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高句麗時代平壌城 遺跡
427年‾668年
下の
古墳時代列島最大の遺跡奈良県 纏向 遺跡
3世紀‾5世紀
(時期が少し行き違うが 5‾6世紀古墳時代の遺跡は 纏向 遺跡よりずっと小さいから)
纏向 遺跡は城郭がなくて該当の地域に 竪穴住居地の群集が低い密度に疎らに分布されていたことで
実際規模の差は上の地図で見える面積の差よりもっと大きい差がある.
高句麗の平壌城は都市外角が石材の 城でめぐらすよあって,
内部は整形化された四角都市区画で町竝みがぎっしりするようにあったし, 石材のペーブメントと運河, 下水道が設置されていたし,
長さ 375mの世界最大の木橋と世界最初の巨大八角木塔である 金剛寺の木塔などが建設されていた.
分かるか知れないが高句麗は東洋歴史で最初で中国以外の地域で中国の文明水準を追い付いた国だ.
元々東洋で中国内部とその以外の地域は文明水準で圧倒的な差があった.
上古時代中国以外地域で一番発展した古朝鮮までも中国とは圧倒的な格差があった.
その格差は数千年間続けたが高句麗が最初路中国以外の地域で中国水準の文明に到逹して
他の地域に文明を伝えながら東洋の他の地域でも文明の基礎を取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
日本もその中一つで原始的だった日本が文明の基礎を取るようになったことも全面的に高句麗と高句麗係である百済の教えおかげさまだった.
その跡で古代日本にあった高句麗式 城, 高句麗式 伽藍, 高句麗尺 などがある.
위
고구려 시대 평양城 유적
427년~668년
아래
고분시대 열도 최대의 유적 나라현 纏向 유적
3세기~5세기
(시기가 조금 어긋나지만 5~6세기 고분시대의 유적은 纏向 유적보다 훨씬 작기 때문에)
纏向 유적은 성곽이 없고 해당 지역에 竪穴住居地의 군집이 낮은 밀도로 듬성듬성 분포되어 있었던 것으로
실제 규모의 차이는 위 지도에서 보이는 면적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가 있다.
고구려의 평양城은 도시 외각이 석재의 城으로 둘러쌓여 있고,
내부는 정형화된 사각 도시 구획으로 시가지가 빼곡하게 있었으며, 석재의 포장도로와 운하, 하수도가 설치되어 있었고,
길이 375m의 세계 최대의 목교와 세계 최초의 거대 팔각 목탑인 金剛寺의 목탑 등이 건설되어 있었다.
아는지 모르지만 고구려는 동양 역사에서 최초로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중국의 문명 수준을 따라잡은 나라이다.
원래 동양에서 중국 내부와 그 이외의 지역은 문명 수준에서 압도적인 차이가 있었다.
상고시대 중국 이외 지역에서 가장 발전했던 고조선조차도 중국과는 압도적인 격차가 있었다.
그 격차는 수천년간 이어졌으나 고구려가 최초로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중국 수준의 문명에 도달하고
다른 지역에 문명을 전파하면서 동양의 다른 지역에서도 문명의 기틀을 잡을 수 있게 된다.
일본도 그 중 하나로 원시적이었던 일본이 문명의 기틀을 잡게 된 것도 전적으로 고구려와 고구려계인 백제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그 흔적으로 고대 일본에 있었던 고구려식 城, 고구려식 伽藍, 고구려尺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