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基本的に半島は列島より土壌の肥え位が高くて, 平野の割合が高い. いっしょに江戸時代以前まで日本は北海道を占有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し, 関東平野は開墾が成り立たなかったから, 耕作が可能な平野の割合は今よりもっと差があった. 反対に韓国の場合は高句麗時代に東北の巨大な平野を占有していた.
耕作地に関する以外にも, 農法, 牧畜, 鉱業, 工業, 医学, 制度など, その外人口に影響を及ぼす要因たちが列島は半島より数百年以上遅かった.
日本に鉄製農機具が普及されたことは 8世紀, 律令が頒布されたことは 8世紀, 牛耕が普及されたことは 13世紀以後, 地上家屋が普及されたことは 13世紀以後, 綿織物が生産され始めたことは 16世紀以後で, 半島の国家より概して数百年以上遅かった.
このような要因などで, 半島の生産力は古代には日本の 4倍以上, 世宗時まで日本の 2倍程度で多かった.
微細な温度お茶や(も)穀物の種類だけが人口浮揚力の要因になると思うことは短い識見を持った人の錯覚であるだけだ.
似ている例で, 中国三国時代 魏の人口は 呉の 2倍位だった.
中国でも華北地方は米を耕作する江南地方より伝統的に人口が多かった.
江南地方の人口は北方民族によって華北地方が荒廃化された 宋時代以後になってからこそ追い付く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た.
参照 : 時代別韓日生産量比較


기본적으로 반도는 열도보다 토양의 비옥함 정도가 높으며, 평야 비율이 높다. 더불어 에도시대 이전까지 일본은 홋카이도를 점유하지 못했고, 간토 평야는 개간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경작이 가능한 평야의 비율은 지금보다 더욱 차이가 있었다. 반대로 한국의 경우는 고구려 시대에 동북의 거대한 평야를 점유하고 있었다.
경작지에 관한 것 이외에도, 농법, 목축, 광업, 공업, 의학, 제도 등, 그외 인구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이 열도는 반도보다 수백년 이상 늦고 있었다.
일본에 철제 농기구가 보급된 것은 8세기, 율령이 반포된 것은 8세기, 牛耕이 보급된 것은 13세기 이후, 지상 가옥이 보급된 것은 13세기 이후, 면직물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이후로, 반도의 국가보다 대체로 수백년 이상 늦고 있었다.
이러한 요인 등으로, 반도의 생산력은 고대에는 일본의 4배 이상, 세종때까지 일본의 2배정도로 많았다.
미세한 온도 차이나 곡물의 종류만이 인구 부양력의 요인이 될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짧은 식견을 가진 사람의 착각일 뿐이다.
비슷한 예로, 중국 삼국시대 魏의 인구는 吳의 2배 정도였다.
중국에서도 화북지방은 쌀을 경작하는 강남지방보다 전통적으로 인구가 많았다.
강남지방의 인구는 북방 민족에 의해 화북지방이 황폐화된 宋시대 이후가 되어서야 따라잡을 수 있게 되었다.
참고 : 시대별 한일 생산량 비교
https://www.kjclub.com/kr/board/exc_board_9/view/id/3528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