資産100億円を持ち込み…自国の未来を見限った中国上流層が続々と日本に逃げる怪
日本が中国富裕層の移住先に選ばれる理由は…
最近、中国取材が面白い。といっても、厳重なゼロコロナ政策が敷かれる中国には、そう簡単には渡航できない。いま私が面白がっているのは、日本国内で、中国から移住してきたばかりの中国人に会うことだ。 というのも近年、これまで中国社会の中枢にいたはずのエリート層が、習近平体制に見切りをつけて続々と母国を離れる現象が加速しているのだ。 中国を脱出する行為は「潤」(rùn)と呼ばれ、いまや上流層を中心にちょっとしたブームになっている。ちなみに「潤」という漢字に意味はなく、拼音(中国語の発音を表すアルファベット表記)の「rùn」が英語の「run」に通じることから作られた俗語だ。
毎月数十世帯の中国上流層が日本に移住か?
ここ数年来に日本に移住した中国人について、私が直接・間接に見聞した事例を紹介しよう。具体的な事情を書けない人も多いので「日本社会でいえばどのくらいのランクか」でおおまかに表現しておくが、たとえば 〈・NHK元編集委員(→ 前回記事 の王志安) ・週刊文春元編集長 ・朝日新聞の大物記者 ・早稲田大学元准教授 ・億単位の高額納税者 ・野村證券の元部長〉 このくらいの地位の人たちが国を離れて逃げてきたのを確認している。 関西地方の複数の華人系不動産業者に聞いたところ、ここ半年でこうした「潤」系の中国人による住居購入が、1社あたり毎月4~5件成約し続けているという。全国規模で見た場合、おそらく毎月数十世帯の上流層の中国人たちが、日本に居を移していると考えられる。 「潤」の中心となっているのは修士号・博士号持ちや留学帰りといった高学歴者で、年齢層は40~50代が最多。家庭の資産についても、最低でも数億円は持っている人たち(もちろんもっと大金持ちはたくさんいる)だという。名実ともに中国国家のエリート層だ。
なかでも姿が目立つのは、政権の機嫌ひとつで財産が消し飛ぶ懸念を深めたお金持ち、カネと不動産の視点から祖国の社会の不透明さや持続可能性の薄さに嫌気がさした金融関係者、言論の自由が狭まり仕事が難しくなったメディア関係者…、といった人々である。 特にお金持ちの懸念は深刻だ。近年の中国は大手不動産コングロマリットの万達(ワンダ)や中国ITの旗手のアリババといった国家を代表するレベルの大企業ですら、いざ当局に目をつけられると大ダメージを負う時代であり、民間で稼いだ人たちは誰しも戦々恐々である。
もちろん、一定以上の上流層の中国人は、ずっと前からとっくに資産を海外に移し続けてきた。ただ、昨今の「潤」と従来の資産フライトとの大きな違いは、本人たちが将来的にも中国に戻る考えを捨て、資産のほとんどを持ち出すようになっていることだ。「潤」の行き先として、アジアでの一番人気はシンガポールだ。ただ、国土が狭く閉塞感があることや、資金面のハードルが高いなどのネックもある。そこで次善策として選ばれているのが日本である。 日本は経済が低調なので投資やビジネスにあまり向かないが、小さな会社を経営できる程度のお金さえあれば在留資格「経営管理」を取得可能で、しかも物価が安くて治安がいい。生活に追われない水準の暮らしができるならば、日々のQOLも高く、休日に温泉やスキーやハイキングも楽しめる。 また、子育て世帯の中国人からは、体育や図工・音楽など狭義の「勉強」以外の教育も重視する日本の公立小学校の環境が、意外と評判がよかったりする。医療水準の高さも魅力だ。 首都圏や関西圏ならば「ガチ中華」店舗にも事欠かず、異国でも故郷の味にありつける。日本人と中国人は外見も似ているので、欧米圏とは違って、街を歩くだけで「外国人」として露骨な差別をぶつけられることもすくない。
「中国社会の非合理性に、つくづく愛想が尽きたんです」
「潤」は今年4月から急増した。理由について、最近関西地方に移住した50代の中国人女性は「上海のロックダウンでこりごりになった人が多い」と話す。彼女は天安門世代の上海人で、若い頃の原体験として「ダメな中国」を知っていることもあり、もともと体制への不信感は強かったようだ。 「中国社会の非合理性に、つくづく愛想が尽きたんです。あそこまで厳格な封鎖は本当に必要だったのか。
数日に一回のPCR検査で逆に『密』になって感染リスクが高まったり、陽性者が送り込まれる集団隔離所が非衛生的でプライバシーもなく、かえって心身を壊しそうな環境だったり。まともじゃありません」 彼女がやりきれないと感じたのは、こうした施策の根拠を納得のいく形で説明されたり、問題点が後日に客観的に検証されたり、人的・経済的な被害の真相が伝えられたりすることが、現代の中国の体制下ではまるで望めないことだった。 当時、上海では「この過剰な統制は、やがて台湾に侵攻する際に国際社会から受ける制裁と、それによる物資欠乏に備えたシミュレーションだ」「上海市民は捨て石にされた」といった噂も乱れ飛んだという。極限状態にありがちなデマだが、市民の強い不信感を読み取れる話ではある。彼女は続ける。 「もともと、習近平政権が2期目に入った5年前から雲行きのあやしさを感じて、日本に少しずつ財産を流していたんです。いつでも拠点を移せるようにはしていましたが、今回の一件が、出国を決める最後のひと押しになりました」
一般市民はそれでも党や習近平に信頼感を持っている人が多い。ただ、富裕層や知識層を中心に、上海のみならず北京や深圳など他の大都市からも脱出の動きが加速した。単なるロックダウン避けが目的ではなく、その根底にあるのは、あんな政策に平気でゴーを出せる硬直した体制に対する懸念だった。
まあ、朝鮮 人が来るよりはマシか?
それより朝鮮に行きたがる中国人は、さすがに居ないか…
자산 100억엔을 반입해
자국의 미래를 단념한 중국 상류층이 잇달아 일본에 도망치는 괴
일본이 중국 부유층의 이주 끝에 선택되는 이유는
최근, 중국 취재가 재미있다.그렇다고 해도, 엄중한 제로 코로나 정책이 깔리는 중국에는, 그렇게 간단하게는 도항할 수 없다.지금 내가 재미있어하고 있는 것은, 일본내에서, 중국으로부터 이주해 온지 얼마 안된 중국인을 만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도 근년, 지금까지 중국 사회의 중추에 있었음이 분명한 엘리트층이,습긴뻬이 체제에 단념해 잇달아 모국을 떨어지는 현상이 가속하고 있다. 중국을 탈출하는 행위는 「윤」(rù n)로 불려 지금 상류층을 중심으로 약간의 붐이 되어 있다.덧붙여서 「윤」이라고 하는 한자에 의미는 없고, 소리(중국어의 발음을 나타내는 알파벳 표기)의 「rù n」가 영어의 「run」에 통하는 것부터 만들어진 속어다.
매월 수십 세대의 중국 상류층이 일본에 이주인가?
그 중에서도 모습이 눈에 띄는 것은, 정권의 기분 하나로 재산이 날아가 버리는 염려가 깊어진 부자, 돈과 부동산의 시점으로부터 조국의 사회의 불투명함이나 지속 가능성의 얇음에게 진저리가 난 금융 관계자, 언론의 자유가 좁아져 일이 어려워진 미디어 관계자 , 라고 하는 사람들이다. 특히 부자의 염려는 심각하다.근년의 중국은 대기업 부동산 콘글로메리트(conglomerate)의 만들(원다)이나 중국 IT의 기수의알리바바라고 하는 국가를 대표하는 레벨의 대기업에서조차, 막상 당국에 주목할 수 있으면 대데미지를 지는 시대여, 민간으로 번 사람들은 누구든지 전전긍긍이다.
물론, 일정 이상의 상류층의 중국인은, 훨씬 전부터 벌써 자산을 해외로 계속 옮겨 왔다.단지, 요즈음의 「윤」이라고 종래의 자산 플라이트와의 큰 차이는, 본인들이 장래적으로도 중국으로 돌아올 생각을 버려 자산의 대부분을 꺼내게 되어 있는 것이다.「윤」의 행선지로서 아시아에서의 제일 인기는싱가폴이다.단지, 국토가 좁고 폐색감이 있다 일이나, 자금면의 허들이 높은등의 넥도 있다.거기서 차선책으로서 선택되고 있는 것이 일본이다. 일본은 경제가 저조해서 투자나 비즈니스에 별로 향하지 않지만, 작은 회사를 경영할 수 있는 정도의 돈만 있으면 재류 자격 「경영관리」를 취득 가능하고, 게다가 물가가 싸서 치안이 좋다.생활에 쫓기지 않는 수준의 생활이 생긴다면, 나날의 QOL도 높고, 휴일에 온천이나 스키나 하이킹도 즐길 수 있다. 또, 육아 세대의 중국인에게서는, 체육이나 도공·음악 등 협의의 「공부」이외의 교육도 중시하는 일본의 공립 초등학교의 환경이, 의외로 평판이 좋거나 한다.의료 수준의 높이도 매력이다.
「중국 사회의 비합리성에, 절실히 정나미가 떨어졌습니다」
「윤」은 금년 4월부터 급증했다.이유에 대해서, 최근 관서지방에 이주한 50대의 중국인 여성은 「샹하이의 락 다운으로 지긋지긋하게 된 사람이 많다」라고 이야기한다.그녀는 천안문 세대의 샹하이인으로, 젊은 무렵의 원체험으로서 「안된 중국」을 알고 있기도 해, 원래 체제에의 불신감은 강했던 것 같다.「중국 사회의 비합리성에, 절실히 정나미가 떨어졌습니다.저기까지 엄격한 봉쇄는 정말로 필요했던가.
몇일에 1회의 PCR 검사로 반대로 「밀」이 되어 감염 리스크가 높아지거나 양성자가 이송되는 집단 격리소가 비위생적으로 프라이버시도 없고, 오히려 심신을 부술 것 같은 환경이거나.착실하지 않습니다」그녀가 참을 수 없다고 느낀 것은, 이러한 시책의 근거를 납득이 가는 형태로 설명되거나 문제점이 후일에 객관적으로 검증되거나 인적·경제적인 피해의 진상이 전해지거나 하는 것이, 현대의 중국의 체제하에서는 전혀 바라볼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 , 샹하이에서는 「이 과잉인 통제는, 이윽고 대만에 침공할 때에 국제사회로부터 받는 제재와 거기에 따른 물자 결핍에 대비한 시뮬레이션이다」 「샹하이시민은 사석으로 되었다」라고 한 소문도 흐트러져 날았다고 한다.극한 상태에 있기 십상인 유언비어이지만, 시민의 강한 불신감을 읽어낼 수 있는 이야기이다.그녀는 계속한다. 「원래,습긴뻬이정권이 2기 째에 들어& 5년 전부터 동향의 이상함을 느끼고, 일본에 조금씩 재산을 유질시키고 있었습니다.언제라도 거점을 옮길 수 있도록(듯이)는 하고 있었습니다만, 이번 한 건이, 출국을 결정하는 마지막 사람 밀기가 되었습니다」
일반 시민은 그런데도 당이나 습긴뻬이에 신뢰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단지, 부유층이나 지식층을 중심으로, 샹하이 뿐만 아니라 북경심 등 다른 대도시로부터도 탈출의 움직임이 가속했다.단순한 락 다운 피해가 목적이 아니고, 그 근저에 있는 것은, 저런 정책에 아무렇지도 않게 고를 낼 수 있는 경직된 체제에 대한 염려였다.
뭐, 한국인이 오는 것보다는 좋은가?
그것보다 조선에 가고 싶어하는 중국인은, 과연 없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