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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大門刑務所の真実。


イザベラ・バード(Isabella Bird Bishop) “朝鮮紀行(Korea and Her Neighbours)”「第36章 1897年のソウル」

刑務所の改善に関しては多くの対策がなされてきたが、ソウルの監獄は、改革が行われていない清国や、その他のアジア諸国にくらべれば、非常に好ましい方向に差をつけている。拷問は少なくとも表向きには廃止されたし、切断された首や胴体をさらしたり、鞭打ちや身体のそぎ切りで死に至らしめるような拷問は、日本の支配を受ける時代から無くなった。ソウルの監獄を見学した日の午後、わたしは、以前訪れた時に、繁華街の雑踏のなかに三脚状に組んだ棒に吊した首が晒され、東大門の外の道端の血だまりの中に、首のない胴体が転がっているのを見たのが、わずか2年前だとは信じられない気持ちだった。(p.554)




英国人学者Alleyne Irelandの1926年ニューヨークで出版された著書 “The New Korea”
「第7章 警察と監獄」

[李朝時代の監獄の酷さは到底書き尽くせるものではなかった。衛生設備は無く、日本が監獄行政を引き継いだ時、囚人1人当たりの床面積は0.46㎡であったとのことだ。併合後は改善され、現在(1926年時点)では米国の監獄より格段に良いとさえいえる。]

[韓国の裁判所や監獄の野蛮な習慣は、田舎の地方では、まだ停止されないで残存している。私は監獄の状態に注意をそそいだ。それで二つの監獄を実際に訪れてみた。その最初のものは平壌で見た。そこでは18人の男と1人の女が1つの監房に閉じ込められているのを見た。その男達のうち数人は木の柱にくくりつけられていた。囚人たちはやせ衰えており、その身体は恐ろしい病気の明白な徴候を示していた。彼らの衣服は最低のものであり、その監房は筆舌に尽くし難いほど不潔で、何の身体運動や労働も無しに、数年間も監房に閉じ込められたままであった。]

[次の監獄は宣川(平安北道)のそれはもっと酷かった。その監房の中はとても暗くて、部屋に入ってからしばらくは何も見えないほどであったが、地上に平に縛りつけられている三人の男がそこにいた。彼らの首と足は台柱に括り付けられ、手は縛り合わされていた。(中略)彼らの背には笞打ちで裂かれた恐ろしい傷跡があり、その手は、きつく縛りつけた縄のため、ところどころ骨が見えるほどに肉が裂けていた。(後略)。一人の男の目は塞がっていて視力を失っており、瞼からは沢山の膿が垂れ出ていた。彼らは皆飢え衰えて、何かを嘆願したり抗議したりする気力を失っていた。私のこれまでに見たかぎりの、地獄への一歩手前であった。]

[獄中労働に就いては、李朝政府の時代には囚人を労働に着かることは殆どなかった。併合後には健常者の96%が、機織り・製紙・洋服の仕立て・藁作業・煉瓦製造・家具作り、農作業などに従事させた。]

[18歳未満者と特に必要と思われる人に対しては、教育を施し、専任教師および経験ある教師が、修身・国語(韓国語)・算数等について、小学校卒業程度の学科を授業し、学科に留まらず日常生活上必要な知識技術を授け国民道徳の理解と実践の徹底を期している。その効果は、文盲だった者が父兄に手紙を書いて不孝不梯を謝り、出獄後商取引を行って正業に就けるようになった。]

[朝鮮時代の警察とは実際のところ、法と秩序の公平な護衛官というより、一握りの特権階級のための腐りきった道具でしかなかった。]

[人々は長年に亘り匪賊(盗賊)にひどく苦しめられていたが、日本は出来るだけ朝鮮人憲兵隊を採用し、司令部の指揮下に置いた。1909年末には2369名の日本人憲兵、4392名の朝鮮人憲兵が499カ所の憲兵分遣地を担当して、匪賊(盗賊)を討伐し、朝鮮全土が安全に成った。]

朝鮮の残酷な監獄を、日本政府は日本国の資金を出資して改善し、英国人から『THE NEW KOREA』 で「アメリカの監獄よりも格段に良い」と記録されるまで改善しました。

李氏朝鮮時代の残酷な懲戒主義一辺倒の監獄行政から、併合後は囚人が出獄した後に社会復帰して安定した生活ができるような職業訓練や教育を主体とする監獄行政に変化しました。



金九の『白凡日誌』に西大門刑務所に対する彼の体験談が有りますので参考までに引用します。

「西大門刑務所は「寝転がって餅を喰う(楽で簡単だと言うことを表現する時によく使われる韓国のことわざ)ように楽だ」と表現している。




「慟哭のポプラ」も嘘だったw


「刑場に連れて行かれる独立闘士たちが抱き合って号泣した」という西大門刑務所歴史館の死刑場の隣の「통곡의 미루나무(慟哭のポプラ)」は解放以後に植えた木である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 多くのメディアと書籍はもちろん、歴代政府ではこの木を独立闘士の象徴として教育してきた。 ところが本紙確認の結果、1945年の解放直後はもちろん植民時代に撮影した写真にもこのポプラは存在しなかった。「独立闘士の恨みがこもった木」という今までの主張は捏造・歪曲・嘘であることが明らかになったのだ。 歴史館側はこの木を「死刑場を建てた当時に植えたという話で、死刑場に連れて行かれる死刑囚たちが無念の気持ちでこの木をつかんで号泣したとして『号泣のポプラ』と伝えられている」と紹介してきた。 2020年、この木が台風に倒れると歴史館側はポプラを倒れた場所に置いたまま保存可否を議論してきた。 多くの市民団体は「独立精神の象徴」とし、ポプラの保存を持続的に要求してきた。 3·1節を迎え、ソウル市でも独自の仮想空間であるソウル市メタバースにこの「慟哭の木」を復活させた。

国史編纂委員会の電子史料館を確認した結果、1945年9月8日に米海軍航空機が撮影した「空中から見た仁川全景(7)」という文書名(文書番号:IM0000137829)で、死刑場区域を拡大した結果、「慟哭のポプラ」が立っていた死刑場の塀の角にはどんな構造物や木も無い。

朝鮮総督府官報によると、その1922年から1945年まで、この死刑場で刑が執行された人は計195人だった。 このうち、大韓民国国家報勲処によって独立有功者として叙勲された人は18人だけで、残りは単なる凶悪犯だという。



韓国の教科書は嘘と捏造ばかりだっw
この記事から2年近く経ってるが教科書は修正されたのだろうか?



한국의 고문 문화를 일본의 학생 날조

서대문 형무소의 진실.


이자베라·버드(Isabella Bird Bishop) "조선 기행(Korea and Her Neighbours)"「 제36장 1897년의 서울」

형무소의 개선에 관해서는 많은 대책이 되어 왔지만, 서울의 감옥은, 개혁을 하지 않은 청나라나, 그 외의 아시아제국에 비교하면, 매우 바람직할 방향으로 차이를 내고 있다.고문은 적어도 공식상에는 폐지되었고, 절단 된 목이나 동체를 쬐거나 채찍 치는 것이나 신체의 깎아 절로 죽어 이르게 하는 고문은, 일본의 지배를 받는 시대로부터 않게 되었다.서울의 감옥을 견학한 날의 오후, 나는, 이전 방문했을 때에, 번화가의 혼잡 속에 삼각장에 짠 봉에 매단 목이 노출되어 동대문의 밖의 길가의 피안에, 목이 없는 동체가 널려 있는 것을 본 것이, 불과 2년전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p.554)




영국인 학자 Alleyne Ireland의 1926년 뉴욕에서 출판된 저서 "The New Korea"
「 제7장 경찰과 감옥」

[이조 시대의 감옥의 가혹함은 도저히 다 쓰는 것 는 아니었다.위생설비는 없고, 일본이 감옥 행정을 계승했을 때, 죄수 1 인당의 바닥 면적은 0.46에서 만났다는 것이다.병합 후는 개선되어 현재(1926년 시점)로는 미국의 감옥보다 현격히 좋으면마저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재판소나 감옥의 야만스러운 습관은, 시골의 지방에서는, 아직 정지되지 말고 잔존하고 있다.나는 감옥 상태에 주의를 씻었다.그래서 두 개의 감옥을 실제로 방문해 보았다.그 최초의 것은 평양에서 보았다.그곳에서는 18명의 남자와 1명의 여자가 1개의 감방에 갇히고 있는 것을 보았다.그 남들 중 몇사람은 나무의 기둥에 묶어 붙여져 있었다.죄수들은 쇠약해지고 있어 그 신체는 무서운 병의 명백한 징후를 나타내고 있었다.그들의 의복은 최저의 것이며, 그 감방은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만큼 불결하고, 무슨 신체 운동이나 노동도 없이 , 몇 년간도 감방에 갇힌 채로 있었다.]

[다음의 감옥은 선천(평안 북도)의 그것은 더 심했다.그 감방가운데는 매우 어두워서, 방에 들어가고 나서 당분간은 아무것도 안보이는 만큼에서 만났지만, 지상에 평에 묶어 붙여져 있는 세 명의 남자가 거기에 있었다.그들의 목과 다리는 대주에 괄붙일 수 있고 손은 묶어 합쳐지고 있었다.(중략) 그들의 키에는 매치는 것으로 찢어진 무서운 상처 자국이 있어, 그 손은, 힘들게 묶어 붙인 줄 때문에, 군데군데뼈가 보일 정도로 고기가 찢어져?`「.(후략).한 명의 남자의 눈은 차고 있고 시력을 잃고 있어 검에서는 많은 고름이 늘어져 나와 있었다.그들은 모두 굶어 쇠약해지고, 무엇인가를 탄원 하거나 항의하거나 하는 기력을 잃고 있었다.나의 지금까지 보았는지 의리의, 지옥에의 일보직전이었다.]

[옥중 노동에 종사해서는, 이조 정부의 시대에는 죄수를 노동에 벌(일)것은 대부분 없었다.병합 후에는 정상인의 96%가, 베 짜기·제지·양복의 완성·짚작업·벽돌 제조·가구 만들어, 농사일 등에 종사시켰다.]

[18세 미만자와 특히 필요라고 생각되는 사람에 대해서는, 교육을 베풀어, 전임 교사 및 경험 있다 교사가, 수신·국어(한국어)·산수등에 대해서, 초등학교 졸업 정도의 학과를 수업해, 학과에 머물지 않고 일상생활상 필요한 지식 기술을 하사해 국민 도덕의 이해와 실천의 철저를 기하고 있다.그 효과는, 문맹이었던 사람이 부형에게 편지를 써 불효불제를 사과해, 출옥 후 상거래를 실시하고 정업에 앉히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경찰이란 실제의 곳, 법과 질서의 공평한 호위관이라고 하는 것보다, 한 줌의 특권계급을 위한 다 썩은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에 긍비적(도적)에게 몹시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지만, 일본은 가능한 한 한국인 헌병대를 채용해, 사여`˚부의 지휘하에 두었다.1909년말에는 2369명의 일본인 헌병, 4392명의 한국인 헌병이 499개소의 헌병분견지를 담당하고, 비적(도적)을 토벌 해, 조선 전 국토가 안전하게 완성되었다.]

조선의 잔혹한 감옥을, 일본 정부는 일본의 자금을 출자해 개선해, 영국인으로부터 「THE NEW KOREA」로 「미국의 감옥보다 현격히 좋다」라고 기록될 때까지 개선했습니다.

이씨 조선 시대의 잔혹한 징계 주의 일변도의 감옥 행정으로부터, 병합 후는 죄수가 출옥한 후에 사회복귀 해서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직업 훈련이나 교육을 주체로 하는 감옥 행정에 변화했습니다.



김구의 「백범일지」에 서대문 형무소에 대한 그의 체험담이 있기 때문에 참고까지 인용합니다.

「서대문 형무소는 「뒹굴어 떡을 식(편하고 간단하다고 말하는 것을 표현할 때에 잘 사용되는 한국원 자리) 같게 편하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통곡의 포플러」도 거짓말이었던 w


「형장에 데리고 가지는 독립 투사들이 얼싸안아 통곡 했다」라고 하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의 사형장의 근처의 「 (통곡의 포플러)」는 해방 이후에 심은 나무인 것이 밝혀졌다. 많은 미디어와 서적은 물론, 역대 정부에서는 이 나무를 독립 투사의 상징으로서 교육해 왔다. 그런데 본지 확인의 결과, 1945년의 해방 직후는 물론 식민 시대에 촬영한 사진에도 이 포플러는 존재하지 않았다.「독립 투사의 원한이 가득찬 나무」라고 하는 지금까지의 주장은 날조·왜곡·거짓말인 것이 밝혀졌던 것이다. 역사관측은 이 나무를 「사형장을 세운 당시에 심었다고 하는 이야기로, 사형장에 데리고 가지는 사형수들이 무념의 기분으로 이 나무를 잡아 통곡 했다고 해서 「통곡의 포플러」라고 전하고 있다」라고 소개해 왔다. 2020년, 이 나무가 태풍에 넘어지면 역사관측은 포플러를 넘어진 장소에 둔 채로 보존 가부를 논의해 왔다. 많은 시민 단체는 「독립 정신의 상징」이라고 해, 포플러의 보존을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3ܧ마디를 맞이해 서울시에서도 독자적인 가상 공간인 서울시 메타바스에 이 「통곡의 나무」를 부활시켰다.

국사 편찬 위원회의 전자 사료관을 확인한 결과, 1945년 9월 8일에 미 해군 항공기가 촬영한 「공중에서 본 인천 전경(7)」이라고 하는 문서명(문서 번호:IM0000137829)으로, 사형장 구역을 확대한 결과, 「통곡의 포플러」가 서있던 사형장의 담의 모퉁이에는 어떤 구조물이나 나무도 없다.

조선 총독부 관보에 의하면, 그 1922년부터 1945년까지, 이 사형장에서 형이 집행된 사람은 합계 195명이었다. 이 중, 대한민국 국가보훈처에 의해서 독립 유공자로서 훈장수여 된 사람은 18명만으로, 나머지는 단순한 흉악범이라고 한다.



한국의 교과서는 거짓말과 날조 뿐이다 w
이 기사로부터 2년 가깝게 지나고 있지만 교과서는 수정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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