シマズYoshihiro
シマズは九州統一を目の前に置いたが秀吉のためすべてが水の泡となって彼の下に入って行った後壬辰の乱に真実電荷だった.
朝鮮の陶工をたくさん連れて行った長水路悪名が高かったし
個人的に能力が抜群な長寿で徳将だった. 普段家臣たちに徳望が高かったからノリャン海戦退却と関加下だと戦闘のシマズ退却という家臣たちが身投げをして皆殺しされても本人は生き残ることができた.
真珠 2次戦闘に参戦して七川量海戦に参戦四天で名君を大破して朝鮮のサロビョングジンゾングチェックを瓦解させるのに大きい貢献を一長寿だ.
明君は彼を貴石万字だと言って恐ろしがった
そして彼は李舜臣将軍の最後の海戦ノリャン海戦でぶつかった長寿だった.
李舜臣とブディッチョッダヌンゴッだけでもシマズ家門のすべて兵力半分が死亡した. もちろんそのまま変わったのではなくて他の長寿たちの退路を開いてくれながら変わったこと.
辛うじて命だけ保全して逃亡.
以後本国に到着してセキがハラで石田ミツナリ便にソッジだけ
ノリャン海戦の時の被害があんまり大きかったからわずか 1500人位が参加したことに推測される.[とても少ない兵力が参加してミツナリが個人的にシルオヘッダで言う]
関加下だと戦闘では家臣たちが皆死んでほとんど一人でサルアドルアガン `シマズ突撃[退却]`で有名だ.
시마즈 요시히로
시마즈는 규슈 통일을 눈 앞에 두었는데 히데요시 때문에 모든게 물거품이 되어 그의 밑으로 들어간 후 임진왜란에 참전하였다.
조선의 도공을 많이 끌고간 장수로 악명이 높았으며
개인적으로 능력이 출중한 장수이며 덕장이였다. 평소에 가신들에게 덕망이 높았기에 노량해전 퇴각과 세키가하라 전투의 시마즈 퇴각이라는 가신들이 몸을 던져 몰살당해도 본인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진주 2차 전투에 참전하고 칠천량해전에 참전 사천에서 명군을 대파하며 조선의 사로병진정책을 와해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장수이다.
명나라군은 그를 귀석만자라 해서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는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 노량해전에서 부딪친 장수였다.
이순신과 부딪쳤다는것만으로도 시마즈 가문의 총 병력 절반이 사망했다. 물론 그냥 갈린건 아니고 다른 장수들의 퇴로를 열어주면서 갈린것.
간신히 목숨만 보전하여 도망.
이후 본국에 도착하여 세키가하라에서 이시다 미츠나리 편에 섯지만
노량해전 때 피해가 워낙 컸기 때문에 고작 1500명 정도가 참여한 것으로 추측된다.[너무 적은 병력이 참여하여 미츠나리가 개인적으로 싫어햇다고 한다]
세키가하라 전투에선 가신들이 모두 죽고 거의 혼자 살아돌아간 `시마즈 돌격[퇴각]`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