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日関係、こぼれたコップを満たすには
【特派員コラム】
「李在明(イ・ジェミョン)大統領の就任を心よりお祝い申し上げます」
韓国で6月3日の大統領選の結果が確定した翌日の4日、日本の石破茂首相は早朝にソーシャルメディアのX(旧ツイッター)にハングルで、このように投稿した。当選祝いの挨拶は機械で入力されたものだったが、まるで慣れない外国語を鉛筆で一文字一文字書いたような気持ちのこもった感じがあった。石破首相は「日韓関係の安定的な前進」を希望する意向も伝えた。
現時点では直接顔を合わせることもできていない韓国と日本の首脳は、ガラスのコップに触れるかのように慎重な態度を示している。ちょうど22日に60周年を迎える韓日国交正常化が話題になっている。李大統領は9日の石破首相との初めての電話会談の後、「韓日関係正常化60周年、光復(解放)80周年となる意味のある年であるだけに、未来志向的な関係を作る」と明らかにした。石破首相も同様に4日、「1965年の国交正常化以来築いてきた日韓関係の基盤に基づき、これをさらに発展させていけることを期待している」と述べた。
しかし、両首脳が言及した韓日国交正常化の内情をみると、お祝いばかりの事案ではない。1965年6月22日、両国は韓日基本条約と請求権協定に署名し、国交を樹立した。日帝強占期(日本による植民地時代)の不法な植民地支配と被害を問いただすことが核心事項だったが、最終結果にはそのような内容は反映されなかった。請求権協定には、無償3億ドル、有償2億ドルの援助を受け取るかわりに「(日帝強占期の)請求権に関する問題が…完全かつ最終的に解決された」という文言が加えられた。いわゆる「1965年体制」以降の韓国と日本の過去の歴史問題の根源がここにある。
こぼれた水をうまくふき取り、改めてコップを満たすことも重要だ。歴代の韓日政府が適切に解決できなかった問題を賢明に解決すれば、それによって、未来に進む堅固な道が開かれるという期待もある。李大統領の就任初期に、1965年に締結された基本条約と協定に関する韓日共同声明で、韓日関係の第一歩を踏むのが望ましいという意見が代表的だ。韓日関係が未来に進めない原因の一つが「1965年体制」であることを両首脳が認め、この問題を解決する意向を表明し、もつれた糸をほぐそうというものだ。
韓日友好における大きな道しるべを作った金大中(キム・デジュン)大統領と小渕恵三首相時代を教訓にしようという話にも関心が集まる。金大中大統領は、「慰安婦」問題(1991年)、独島(ドクト)問題(1996年)、韓日漁業協定の改正および破棄(1996年~1998年1月)など、韓日関係の相次ぐ悪材料のもとで就任した。国内的には1997年の外国為替危機(IMF危機)で経済が崩壊し、日本の助けが切実に必要な時期だった。金大統領は1998年、小渕首相とともに「21世紀に向けた新たな韓日パートナーシップ」で、日米同盟強化による朝鮮半島平和の実現、韓日安全保障協力、対北朝鮮政策の認識共有、首脳間交流の定例化などを約束した。日本政府の承認のもと、かなりの額の日本の金融資本が韓国に流入したことで、外国為替危機の克服を助けた。
おりしも2002年に日本では韓国ドラマ「冬のソナタ」ブームが巻き起こり、その後の韓流ブームにつながるなど、波及効果は絶大だった。「過去の問題に代表される難題が、韓日関係全般を支配する枠組みにならないよう、政府レベルでの持続的な関心と管理が必要だ」(峨山政策研究院のチェ・ウンミ研究委員)の提言は傾聴に値する。
ホン・ソクジェ|東京特派員
https://news.yahoo.co.jp/articles/e2a5f29a2dcfa5ebdad6560d3a005e601971bdf0
要は「日本、金出すニダ」だろ
韓国経済ドン底だもんな
한일 관계, 흘러넘친 컵을 채우려면
【특파원 칼럼】
「이재아키라(이·제몰) 대통령의 취임을 진심으로 축하 말씀 드립니다」
한국에서 6월 3일의 대통령 선거의 결과가 확정한 다음날의 4일, 일본의이시바 시게루 수상은 이른 아침에 소셜l 미디어의 X( 구트잇타)에 한글로, 이와 같이 투고했다.당선 축하의 인사는 기계로 입력된 것이었다 가,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외국어를 연필로 한 글자 한 글자 쓴 것 같은 기분이 가득찬 느낌이 있었다.이시바 수상은 「일한 관계의 안정적인 전진」을 희망할 의향도 전했다.
현시점에서는 직접 얼굴을 맞대는 일도 되어 있지 않은 한국과 일본의 수뇌는, 유리컵에 접하는 것 같이 신중한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정확히 22일에 60주년을 맞이하는 한일 국교 정상화가 화제가 되고 있다.이 대통령은 9일의 이시바 수상과의 첫 전화 회담의 뒤, 「한일 관계 정상화 60주년, 광복(해방) 80주년이 되는 의미가 있는 해인 만큼,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만든다」라고 분명히 했다.이시바 수상도 이와 같이 4일, 「1965년의 국교 정상화 이래 쌓아 올려 온 일한 관계의 기반으로 기초를 두어, 이것을 한층 더 발전시켜 할 수 있다 일을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양수뇌가 언급한 한일 국교 정상화의 내정을 보면, 축하뿐인 사안은 아니다.1965년 6월 22일, 양국은 한일 기본 조약과 청구권 협정에 서명해, 국교를 수립했다.일제 강점기(일본에 의한 식민지 시대)의 불법인 식민지 지배와 피해를 따지는 것이 핵심 사항이었지만, 최종 결과에는 그러한 내용은 반영되지 않았다.청구권 협정에는,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의 원조를 받는 대신에 「(일제 강점기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라고 하는 문언이 더해졌다.이른바 「1965년 체제」이후의 한국과 일본의 과거의 역사 문제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흘러넘친 물을 잘 닦아내, 재차 컵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다.역대의 한일 정부를 적절히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면, 거기에 따르고, 미래에 진행되는 견고한 길이 열린다고 하는 기대도 있다.이 대통령의 취임 초기에, 1965년에 체결된 기본 조약과 협정에 관한 한일 공동 성명으로, 한일 관계의 제일보를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는 의견이 대표적이다.한일 관계가 미래에 진행하지 않는 원인의 하나가 「1965년 체제」인 것을 양수뇌가 인정해 이 문제를 해결할 의향을 표명해, 도 따른 실을 풀자고 하는 것이다.
한일 우호에 있어서의 큰 이정표를 만든 김대중(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케이조 수상 시대를 교훈으로 하려는 이야기에도 관심이 모인다.김대중 대통령은, 「위안부」문제(1991년), 독도(드크트) 문제(1996년), 한일 어업 협정의 개정 및 파기(1996년 1998년 1월) 등, 한일 관계가 잇따르는 악재료의 아래에서 취임했다.국내적으로는 1997년의 외환 위기(IMF 위기)로 경제가 붕괴해, 일본의 도움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였다.김대통령은 1998년, 오부치 수상과 함께 「21 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으로, 일·미 동맹 강화에 의한 한반도 평화의 실현, 한일 안전 보장 협력, 대북정책의 인식 공유, 수뇌 사이 교류의 정례화등을 약속했다.일본 정부의 승인 아래, 상당한 액의 일본의 금융 자본이 한국에 유입한 것으로, 외환 위기의 극복을 도왔다.
때마침 2002년에 일본에서는 한국 드라마 「 겨울의 소나타」붐이 일어나, 그 후의 한류붐으로 연결되는 등, 파급효과는 절대였다.「과거의 문제로 대표되는 난제가, 한일 관계 전반을 지배하는 골조가 되지 않게, 정부 레벨로의 지속적인 관심과 관리가 필요하다」(아산정책 연구원의최·운미연구 위원)의 제언은 경청할 만한다.
폰·소크제|도쿄 특파원
https://news.yahoo.co.jp/articles/e2a5f29a2dcfa5ebdad6560d3a005e601971bdf0
요점은 「일본, 카나이데니다」이겠지
한국 경제 돈 바닥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