ムクゲ刺繍した大韓帝国最後の文官大礼服発見
![韓国オーダーメード洋服協会にある 1906年様式大韓帝国西欧式文官大礼服. [李軽微教授提供]](https://t1.daumcdn.net/news/201809/10/yonhap/20180910060008672aozy.jpg)
その間実物が存在しないと知られた大韓帝国最後の西欧式文官大礼服が初めて発見された.
近代複式社専攻者で “制服の誕生”(民俗院発行し)を使った李軽微国立韓経台衣類産業学と教授は “韓国オーダーメード洋服協会に展示された複式を調査した結果, 大韓帝国が 1906年 12月勅令改訂以後製作した文官大礼服なのを確認した”と 10日明らかにした.
大礼服(大礼服)は国家に重要な意識がある時着した服だ. 大韓帝国は西欧式文官大礼服に対する規定を 1900年 4月初めて作った. 国際外交舞台に進入するために衣服を伝統服装で洋式に変えたのだ.
大韓帝国は以後 1904〜1905年官報を通じて文官大礼服を一部修正すると露したし, 1906年もう一度大礼服デザインを変更した.
大韓帝国文官大礼服は 1900年様式が韓国自首博物館, 釜山市立博物館, 高麗大博物館, 国立民族博物館にあって, 1904〜1905年様式は延世大博物館と釜山市立博物館, 国立民族博物館がそれぞれ 1点ずつ所蔵した.
しかし 1906年改訂以後様式は実物が残らなくて李完用と宋ビョンジュン写真, 図式だけで把握が可能な状況だった.
1906年様式は 1900年様式, 1904〜1905年様式と比べると先方の派手な表装(標章)の消えた点が特徴だ.
これに対してこの教授は “三種類様式は裏側がつばめしっぽみたいなえんび服という点でそっくりだ”と “1906年には全面に金色表装が省略されてデザインが簡素化したが, 日本で作為を受けた人の大礼服と全般的に似ている”と説明した.
![李完用(左側)と宋ビョンジュンが口は 1906年様式文官大礼服. 左右肩章を見れば親任官複式なのを分かる. [李軽微教授提供]](https://t1.daumcdn.net/news/201809/10/yonhap/20180910060008865pcbe.jpg)
西欧式文官大礼服は管理等級によって親任官(親任官), 勅任官(勅任官), 奏任官(奏任官)の着た服がそれぞれ他のところ, オーダーメード洋服協会にある服は勅任官複式に推定される.
が教授は “西欧式大礼服にはイギリス楢柏, 日本オ銅のように国を代表する文様が入って行ったが, 大韓帝国はムクゲを使った”と “親任官複式には左右肩にムクゲで刺繍したし, 奏任官複式は相議裏側にムクゲ文様がない”と言った.
彼は “オーダーメード洋服協会大礼服は肩章がなくて相議後にムクゲ柄があって勅任官複式であること”と言いながら “当時大韓帝国は大礼服を作ることができなくて輸入したが, この服がどの国で製作されたかはわからない”と付け加えた.
が教授は “大韓帝国文官大礼服で重要なことはムクゲ文章”と言いながら “日帝強制占領期間になれば等しい形態に文章だけオ銅に変更される”と強調した.
それとともに “誰が着たのかも明かされなかったが, 1906年勅令改訂以後作った大韓帝国文官大礼服の中唯一だという点で文化財と指定するに値する価値が十分だ”と主張した.
![韓国自首博物館にある 1900年様式大韓帝国大礼服. 先方にムクゲ表装が入っている. [李軽微教授提供]](https://t1.daumcdn.net/news/201809/10/yonhap/20180910060008984schz.jpg)
今度遺物性格が明かされた西欧式文官大礼服は社団法人韓国オーダーメード洋服協会が 1980年代後半約 1千万ウォンを支払って購買したと知られた.
協会会員である李精勤さんは去年韓国放送通信台授業で李軽微教授が筆を執った “韓国服飾文化”を読んだ後勧誘陣旁通台教授を通じてこの教授に調査を要請した.
が教授は “オーダーメード洋服協会が服を買受ける当時会長である瑞相国さん弟子李精勤さんが服に対する知りたい事を抱いていたと言う”と “保存処理をした後温度と湿度が調節される空間に保管する必要がある”と説明した.
が服は 10月 12日徳寿宮石造殿大韓帝国歴史観で開幕する “大韓帝国皇帝複式前”を通じて一般に公開される.
무궁화 수놓은 대한제국 마지막 문관대례복 발견
![한국맞춤양복협회에 있는 1906년 양식 대한제국 서구식 문관대례복. [이경미 교수 제공]](https://t1.daumcdn.net/news/201809/10/yonhap/20180910060008672aozy.jpg)
그동안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려진 대한제국 마지막 서구식 문관대례복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근대복식사 전공자로 "제복의 탄생"(민속원 펴냄)을 쓴 이경미 국립 한경대 의류산업학과 교수는 "한국맞춤양복협회에 전시된 복식을 조사한 결과, 대한제국이 1906년 12월 칙령 개정 이후 제작한 문관대례복임을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대례복(大禮服)은 국가에 중요한 의식이 있을 때 착용한 옷이다. 대한제국은 서구식 문관대례복에 대한 규정을 1900년 4월 처음 만들었다. 국제 외교 무대에 진입하기 위해 의복을 전통 복장에서 서양식으로 바꾼 것이다.
대한제국은 이후 1904∼1905년 관보를 통해 문관대례복을 일부 수정한다고 공표했고, 1906년 다시 한번 대례복 디자인을 변경했다.
대한제국 문관대례복은 1900년 양식이 한국자수박물관, 부산시립박물관, 고려대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에 있고, 1904∼1905년 양식은 연세대박물관과 부산시립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이 각각 1점씩 소장했다.
그러나 1906년 개정 이후 양식은 실물이 남지 않아 이완용과 송병준 사진, 도식으로만 파악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1906년 양식은 1900년 양식, 1904∼1905년 양식과 비교하면 앞쪽의 화려한 표장(標章)이 사라진 점이 특징이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세 가지 양식은 뒤쪽이 제비 꼬리 같은 연미복이라는 점에서 흡사하다"며 "1906년에는 전면에 금색 표장이 생략돼 디자인이 간소화했는데, 일본에서 작위를 받은 사람의 대례복과 전반적으로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완용(왼쪽)과 송병준이 입은 1906년 양식 문관대례복. 좌우 견장을 보면 친임관 복식임을 알 수 있다. [이경미 교수 제공]](https://t1.daumcdn.net/news/201809/10/yonhap/20180910060008865pcbe.jpg)
서구식 문관대례복은 관리 등급에 따라 친임관(親任官), 칙임관(勅任官), 주임관(奏任官)이 입은 옷이 각기 다른데, 맞춤양복협회에 있는 옷은 칙임관 복식으로 추정된다.
이 교수는 "서구식 대례복에는 영국 참나무, 일본 오동처럼 나라를 대표하는 문양이 들어갔는데, 대한제국은 무궁화를 사용했다"며 "친임관 복식에는 좌우 어깨에 무궁화로 수를 놓았고, 주임관 복식은 상의 뒤쪽에 무궁화 문양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맞춤양복협회 대례복은 견장이 없고 상의 뒤에 무궁화 무늬가 있어서 칙임관 복식일 것"이라며 "당시 대한제국은 대례복을 만들지 못해 수입했는데, 이 옷이 어느 나라에서 제작됐는지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대한제국 문관대례복에서 중요한 것은 무궁화 문장"이라며 "일제강점기가 되면 동일한 형태에 문장만 오동으로 변경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누가 입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으나, 1906년 칙령 개정 이후 만든 대한제국 문관대례복 가운데 유일하다는 점에서 문화재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자수박물관에 있는 1900년 양식 대한제국 대례복. 앞쪽에 무궁화 표장이 들어가 있다. [이경미 교수 제공]](https://t1.daumcdn.net/news/201809/10/yonhap/20180910060008984schz.jpg)
이번에 유물 성격이 밝혀진 서구식 문관대례복은 사단법인 한국맞춤양복협회가 1980년대 후반 약 1천만원을 지불하고 구매했다고 알려졌다.
협회 회원인 이정근 씨는 지난해 한국방송통신대 수업에서 이경미 교수가 집필한 "한국 복식문화"를 읽은 뒤 권유진 방통대 교수를 통해 이 교수에게 조사를 요청했다.
이 교수는 "맞춤양복협회가 옷을 사들일 당시 회장인 서상국 씨 제자 이정근 씨가 옷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며 "보존처리를 한 뒤 온도와 습도가 조절되는 공간에 보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옷은 10월 12일 덕수궁 석조전 대한제국역사관에서 개막하는 "대한제국 황제복식전"을 통해 일반에 공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