戒厳の時軍人たちが自分の言葉をよらないか心配であらかじめ先手を打ったこと
堂では直後その年末に酔っ払って周辺人々に言ったように “銃殺にあっても言葉は戒厳一度やって見たくて”
一般的な人はソウルの春同じ映画を見ればああいうことが二度と起こらなくほしい.
しかしユンソックヨルみたいな人はソウルの春を見てカタールシースを全身におののきながら感じる.
命令を不当な命令と思って無視した指揮官たちが明らかにしたように一番先に浮び上がったのが朴正訓大領の抗命罪であったと言う.
それでもこれら指揮官たちは兵力を国会に送らないでつけてばかりして撤収させて
尹碩裂果金用賢を恐ろしさに震えるようにして 2次戒厳試みを阻むことができた.
当時尹碩裂果金用賢はこれら兵力たちが行方不明になって指揮体系がもう崩れたとヌキョッウルゴッと言う.
路上院もユンソックヨルに会ったし金用賢の長子部屋役割をした.
ユンソックヨルに会った以後彼の手帳にユンソックヨル 3年間だ. 以後統一大統領ギムゴンフィに譲位という字が書いていた.
戒厳が成功したら大韓民国が共産党シジンピングよりもっとひどい国家がドエオッウルゴッでありなさい思うが
その頃在韓米軍兵力たちは大韓民国国会を出動する直前であったし戒厳君射殺に積極的だったと言う.
戒厳君は急に叛軍になったが君逹は事実上在韓米軍島認めた共産主義者子たちが当たる. 米軍銃弾に死ななかったのがいくら幸いか
も二番目国民は光州時のように鉄砲を持つ.
京畿道や首都圏人々が全羅道より弱いと思うが
チョマッゴない. 私も戒厳成功すればユンソックヨル支持する市民たち無差別虐殺を思っていた. 虫子たち手に血つけなくて考えで終わったのが幸いだ.
계엄시 군인들이 자신의 말을 안따를 까봐 미리 선수 친것
당선 직후 그해 말에 만취해 주변 사람들에 말했듯 "총살을 당해도 말이야 계엄 한번 해보고 싶어"
일반적인 사람은 서울의 봄 같은 영화를 보면 저런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말기 바란다.
그러나 윤석열 같은 사람은 서울의 봄을 보며 카타르 시스를 온몸에 전율하며 느낀다.
명령을 부당한 명령이라 생각하고 무시한 지휘관들이 밝혔듯 가장 먼저 떠오른게 박정훈 대령의 항명죄 였다고 한다.
그래도 이들 지휘관들은 병력을 국회로 보내지 않고 대기만 하고 철수 시켜
윤석열과 김용현을 두려움에 떨게 하며 2차 계엄 시도를 막을수 있었다.
당시 윤석열과 김용현은 이들 병력들이 행방 불명 되어 지휘 체계가 이미 무너졌다고 느꼇을것 이라고 한다.
노상원 역시 윤석열을 만났고 김용현의 장자방 역활을 했다.
윤석열을 만난 이후 그의 수첩에 윤석열 3연임. 이후 통일 대통령 김건희에 양위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계엄이 성공했다면 대한민국이 공산당 시진핑 보다 더 심한 국가가 되었을것 이라 생각 하겠지만
그 당시 주한 미군 병력들은 대한민국 국회를 출동하기 직전 이었고 계엄군 사살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계엄군은 졸지에 반란군이 되었지만 너희는 사실상 주한 미군도 인정한 빨갱이 새끼들이 맞다. 미군 총탄에 죽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가
또한 두번째 국민들은 광주때 처럼 총을 든다.
경기도나 수도권 사람들이 전라도 보다 약할거라 생각 하나
쳐맞고 있지는 않는다. 나역시 계엄 성공하면 윤석열 지지하는 시민들 무차별 학살을 생각하고 있었다. 벌레 새끼들 손에 피 안묻히고 생각으로 끝난게 다행이다.
<iframe frameborder="0" src="//www.youtube.com/embed/Wa55jqDbAhk" width="640" height="360" class="note-video-clip"></ifr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