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日日本 TBSは去年 5月北朝鮮脱出して韓国に全 30代金某さんとの単独インタビューを報道した.
金さんが北朝鮮脱出する前スマトホンで撮影した映像には鼻でも19を理由で数年間封鎖された北朝鮮社会の状況が盛られていた.
去年 4月金さんが北朝鮮黄海南道で撮影したこの映像の中には一男性が道端に軸垂れたまま長く横になっている.
金さんは近く店の主人に倒れた男性に関して問ったが “昨日午後から倒れていて触って見たらまだ死ななかった. 飢えて倒れているようなのにすぐ死ぬようだ”と言ったと伝えた.
また他の映像には物乞いしに来た一男性がタバコを吸っている姿が盛られた.
金さんが “あなた作業組にも飢える人が一人二人ではないじゃないが”と問うと男性は “とても多い.
それでも働きに出る.
仕方なく出る人も多い”と返事してからは一息を吐き出した後 “死ぬようだ”と言う.
金さんは鼻でも19街流布した期間に対して “90年代苦難の行軍の時より大変だった.
あの時も穀倉地帯である黄海道では餓死する事はなかった”と “しかし鼻でも19 間は毎日 ‘誰お父さんが死んだ, 誰子供が死んだ’と言ううわさが聞こえるほどに人がたくさん死んだ”と言った.
鼻でも19 間北朝鮮が国家主導で食糧専売制を実施すると米などは暗市場で取り引きされた.
ある日は金さんの家に取締当局保安院が捜査令状を持って尋ねて来て集めておいた米を持って行こうと思ったと言う.
金さんが “私たちのお金で買った米”と言いながら抗議すると保安院は “この地が君のことか. 君が呼吸するこの空気も皆唐依所有”と言った.
ここに金さんは “希望を失って北朝鮮脱出を決心した”と言った.
映像を撮影した金さんは去年 5月 7日北朝鮮脱出して韓国に渡って来た.
中国やロシアなどを通じないで木造船に乗ってヨンピョン島隣近海上まで下ったと言う.
姙娠中の妻とお母さん, 弟家族など一家族 9人が一緒に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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ロシアに支援をもらう前だね
このごろは食糧サポートもらうようだが
28일 일본 TBS는 지난해 5월 탈북해 한국으로 온 30대 김모씨와의 단독 인터뷰를 보도했다.
김씨가 탈북하기 전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영상에는 코로나19를 이유로 수년간 봉쇄됐던 북한 사회의 상황이 담겨 있었다.
지난해 4월 김씨가 북한 황해남도에서 촬영한 이 영상 속에는 한 남성이 길가에 축 처진 채 길게 누워 있다.
김씨는 근처 가게 주인에게 쓰러진 남성에 관해 물었으나 “어제 오후부터 쓰러져 있어서 만져보니 아직 죽지는 않았다. 굶어서 쓰러져 있는 것 같은데 곧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영상에는 구걸하러 온 한 남성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김씨가 “당신 작업반에도 굶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 않나”라고 묻자 남성은 “굉장히 많다.
그래도 일하러 나간다.
어쩔 수 없이 나가는 사람도 많다”고 답하고는 한숨을 내쉰 뒤 “죽을 것 같다”고 말한다.
김씨는 코로나19가 창궐한 기간에 대해 “90년대 고난의 행군 때보다 힘들었다.
그때도 곡창지대인 황해도에서는 아사하는 일은 없었다”며 “하지만 코로나19 동안은 매일 ‘누구 아버지가 죽었다, 누구 아이가 죽었다’는 소문이 들려올 정도로 사람이 많이 죽었다”고 했다.
코로나19 동안 북한이 국가주도로 식량전매제를 실시하자 쌀 등은 암시장에서 거래됐다.
어느 날은 김씨의 집에 단속기관 보안원이 수사 영장을 들고 찾아와서 모아둔 쌀을 가져가려 했다고 한다.
김씨가 “우리 돈으로 산 쌀”이라며 항의하자 보안원은 “이 땅이 네 거냐. 네가 숨쉬는 이 공기도 모두 당의 소유”라고 말했다.
이에 김씨는 “희망을 잃고 탈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영상을 촬영한 김씨는 지난해 5월 7일 탈북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을 통하지 않고 목조선을 타고 연평도 인근 해상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임신 중인 아내와 어머니, 남동생 가족 등 일가족 9명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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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 지원을 받기 전이구나
요즘은 식량 지원 받는거 같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