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U-MANがそのように証言した
アメリカの 6・25戦争参戦を決めて行ったアメリカの第33代大統領海里 S. トルーマン(1884‾1972)の外孫クルリブトントルーマンデニオル(68) さんは 25日(現地時間) ノグン里国際平和財団主催でワシントン DC隣近一ホテルで開かれたグローバル平和フォーラムで “お爺さんは韓国を助けに行くのにためらわなかった”と明らかにした.
デニオルシは自分が最近聞いた話としながらトルーマン当時大統領(1945〜1953年在任)が “1950年 6月24日(アメリカ時間) インディペンデンス(アメリカミズーリ州)の自宅で北朝鮮の南侵消息を電話で聞いた後 (参戦を決めるまで) 10秒もまだかからなかったと言う”と伝えた.
当時アメリカは極東方衛線で韓半島を除いた. このためにトルモンは北朝鮮の南侵に決まった影響を与えたと批判を受けて来た.
デニオルさんは “お爺さんは後で言うのを ‘武装した (特定社会内部の) 少数集団の支配試みや外部圧力に抵抗する自由人たちを支援するのがアメリカの政策に違いない’と言った”と言った.
彼はまた自分の母親から伝えて聞いた話としながらトルモンは朝鮮戦争勃発消息をディーンアチソン当時国務長官から電話で報告を受けた後北朝鮮の南侵が 3次世界大戦の到来を知らせることができるという点を憂慮したと紹介した.
それとともにデニオルさんは ‘3次大戦’ 勃発を阻むことができるようにアジアとヨーロッパで共産主義勢力に対立する ‘沮止線’を引くことがトルモンの目標だったと強調した.
それとともにデニオルさんは韓国が 6・25戦争の時犠牲された韓国とアメリカ, その外参戦国兵士らの犠牲を空しくしない歴史的使命があると強調した.
報道人と同時に作家に活動したデニオルさんは 1995年お爺さんに関する回顧録を発行するなどトルモンの業績を記念して来た.
TRU-MAN이 그렇게 증언했다
미국의 6·25전쟁 참전을 결정하고 실행한 미국의 제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1884~1972)의 외손자 클립튼 트루먼 대니얼(68) 씨는 25일(현지시간)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주최로 워싱턴 DC인근 한 호텔에서 열린 글로벌 평화포럼에서 “할아버지는 한국을 도우러 가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대니얼씨는 자신이 최근에 들은 이야기라면서 트루먼 당시 대통령(1945∼1953년 재임)이 “1950년 6월24일(미국 시간) 인디펜던스(미국 미주리주)의 자택에서 북한의 남침 소식을 전화로 들은 뒤 (참전을 결정하기까지) 10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당시 미국은 극동 방위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했다. 이 때문에 트루먼은 북한의 남침에 일정한 영향을 줬다고 비판을 받아왔다.
대니얼 씨는 “할아버지는 나중에 말하길 ‘무장한 (특정 사회 내부의) 소수집단의 지배 시도나 외부 압력에 저항하는 자유인들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임에 틀림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의 모친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라면서 트루먼은 한국전쟁 발발 소식을 딘 애치슨 당시 국무장관으로부터 전화로 보고받은 뒤 북한의 남침이 3차 세계대전의 도래를 알릴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대니얼 씨는 ‘3차대전’ 발발을 막을 수 있도록 아시아와 유럽에서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는 ‘저지선’을 긋는 것이 트루먼의 목표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니얼 씨는 한국이 6·25전쟁 때 희생된 한국과 미국, 그외 참전국 병사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않을 역사적 사명이 있다고 강조했다.
언론인이자 작가로 활동했던 대니얼 씨는 1995년 할아버지에 관한 회고록을 펴내는 등 트루먼의 업적을 기념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