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ショック後の日本の右傾化加速、
なぜ?【レビュー】
米国に9・11があったとすれば、日本には3・11があった。2001年と2011年、ちょうど10年の時を挟んで米国はアルカイダの同時多発テロが、日本は最悪の大地震と津波が襲った。2つの事件は衝撃と波紋がメガトン級だっただけでなく、その後の両国の政治、社会、外交、安保戦略の方向性を変える転換点となった。
3・11東日本大震災と福島第一原発事故以降、日本は明確かつ急激に右傾化していった。大震災の翌年の2012年の総選挙で安倍晋三率いる自民党が当時政権党だった民主党を破り、政権を奪還したことがシグナルとなった。安倍はそれに先立つ2006年9月に、前任の小泉首相の職を継承し、1年間首相職を務めている。
そして2012年から2020年までの通算8年8カ月間、安倍が日本の最長寿首相としてその地位にある間、日本では歴史修正主義と排他的愛国主義が跋扈(ばっこ)し、平和憲法を否定する「普通の国論」が勢力を伸ばした。進歩政党と市民社会の存在感はほぼなくなってしまった。
『ネオコン日本の誕生』は、東京特派員を務めた現職の新聞記者が、3・11を転換点として、安倍晋三に代表される保守右翼グループである「ネオコン」の阻むものなき独走がいかに日本社会を右傾化させたのか、その背景と過程を詳細に分析した探査報告書だ。福島第一原発事故は、19世紀以降の日本の開港と近代化、侵略戦争と植民地主義、敗戦後の経済成長、戦後民主主義のぜい弱さと官僚-財界同盟体制など、きちんと解消されずに積もり積もった日本社会の重層的な積弊が爆発した事件だった。
「3・11は、日本という国家の存在のあり方を根本から省察した末に改革の扉を開く決定的な局面になると期待された」ものの、そのようなことは起きなかった。著者は、日本が「敗戦に次ぐ衝撃にもかかわらず、新たな未来へと向かうのではなく、急激な『退行』を選択した」理由を探見出そうとした。まず、20世紀末の冷戦体制の崩壊、湾岸戦争、経済不況以降に、日本で右傾化が「ビルドアップ」される過程を検討した。
2002年の初の日朝首脳会談で、金正日(キム・ジョンイル)が日本人拉致(1977年)を初めて認めて謝罪したことは、むしろ日本の強硬勢力が勢力を伸ばす契機となった。ネット右翼と在特会(在日特権を許さない市民の会)を中心として嫌韓論が広がった。2006年に小泉前首相の職を継承して初めて首相になった安倍晋三(第1期、2006~2007)は、拉致問題を脱冷戦後の自国の普通の国戦略に積極的に利用した。
日本の右翼は、2010年代には尖閣諸島をめぐる中国との対立を日本の積極的な再武装と軍備増強の口実とした。2016年、安倍晋三は「インド太平洋戦略」を提示しつつ、普通の国からさらに一歩踏み込んでアジア覇権国家への志向を明確にした。これは米国の中国けん制戦略とも合致した。これに先立つ2009~2012年の短い民主党政権は、脱冷戦以降の日本の総体的保守化の過程の幕間劇に過ぎなかった。2011年の東日本大震災とともに、当時政権党だった民主党も沈没してしまった。
著者の関心は、嫌韓論と親日の積弊を克服したうえでの韓日関係の友好的復元と未来指向的な発展へと向かう。両国が「過去を踏み越えて未来へ」と向かうことが容易でないのは、歴史問題を望ましいかたちで解決することなく、時限爆弾のような弥縫策(びほうさく)でごまかしておこうとしてきたからだ。著者は「国家間関係においては『尊厳と感情の均衡』は利益の均衡に劣らず重要だ」と述べる。「加害国が過去の過ちをきちんと記憶し、それを伝承することは、尊厳と感情のバランスを取るうえでの基礎であり、韓日関係の最低限の綱領」だ。歴史認識は単に継承するものではなく、実践へとつなげ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ことだ。
https://news.yahoo.co.jp/articles/ccf654346eba66ffd97d189959f867233ef37bc0
紹介されている書籍の著者は大きな勘違いをしている
東日本大震災を境に日本が右傾化したのではない
日本が韓国に対する態度を硬化させたのは
反日大統領・李明博の数々の反日言動に触れたからだ
(竹島上陸、天皇侮辱発言etc)
出発点が間違ってるのに
間違った分析で本一冊書き上げる韓国人
( ゚∀゚)アハハ八八ノヽノヽノヽノ \ / \/ \
3·11 쇼크 후의 일본의 우경화 가속,
왜?【리뷰】
미국에 9·11이 있었다고 하면, 일본에는 3·11이 있었다.2001년과 2011년, 정확히 10년때를 사이에 두어 미국은 알카이다의 동시 다발 테러가, 일본은 최악의 대지진과 해일이 덮쳤다.2개의 사건은 충격과 파문이 메가톤급이었다 뿐만이 아니고, 그 후의 양국의 정치, 사회, 외교, 안보 전략의 방향성을 바꾸는 전환점이 되었다.
3·11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일 원자력 발전 사고 이후, 일본은 명확하고 급격하게 우경화하고 갔다.대지진의 다음 해의 2012년의 총선거로 아베 신조 인솔하는 자민당이 당시 정권당이었던 민주당을 찢어, 정권을 탈환했던 것이 시그널이 되었다.아베는 거기에 앞서는 2006년 9월에, 전임 코이즈미 수상의 일자리를 계승해, 1년간 수상직을 맡고 있다.
그리고 2012년부터 2020년까지의 통산 8년 8개월간, 아베가 일본의 최장히사시 수상으로서 그 지위에 있는 동안, 일본에서는 역사 수정주의와 배타적 애국 주의가 발호(발호) 해, 평화 헌법을 부정하는 「보통 국론」이 세력을 늘렸다.진보 정당과 시민사회의 존재감은 거의 없어져 버렸다.
「네오 콘 일본의 탄생」은, 도쿄 특파원을 맡은 현직의 신문기자가, 3·11을 전환점으로서 아베 신조로 대표되는 보수 우익 그룹인 「네오 콘」이 막는 것 울어 독주가 얼마나 일본 사회를 우경화 시켰는지, 그 배경과 과정을 상세하게 분석한 탐사 보고서다.후쿠시마 제일 원자력 발전 사고는, 19 세기 이후의 일본의 개항과 근대화, 침략전쟁과 식민지 주의, 패전 후의 경제성장, 전후 민주주의의 취약 마을 관료-재계 동맹 체제 등, 제대로 해소되지 않고 쌓여 쌓인 일본 사회의 중층적인 적폐가 폭발한 사건이었다.
「3·11은, 일본이라고 하는 국가의 존재의 본연의 자세를 근본으로부터 성찰 한 끝에 개혁의 문을 여는 결정적인 국면이 된다고 기대되었다」 것의,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저자는, 일본이 「패전에 뒤잇는 충격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미래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급격한 「퇴행」을 선택했다」이유를 탐 찾아내려고 했다.우선, 20 세기말의 냉전 체제의 붕괴, 걸프 전쟁, 경제 불황 이후에, 일본에서 우경화가 「빌드업」되는 과정을 검토했다.
2002년의 첫 일·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김정일)이 일본인 납치(1977년)를 처음으로 인정해 사죄한 것은, 오히려 일본의 강경 세력이 세력을 늘리는 계기가 되었다.넷 우익과 재특회(재일 특권을 허락하지 않는 시민의 회)를 중심으로 혐한론이 퍼졌다.2006년에 코이즈미 전수상의 일자리를 계승하고 처음으로 수상이 된 아베 신조( 제1기, 20062007)는, 납치 문제를 탈냉전 후의 자국의 보통 나라 전략에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일본의 우익은, 2010년대에는 센카쿠 제도를 둘러싼 중국과의 대립을 일본의 적극적인 재무장과 군비 증강의 구실로 했다.2016년, 아베 신조는 「인도 태평양 전략」을 제시하면서, 보통 나라로부터 한층 일보 발을 디뎌 아시아 패권 국가에의 지향을 명확하게 했다.이것은 미국의 중국 견제 전략과도 합치했다.이것에 앞서는 20092012년이 짧은 민주당 정권은, 탈냉전 이후의 일본의 총체적 보수화의 과정의 막간극에 지나지 않았다.2011년의 동일본 대지진과 함께, 당시 정권당이었던 민주당도 침몰해 버렸다.
저자의 관심은, 혐한론과 친일의 적폐를 극복한 후의 한일 관계의 우호적 복원과 미래 지향적인 발전으로 향한다.양국이 「과거를 밟아 넘어 미래에」라고 향하는 것이 용이하지 않은 것은, 역사 문제를 바람직한가들로 해결하는 일 없이, 시한폭탄과 같은 미봉책(미봉책) 로 얼거무려 두려고 왔기 때문이다.저자는 「국가간 관계에 대해 「존엄과 감정의 균형」은 이익의 균형에 뒤떨어지지 않고 중요하다」라고 말한다.「가해국이 과거의 잘못을 제대로 기억해, 그것을 전승하는 것은, 존엄과 감정의 밸런스를 취하는데의 기초이며, 한일 관계의 최저한의 강령」이다.역사 인식은 단지 계승하는 것이 아니고, 실천으로 연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다.
https://news.yahoo.co.jp/articles/ccf654346eba66ffd97d189959f867233ef37bc0
소개되고 있는 서적의 저자는 큰 착각을 하고 있는
동일본 대지진을 경계로 일본이 우경화한 것은 아닌
일본이 한국에 대한 태도를 경화시킨 것은
반일 대통령·이명박의 수많은 반일 언동에 접했기 때문이다
출발점이 잘못되고 있는데
잘못된 만큼 석으로 본1권 다 쓰는 한국인
( ˚∀˚) 아하하88노□노□노□노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