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半島の文化のDNAが伝わり、京都が最高の観光地に」
短歌詩人の李承信さんが散文集『なぜ京都なのか』日本語版を手に、読者に会うために日本を訪れた。写真は京都・同志社大学の校庭にある尹東柱詩人の詩碑を訪れた様子。[写真 李承信]
短歌詩人・孫戸妍(ソン・ホヨン、1923~2003)の娘で詩人の李承信(イ・スンシン)さんが最近、自身のエッセイ『なぜ京都なのか』(1・2巻、ホヨングルバン)の日本語版を出版した。
李承信さんの母親の孫戸妍詩人は31字で構成された日本の伝統詩歌・短歌を日本人より巧みに書く詩人だった。日帝強占期に日本で学んだ短歌を解放後も止めることなく60年余りの間に2000首を越える作品を書いた。
李さんが2018年と2021年に出版した『なぜ京都なのか』1・2巻は、李さんが詩人・尹東柱(ユン・ドンジュ)が修学した京都・同志社大学で2015~2016年に遅れて勉強した体験を基に、古い都市の随所に残っている韓国人の痕跡などを題材にした本だ。現在、京都に滞在中の李さんは電話インタビューで、「韓国の詩人の目に映った日本の姿を日本の読者が見て、韓国をもっと好きになってもらいたいという思いから『なぜ京都なのか』の日本語版を出すことになった」と述べた。
李さんは自身と京都、韓国文化と京都との縁を強調した。2011年、日本で名前が知られ、頻繁に講演するようになったが、その時になって日本についてろくに勉強したことがないという自責の念を感じた」と話した。単に韓国から遠くないという理由で留学先として京都を選んだが、結果的に最善の選択だったという。
「百済(ペクチェ)滅亡後、王族や貴族、当時の知識人が京都に移住して花咲かせた文化が千年以上伝統として定着し、命脈が受け継がれてきたではないか。私たちから消えていったものが京都にあり、京都が今日、世界最高の観光地になる土台になった。
そのとてつもないDNAが私たちから始まったのだから、そういった自負心で未来の希望をつかみ、前に進ま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った」
李さんは「多くの日本人が韓国を好きになって許しを求め、膝をついたりもしているだけに、政府や政治家に両国関係の改善を任せずに民間人が互いに交流し勉強してより良い関係を築いていくことを願う」と語った。
それなのに、なぜ朝鮮にはまともな文化が何も無いの?
今日も日本の成果を死に物狂いで横取りしようとする、この泥棒根性!
バカチョ〜ンにつける薬は無いな!
「한반도의 문화의 DNA가 전해져, 쿄토가 최고의 관광지에」
단가 시인 리승신씨가 산문집 「왜 쿄토인가」일본어판을 손에, 독자를 만나기 위해서 일본을 방문했다.사진은 쿄토·도시샤 대학의 교정에 있는 윤동주 시인의 시비를 방문한 님 아이.[사진리승신]
단가 시인·손호연(손·호 욘, 19232003)의 딸(아가씨)로 시인 리승신(이·슨신)씨가 최근, 자신의 에세이 「왜 쿄토인가」(1·2권, 호용르반)의 일본어판을 출판했다.
이씨가 2018년과 2021년에 출판한 「왜 쿄토인가」1·2권은, 이씨가 시인·윤동주(윤·돈쥬)가 수학한 쿄토·도시샤 대학에서 20152016년에 늦어 공부한 체험을 기본으로, 낡은 도시의 여기저기에 남아 있는 한국인의 흔적등을 소재로 한 책이다.현재, 쿄토에 체제중의 이씨는 전화 인터뷰로, 「한국의 시인의 눈에 비친 일본의 모습을 일본의 독자가 보고, 한국을 더 좋아하게 되어 주었으면 한다고 하는 생각으로부터 「왜 쿄토인가」의 일본어판을 내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자신과 쿄토, 한국 문화와 쿄토와의 가장자리를 강조했다.2011년, 일본에서 이름이 알려져 빈번히 강연하게 되었지만, 그 때가 되고 일본에 도착해라 나라 공부했던 적이 없다고 하는 자책하는 마음을 느꼈다」라고 이야기했다.단지 한국에서 멀지 않다고 하는 이유로 유학처로서 쿄토를 선택했지만, 결과적으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한다.
「(쿠다라)백제(페크최) 멸망 후, 왕족이나 귀족, 당시의 지식인이 쿄토에 이주해 하나사키 빌려줄 수 있었던 문화가 천년 이상 전통으로서 정착해, 명맥이 계승해져 북이 아닌가.우리나들 사라지고 간 것이 쿄토에 있어, 쿄토가 오늘, 세계 최고의 관광지가 되는 토대가 되었다.
그 터무니없는 DNA가 우리로부터 시작되었으니까, 그렇게 말한 자부심으로 미래의 희망을 잡아, 앞에 나아&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씨는 「많은 일본인이 한국을 좋아하게 되고 허가를 요구해 무릎을 무심코 충분하기도 하고 라고 있는 만큼, 정부나 정치가에게 양국 관계의 개선을 맡기지 않고 민간인이 서로 교류해 공부해 보다 좋은 관계를 쌓아 올려 갈 것을 바란다」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왜 조선에는 착실한 문화가 아무것도 없어?
바보 조~에 바르는 약은 없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