奈良市の平城宮跡歴史公園で大極門東隣に復元工事が進められていた東楼(ひがしろう)が完成し、楼を覆っている素屋根が24日、西に42メートルスライドされた。朱で鮮やかに彩られた楼が雄姿を現した。この後、大極門の反対側に同型の西楼が建てられ、門と東西の楼を貫いて大極殿を囲うように回廊が建てられると第1次大極殿院が完成する。
素屋根がスライドする様子は一般公開された。高さ30メートル、重さ665トンの素屋根は18基のジャッキで5センチ持ち上げられ、滑り材をかませて6基のジャッキを使って少しずつ西方向にスライドさせた。素屋根は2022年に完成した大極門の建築時に使われたもので、この後、西楼の建築でも再利用する。
東楼は東西22・9メートル、南北11・5メートル、基壇を含む高さ18・6メートルの2階建て。屋根には3万6000枚の瓦が使われ、金色の鴟尾(しび)が輝く。大極殿院創建期(708~715年)にはなく、730年前後に回廊の一部を解体して増築された。続日本紀(しょくにほんぎ)には聖武天皇が正月、群臣に宴(うたげ)を催したという記述がある。
2階の床を支える内部の細い柱8本は礎石建ちの柱、2階まで貫く太い外側の16本は掘立柱という構造で、現存する類例はない。柱やはりの大きな木材は、主に奈良、和歌山、三重にまたがる紀伊山地の樹齢200~300年のヒノキが用いられた。国が約60億円を投じて復元した。
発掘調査で柱の位置は分かっていたが、意匠や構造は分からず、出土した瓦や奈良時代の建築、文献などを頼りに復元した。建築基準法の基準を満たすため奈良時代にはなかった鉄骨フレームを取り付け、木材加工、石工、左官、塗装は伝統技法によった。
復元案策定に携わった奈良文化財研究所の西田紀子上席研究員(建築史)は「素屋根が動かされ、空の下で生き生きと見えた。平城宮跡に新たな景色が生まれた。復元では外側と内側の柱の建て方が異なることをどう解釈するかが難しかった」と話した。


나라시의 히라죠오궁적역사 공원에서 대극문동 근처에 복원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동루(히가 알자) 가 완성되어, 누각을 가리고 있는 소지붕이 24일, 서쪽으로 42미터 슬라이드되었다.주홍으로 선명하게 물들여진 누각이 웅자를 나타냈다.이 후, 대극문의 반대 측에 동형의 서누각이 지어져 문과 동서의 누각을 관철하고 대극전 (헤이안 시대의 정전)을 둘러싸도록(듯이) 회랑이 지어지면 제1차 대극전 (헤이안 시대의 정전)원이 완성한다.
소지붕이 슬라이드하는 님 아이는 일반 공개되었다.높이 30미터, 무게 665톤의 소지붕은 18기의 잭으로 5센치 들어 올릴 수 있어 미끄러짐재를 물릴 수 있어 6기의 잭을 사용해 조금씩 서방향에 슬라이드시켰다.소지붕은 2022년에 완성한 대극문의 건축시에 사용된 것으로, 이 후, 서누각의 건축에서도 재이용한다.
2층의 마루를 지탱하는 내부가 가는 기둥 8개는 초석건치노기둥, 2층까지 관철하는 굵은 외측의 16개는 굴립주라고 하는 구조로, 현존 하는 유례는 없다.기둥 역시의 큰 목재는, 주로 나라, 와카야마, 미에에 걸치는 키이산치의 수령 200300년의 사이프러스가 이용되었다.나라가 약 60억엔을 투자해 복원했다.
발굴 조사에서 기둥의 위치는 알고 있었지만, 생각이나 구조는 알지 못하고, 출토한 기와나 나라시대의 건축, 문헌등을 의지하여 복원했다.건축 기준법의 기준을 만족 시키기 위해 나라시대에는 없었던 철골 프레임을 달아 목재 가공, 석공, 미장이, 도장은 전통 기법에 따랐다.
복원안 책정에 종사한 나라 문화재 연구소의 니시다 노리코 상석 연구원(건축사)은 「소지붕이 작동되어 하늘아래에서 생생하게 보였다.히라죠오궁적에 새로운 경치가 태어났다.복원에서는 외측과 안쪽의 기둥의 결정 방법이 다른 것을 어떻게 해석할지가 어려웠다」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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