財産持って帰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日本人
敵産から屈指企業で
敵産で屈指の企業で成長した事例が多かった. 筆記具製造業社東亜鉛筆はMasaki大和鉛筆大田工場を 1946年郵送金正宇が引き受けて創業した.
大韓重石は解放後帰属材産になってしばらく公企業になったが 1994年コピョングループに引受されながら民営化されたが, 1998年コピョン不渡り以後 1999年イスラエル IMCグループが引き受けてから 2006年にウォレンボピッが引き受けた.
セアベスティルの電信である大韓中期工業はギムヨンギュの前会長が自分の会社員関東機械製作所を引き受けて創業した.
SKはダムヨン最終件創業株が仙境織物を引き受けて創業したし, ヒョンアムギムゾングフィは 1952年に韓国火薬の電信である ‘韓国火薬’を創業した後 1955年に朝鮮火薬公判仁川工場を引き受けた.
大熊製薬は慶南衛生試験所で働いたジダルサムが 1945年解放後日本人所有制約業社 ‘カワイ製薬所’を引き受けて始めた.
大韓製粉は 1952年に離韓院創業株がニッポン製粉(現ニッピン) 仁川工場を引き受けて創業したし, JW中外製薬は利己席が 1945年解放後日本株価今薬の京城事務所を引き受けた.
Asanoセメント竜山工場は解放後帰属材産になって 1958年林主賓が引き受けて ‘韓国スレート工業’を設立したが, 1962年に映画業者であるギムインドック東洋物産社長に騙されて現碧山グループの土台を作った.
三越デパート京城店は解放後米軍政を経って 1954年帰属材産になったが 3年後朝鮮紡織, 1962年から東方生命に引受されたし, その後三星グループのイ・ビョンチョルが引き受けて新世界百貨店になった.
8.15 解放の時, 日本人が残して行く財産で韓国人たちが日本人企業らを引き受けてその足場で大企業を掘り起こした. 日本人ありがと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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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갖고 돌아가지 못했던 일본인
적산에서 굴지 기업으로
적산에서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한 사례가 많았다. 필기구 제조업체 동아연필은 마사키 야마토 연필 대전공장을 1946년 우송 김정우가 인수해서 창업했다.
대한중석은 해방 후 귀속재산이 돼 한동안 공기업이 됐다가 1994년 거평그룹에 인수되면서 민영화됐지만, 1998년 거평 부도 이후 1999년 이스라엘 IMC그룹이 인수하였다가 2006년에 워렌 버핏이 인수했다.
세아베스틸의 전신인 대한중기공업은 김연규 전 회장이 자신의 직장인 관동기계제작소를 인수하여 창업했다.
SK는 담연 최종건 창업주가 선경직물을 인수해 창업했고, 현암 김종희는 1952년에 한화의 전신인 ‘한국화약’을 창업한 후 1955년에 조선화약공판 인천공장을 인수했다.
대웅제약은 경남위생시험소에서 일하던 지달삼이 1945년 해방 후 일본인 소유 제약업체 ‘가와이제약소’를 인수해 시작했다.
대한제분은 1952년에 이한원 창업주가 닛폰제분(현 닛핀) 인천공장을 인수하여 창업했고, JW중외제약은 이기석이 1945년 해방 후 일본 주가이제약의 경성사무소를 인수했다.
아사노시멘트 용산공장은 해방 후 귀속재산이 돼 1958년 임주빈이 인수해 ‘한국스레트공업’을 설립했으나, 1962년에 영화업자인 김인득 동양물산 사장에게 넘어가 현 벽산그룹의 토대를 만들었다.
미쓰코시백화점 경성점은 해방 뒤 미군정을 거쳐 1954년 귀속재산이 됐다가 3년 뒤 조선방직, 1962년부터 동방생명에 인수됐고, 그 후 삼성그룹의 이병철이 인수해 신세계백화점이 됐다.
8.15 해방 때, 일본인이 남기고간 재산으로 한국인들이 일본인 기업들을 인수해 그 발판으로 대기업을 일구었다. 일본인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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