해, 선원이 되었다.
선원의 사이는 상당히 연문을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아버지를 포함해 형제로 남자는 네 명이지만(이 백부 위의 형(오빠)는 전사), 이 백부가 제일 여성 관계로 모친을 괴롭힐 수 있었다.조모 본인이 그렇게 나에게 말했으니까, 잘못해 없다.항구 마다 애인이 있는 생활이었다고 한다.
그런 백부는 하코다테 태생으로 8 형제, 위의 7명은 모두남이라고 하는 무서운 형제의 막내의 여성을 아내로 삼았다.역시 아내가 된 사람은 항구도시의 사람이었다.
기관장을 마지막으로 육지의 일이 되어, 이사에게까지 승진했다.매일 저녁 회사의 교제비로 마시고, 택시로 귀가해, 토카이도선의 1등차로 출근하는 우아한가?`트 건강하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마셔 역으로부터 택시를 타 귀가하면, 집 앞에 조모와 백모(백부의 어머니와 아내)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정중하게 줄서 기다리고 있는, 그렇지만 꾸중듣는 것인가?라고 생각하면서 택시를 내리면, 보소반도바다에서 회사의 상선이 침몰해, 선장을 남겨 전원퇴선 했다고 하는 것이었다.회사로부터 연락이 있었으므로, 갈아 입기를 준비하고, 귀가하자 마자 그 택시로 도쿄에 갈 수 있도록(듯이), 둘이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일발로 취기가 깬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괴로운 일도, 슬픈 일도, 사실은 자랑인 일도, 모두 재미있고도 우습게 이야기해 주는, 의지가 있어가 있는 백부였다.
5년전, 내가 미국에 유학중때에 아버지로부터 비보라고 하는 표제의 메일이 도착했다.그 백부가 자택앞의 돌층계에서 넘어져 혼수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는 것이다.병원의 의사에서는, 친한 사람을 곧바로 부르세요라고 말해졌다고 한다.
선원의 백부는 강했다.경이적인 생명력으로 3일은 살았지만, 간병의 보람이 없게 최후는 죽었다.
최후를 간호할 수 없고 유감이었다.너도 해외에 가는지, 좋았다, 힘내라와 웃는 얼굴로 배웅해?`백부에게 어떤 보고도 하지 못하고 헤어지는 것은 유감이었다.
귀국후, 백부가 사 들여 남긴 양주가 수십병이나 우리 집에 닿았다.이유는 불명하지만 우리 집의 가계에는 술을 마실 수 없는 사람이 대부분, 백부 외에는 나정도 밖에 없었던 것이다.그 술을 소중한 것 있어도 낡아질 뿐(만큼)이니까 마시고 있었지만, 마침내 마지막 한 개가 되었으므로, 이런 시시한 문장을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