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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と日本の文化は大きい差を見せるが, 遺伝的には似ているという主張がある.

薄情嶺ソウル大地理学と教授が去年発行した “韓国人の起源”(海出版社)によれば中国ラオハ川(遼河) 一帯に分布した人々は畑農耕と遊牧を一緒にする半農反目文化を発展させたし, これらが韓半島と日本に大きな影響を及ぼした.

これらは気候が悪くなる度に “ドミノが倒れるように南下して” 移住波を起こした. 特にB.C. 2800‾2300年前に現われた気候変化で農耕民集団移住が韓半島につながったし, 一部はこの過程で日本九州地方で進出した.

その跡が遺伝子に刻まれていると言う. 遺伝子分析結果をよく見れば, 韓国人はモンゴル人よりは日本人, そして満州族のような中国北東部人々と近い. 特に三国時代を経りながら多くの一クラス道人が日本に移ったし, その結果韓国人と日本人の遺伝子はほとんど同じくなった.

朴教授は “両国人々の誘電体は日本人に一部残っている繩文狩猟採集民の遺伝子を除けば等しいと思っても関係ない”と主張する.

イメージ拡大日本九州の一ジェントルマン. 九州は初期韓国人がたくさん渡った所に推定される.
日本九州の一ジェントルマン. 九州は初期韓国人がたくさん渡った所に推定される.

[連合ニュース資料写真]

百済文化研究会引っ越しである李ジェイルさんも似ている意見を広げる. 彼は新刊 “韓半島移住民の日本列島開拓史”(未聞社)で “日本という国, その祈願はすぐ韓半島で渡った移住民たち”と主張する. 遺伝子分析よりは発露確認した結果だ. 彼は 10余年間日本列島全域を踏査して古墳, ジェントルマン, 古代遺跡, 酸性のような遺物たちを一つ一つ直接確認したと言う.

著者はB.C. 3世紀から紀元後 7世紀まで 1千年にかけて韓半島から日本列島で移住した人々の生を追跡した. それによれば創始期移住民たちは九州北部海岸と出雲地域など海岸道路を通じて易しく触れることができる所に定着した. 初めには規模も小さくて些細な存在だったが, 徐徐に移住民の数は増加した. これらはますますもっと東に, もっと広い地域で勢力を広げて行った.

イメージ拡大日本私だとホリュジの
日本私だとホリュジの “百済観音”

[ホリュだ所蔵品であるこの仏像は飛鳥時代を代表する傑作で 1951年日本の国宝に指定された. 連合ニュース資料写真]

4世紀に至っては伽揶と新羅, 高句麗など韓半島で実際に勢力をふるった政治集団たちが組織的な形態で日本列島で移住した. これらは今の大阪, 奈良地域に定着しながら日本列島で独自の政治的基盤を作って行った. 単純な移民ではなく, “征服”に近い移住だったと著者は主張する.

おもしろい点はこれら移住民が時間が経ちながら自分たちの出身地を徹底的に隠したという点だ. 7世紀, 韓半島で決定的な勢力入れ替えが起こると, 日本に定着していた移住民たちはこれ以上故国との年間を維持す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 彼らは日本列島の中で完全に新しいアイデンティティを創造し出したし, 歴史も新しく使って下がった.

著者は “日本の起源は日本列島の中で始まったのではなく, 海を渡って来た人々の手で始まった”と言い切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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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要約


遺伝的近接性

  • 薄情嶺教授の主張のように, 遺伝子分析結果を見れば韓国人と日本人(特に本州及び九州地域)は モンゴル人よりはむしろお互いにもっと近い遺伝的特性を共有します.

  • おこる 中国東北部地域(腰下文明圏)の半農反目民族が気候変化などに南下して, 韓半島と日本で連鎖的に移動一歴史的流れを反映します.

  • 日本人の遺伝子には ‘繩文である’という日本原州狩猟採集民の遺伝子が一部残っていて, これが韓国人と日本人の差を作る主要要因中の一つです.


文化的冷たくは ‘歴史的半期’の結果

  • 文化的に韓国と日本は確実に違います. 言語体系, 家族構造, 社会雰囲気, 政治伝統などが皆違います.

  •  

  • しかしおこる 移住後それぞれ他の環境と歴史的経験を通じて独立的なアイデンティティが形成されたからです. 日本は特に 明治維新以後, 独自の民族神話と歴史敍述を強調しながら出身地を隠す方向に行きました.

  • 上に引用した著者たちも指摘したように, 一クラス道界移住民が日本古代国家形成に大きい寄与をしたという証拠は古墳, 仏像, 建築, 地名などで非常に豊かに現われます.

  •  


政治的敏感性

このような主張は歴史的でも科学的にとてもおもしろいが, 韓日両国の民族主義的アイデンティティと関連が深くて非常に敏感な主題になったりします. 日本内一部保守的歴史観はこのような移住説や征服説を否定するとか無視しようと思って, 韓国でもこの事実を民族的自負心の根拠で解釈する場合もあります.


結論的に, 韓国と日本は 遺伝的には非常に似たり寄ったりだが, 各自の歴史とアイデンティティは **違うように発展した ‘近くの隣り’**と見られます. 現代人の観点で見れば, このように遺伝的連関性と文化的差を 両極端的に分けるよりは, 歴史と環境がもたらした多様性の一部で理解するのが重要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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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国人と日本人の差は日本人は繩文混血の差


기후변화에 南으로, 南으로…일본 개척한 한반도 이주민들

 한국과 일본의 문화는 큰 차이를 보이지만, 유전적으로는 비슷하다는 주장이 있다.

박정재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가 지난해 펴낸 "한국인의 기원"(바다출판사)에 따르면 중국 랴오허강(遼河) 일대에 분포했던 사람들은 밭 농경과 유목을 함께 하는 반농반목 문화를 발전시켰고, 이들이 한반도와 일본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기후가 나빠질 때마다 "도미노가 쓰러지듯 남하해" 이주 물결을 일으켰다. 특히 기원전 2800~2300년 전에 나타난 기후 변화로 농경민 집단 이주가 한반도로 이어졌고, 일부는 이 과정에서 일본 규슈 지방으로 진출했다.

그 흔적이 유전자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유전자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인은 몽골인보다는 일본인, 그리고 만주족과 같은 중국 북동부 사람들과 가깝다. 특히 삼국시대를 거치면서 많은 한반도인이 일본으로 넘어갔고, 그 결과 한국인과 일본인의 유전자는 거의 같아졌다.

박 교수는 "양국 사람들의 유전체는 일본인에게 일부 남아 있는 조몬 수렵채집민의 유전자를 제외하면 동일하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주장한다.

이미지 확대일본 규슈의 한 신사. 규슈는 초기 한국인이 많이 건너간 곳으로 추정된다.
일본 규슈의 한 신사. 규슈는 초기 한국인이 많이 건너간 곳으로 추정된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백제문화연구회 이사인 이재일 씨도 비슷한 의견을 펼친다. 그는 신간 "한반도 이주민의 일본 열도 개척사"(미문사)에서 "일본이라는 나라, 그 기원은 바로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민들"이라고 주장한다. 유전자 분석보다는 발로 확인한 결과다. 그는 10여년간 일본 열도 전역을 답사하며 고분, 신사, 고대 유적, 산성과 같은 유물들을 하나하나 직접 확인했다고 한다.

저자는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7세기까지 1천년에 걸쳐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이주한 사람들의 삶을 추적했다. 그에 따르면 초창기 이주민들은 규슈 북부 해안과 이즈모 지역 등 바닷길을 통해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에 정착했다. 처음에는 규모도 작고 미미한 존재였지만, 점차 이주민의 수는 증가했다. 이들은 점점 더 동쪽으로, 더 넓은 지역으로 세력을 넓혀갔다.

이미지 확대일본 나라 호류지의
일본 나라 호류지의 "백제관음"

[호류지 소장품인 이 불상은 아스카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1951년 일본의 국보로 지정됐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4세기에 이르러서는 가야와 신라, 고구려 등 한반도에서 실제로 세력을 떨쳤던 정치 집단들이 조직적인 형태로 일본 열도로 이주했다. 이들은 지금의 오사카, 나라 지역에 정착하며 일본 열도에서 독자적인 정치적 기반을 만들어 나갔다. 단순한 이민이 아니라, "정복"에 가까운 이주였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이주민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기들의 출신지를 철저히 감췄다는 점이다. 7세기, 한반도에서 결정적인 세력 교체가 일어나자, 일본에 정착해 있던 이주민들은 더 이상 고국과의 연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들은 일본 열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해 냈고, 역사도 새롭게 써 내려갔다.

저자는 "일본의 기원은 일본 열도 안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의 손에서 시작되었다"고 단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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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요약


✅ 유전적 근접성

  • 박정재 교수의 주장처럼, 유전자 분석 결과를 보면 한국인과 일본인(특히 혼슈 및 규슈 지역)은 몽골인보다는 오히려 서로 더 가까운 유전적 특성을 공유합니다.

  • 이는 중국 동북부 지역(요하 문명권)의 반농반목 민족이 기후 변화 등으로 남하하며, 한반도와 일본으로 연쇄적으로 이동한 역사적 흐름을 반영합니다.

  • 일본인의 유전자에는 ‘조몬인’이라는 일본 원주 수렵채집민의 유전자가 일부 남아 있고, 이것이 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를 만드는 주요 요인 중 하나입니다.


✅ 문화적 차이는 ‘역사적 분기’의 결과

  • 문화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확연히 다릅니다. 언어 체계, 가족 구조, 사회 분위기, 정치 전통 등이 모두 다릅니다.

  • 그러나 이는 이주 후 각기 다른 환경과 역사적 경험을 통해 독립적인 정체성이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특히 메이지 유신 이후, 독자적인 민족 신화와 역사서술을 강조하면서 출신지를 감추는 방향으로 갔습니다.

  • 위에 인용하신 저자들도 지적했듯이, 한반도계 이주민이 일본 고대 국가 형성에 큰 기여를 했다는 증거는 고분, 불상, 건축, 지명 등에서 매우 풍부하게 나타납니다.


✅ 정치적 민감성

이러한 주장은 역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매우 흥미롭지만, 한일 양국의 민족주의적 정체성과 관련이 깊어 매우 민감한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일본 내 일부 보수적 역사관은 이러한 이주설이나 정복설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려 하고, 한국에서도 이 사실을 민족적 자긍심의 근거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유전적으로는 매우 유사하지만, 각자의 역사와 정체성은 **다르게 발전한 ‘가까운 이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처럼 유전적 연관성과 문화적 차이를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다는, 역사와 환경이 빚어낸 다양성의 일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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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 일본인의 차이는 일본인은  조몬 혼혈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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