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明確な位階秩序: 朝鮮は中華世界の一員, 日本はその外
-
朝鮮は中国(人, 清)を中心にした **中華秩序(華夷秩序)**に含まれた国家でした. この体系で朝鮮は **文明国(華)**と認められたし, 外交も 例(礼)に基盤した形式と手続きに付きました.
-
一方, 日本は概してこの秩序に入って来なかったし, 自ら **”中華と対等とか独自の文化国”**という立場を主張しました.
-
こんな脈絡で朝鮮は日本を文化的・文明的位階で 同等とか下に見るきらいがあったし, 自ら朝貢する理由がなかったです.
2. 日本が朝鮮に朝貢した記録
-
日本は朝鮮前期, 特に太宗‾世宗時代に 使臣を送って “倭王○○”という名医で朝貢外交を一記録が 『朝鮮王朝実録』に何回も登場します.
-
が朝貢は 国際貿易と外交関係を円滑にするための手段でした.
→ すなわち, 実益のための外交であって, 朝鮮にひざまずいたことではなかったが 形式上朝貢の形態を取り揃えました. -
例: 世宗 12年(1430年), 日本対馬逃走が朝鮮に “朝貢使臣”を送りながら ‘倭王’という称号を自任.
3. 朝鮮はどうして日本に朝貢しなかったか?
(1) 朝鮮は日本を上国(上国)と認めたことがなし
-
朝貢外交は普通 ‘上国(中国)’と ‘藩国(朝鮮, 琉球, ベトナムなど)’ の間で成立されます.
-
朝鮮は中国には朝貢したが, 日本には ただ一番(回)も ‘上国’と認めるとか朝貢使臣を送ったことがないです.
-
日本との外交は “交隣(交隣)” 外交, すなわち 接した隣りとの水平的外交で見做したから朝貢の形式自体が適用されなかったです.
(2) 自尊心ではなく体系の差
-
朝貢をしないことは単純に “自尊心”の問題ではなく, 国際秩序内で朝鮮が日本を位置消した方式 のためです.
-
朝鮮は日本を文化的でも, 制度的でも自分たちより下あるいは対等な位置で判断したし, したがって朝貢外交の対象ではなかったです.
4. 豊臣秀吉の朝鮮朝貢要求事件
-
1590年, 豊臣秀吉は朝鮮に **”日本に朝貢しなさい”**は要求を送ったし, 朝鮮はこれを丁寧に断ります.
-
名分: 朝鮮はもう中国(人)に朝貢しているので日本にまた朝貢する理由がないと通報.
-
が要求を朝鮮が断りながら, 秀吉は人征服の足場にするために壬辰の乱を起こします.
すなわち, 日本は自ら朝貢を受けた事がなくて, それを強要しようと思ったが失敗しました.
要約整理
項目 | 朝鮮 | 日本 |
---|---|---|
朝貢外交体制 | 中華秩序に参加 (人, 請いに朝貢) | 独自的秩序主張, 朝貢拒否または実益外交 |
日本に朝貢可否 | なし | X 朝貢する理由のなさ, 外交は ‘交隣外交’ |
日本の朝貢記録 | あったら (倭王使臣など) | 実質的目的の外交 |
朝鮮の立場(入場) | 日本は文化的交隣国 | 上国ない, 対等または下位外交対象 |
📌 1. 명확한 위계질서: 조선은 중화세계의 일원, 일본은 그 바깥
-
조선은 중국(명, 청)을 중심으로 한 **중화 질서(華夷秩序)**에 포함된 국가였습니다. 이 체계에서 조선은 **문명국(華)**으로 인정되었고, 외교도 예(禮)에 기반한 형식과 절차를 따랐습니다.
-
반면, 일본은 대체로 이 질서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스스로 **"중화와 대등하거나 독자적인 문화국"**이라는 입장을 주장했습니다.
-
이런 맥락에서 조선은 일본을 문화적·문명적 위계에서 동등하거나 아래로 보는 경향이 있었고, 스스로 조공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 2. 일본이 조선에 조공한 기록
-
일본은 조선 전기, 특히 태종~세종 시대에 사신을 보내 "왜왕○○"이라는 명의로 조공 외교를 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
이 조공은 국제무역과 외교 관계를 원활히 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 즉, 실익을 위한 외교이지, 조선에 무릎 꿇은 것은 아니었지만 형식상 조공의 형태를 갖췄습니다. -
예: 세종 12년(1430년), 일본 쓰시마 도주가 조선에 "조공 사신"을 보내면서 ‘왜왕’이라는 칭호를 자처.
📌 3. 조선은 왜 일본에 조공하지 않았나?
✅ (1) 조선은 일본을 상국(上國)으로 인정한 적이 없음
-
조공 외교는 보통 ‘상국(중국)’과 ‘번국(조선, 류큐, 베트남 등)’ 사이에서 성립됩니다.
-
조선은 중국에는 조공했지만, 일본에는 단 한 번도 ‘상국’으로 인정하거나 조공 사신을 보낸 적이 없습니다.
-
일본과의 외교는 "교린(交隣)" 외교, 즉 인접한 이웃과의 수평적 외교로 간주했기 때문에 조공의 형식 자체가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 (2) 자존심이 아니라 체계의 차이
-
조공을 하지 않은 것은 단순히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 질서 내에서 조선이 일본을 위치 지운 방식 때문입니다.
-
조선은 일본을 문화적으로도, 제도적으로도 자신들보다 아래 혹은 대등한 위치로 판단했고, 따라서 조공 외교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 4.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조공 요구 사건
-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에게 **"일본에 조공하라"**는 요구를 보냈고, 조선은 이를 정중히 거절합니다.
-
명분: 조선은 이미 중국(명)에 조공하고 있으므로 일본에 다시 조공할 이유가 없다고 통보.
-
이 요구를 조선이 거절하면서, 히데요시는 명 정복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임진왜란을 일으킵니다.
👉 즉, 일본은 스스로 조공을 받은 적이 없고, 그것을 강요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 요약 정리
항목 | 조선 | 일본 |
---|---|---|
조공 외교 체제 | 중화질서에 참여 (명, 청에 조공) | 독자적 질서 주장, 조공 거부 또는 실익 외교 |
일본에 조공 여부 | ❌ 없음 | X 조공할 이유 없음, 외교는 ‘교린 외교’ |
일본의 조공 기록 | ✅ 있음 (왜왕 사신 등) | 실질적 목적의 외교 |
조선의 입장 | 일본은 문화적 교린국 | 상국 아님, 대등 또는 하위 외교 대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