ノーベル賞
30個の日本と2個の韓国
格差の原因は?

大阪大学の坂口志文特任教授が本年度のノーベル生理学医学賞を受賞した。
このニュースに韓国のメディアはこぞって「日本 30個目のノーベル賞を受賞 2年連続」(朝鮮Bⅰz)「ノーベル生理・医学賞 日本坂口受賞・・・『30回目のノーベル賞』」(アジア経済)「日本 30回目のノーベル賞受賞に歓呼」(ハンギョレ新聞)と伝えていた。
坂口教授の受賞理由についてもノーベル委員会の発表及び日本の報道をベースに詳細に伝えていた。
経済紙「ソウル経済」だけが「『免疫ブレーキ』を明かした日本科学者のノーベル賞受賞・・・韓国医者らの評価は?」との見出しを掲げ、「多様な疾患を治療できる道が開かれた」とするこの分野の大学病院教授らの称賛の声を紹介していた。
また、韓国のメディアは一様に「日本のノーベル賞は昨年日本被団協が獲得した平和賞を含めると30個。日本人としては米国籍者を含めると29人目になる」と伝え、「化学8、物理学12、生理・医学6、文学2、平和賞が2」とその内訳について触れるのも忘れなかった。総じて畏敬と嫉妬が交差した書き方だった。
ノーベル賞受賞数では日本は米国、英国、ドイツ、フランスに続いて世界第5位にランクされている。
大国と言われているロシアは旧ソ連時代を含めて日本の半分程度である。世界第2位の経済大国にのし上がった中国はと言えば、中国国籍を有している人を含めて生理学医学と文学、それに平和賞の3個である。
また経済力では日本に迫りつつある韓国は金大中(キム・デジュン)元大統領が2000年に南北首脳会談を初めて実現させたことで受賞した平和賞と昨年の韓江(ハン・ガン)作家の文学賞を含めまだ2個である。化学、物理など学術分野ではゼロである。
韓国も日本に負けじと、ノーベル賞の獲得に執念を燃やしているが、思うようにいかないようだ。
その理由について2021年9月に韓国科学技術院のキム・ウォンジュン教授は「ノーベル賞関連の科学技術インフラが脆弱であることに原因がある」と分析していた。
具体的に▲若い学者が自由に研究できる環境が整っていないこと▲失敗を意に介さず忍耐強く研究するファンディング制度が不十分であること▲誰もトライしようとしない研究分野への投資や基礎科学への十分な投資が担保されていないことなどを指摘していた。要は、若い研究者や学者が生活費などを心配せずに研究に没頭できるような環境にないのが問題のようだ。
果たして原因はそれだけだろうか?
今朝、テレビを見ていたら、坂口教授の座右の銘が「一つ一つ」であることを知った。研究を40年間、頑固一筋にやり遂げていたとのことだ。
「一つ一つ」はある意味では「コツコツ」という意味にも解釈できる。韓国はこの「一つ一つ」の積み重ねが苦手で、何をするのにも「ハンコボネ」(いっぺんで)あるいは「タンボネ)(一挙に)でないと気が済まない気質である。
今から12年前に拙著「世界が一目置く日本人、残念な日本人」(三笠書房)を出版するため似て非なる日韓の文化や国民性を取材していた時、ソウルで日本料理屋を開業していた知人から「約15年滞在中に60人以上の韓国人を採用した」との話しを聞かされたのを思い出した。
日本では「足掛け何年」という言葉があり、職人の場合、少なくとも10年以上経験を積んでようやく一人前という職が数多い。ところが、この知人曰く、「一人前の板前に育てようとしたが、一人として長続きしなかった。1年間耐えたのは60人のうち2~3しかいなかった」そうだ。
「初めは仕入れで日本に行く時、勉強になると思って日本に連れて行ったりしたが、日本に研修に行って、少し修行すると、一人前になったつもりで店を出してしまう」と。
韓国人は国民気質が「パルリパルリ」(早く、早く)なので何事も早く結果を出さないと気が済まないのかもしれない。
発明、開発には地道な研究が必須だ。簡単な話、強靭な忍耐力を必要とする。ということは、総じて日本人は韓国人に比べて我慢強いのかもしれない。今から42年前、日本で「おしん」というテレビドラマが一世を風靡したことがあった。
貧しさから奉公に出された少女がいじめ、姑との確執、戦争など度重なる不運に見舞われながら成長していく物語で、最高視聴率62.9%、平均視聴率52.6%をたたき出した桁外れの「お化け番組」だった。筆者も含め視聴者は幾多の苦難にもめげず、問題を乗り越えていく「おしん」の我慢強さ、前向きな姿勢に胸を打たれた。
日本では「行列のできる店」がしばしば放映されるが、日本人は美味しい店、評判の店と聞くと、長蛇の列をなしてでも辛抱強く順番を待つ。韓国人はいくら美味しくても、並んでまで食べたいと思う人は日本ほどそう多くない。
韓国では今日にも、日本のノーベル賞受賞について社説やコラムで取り上げるメディアも出てくるであろう。この日韓の格差をどのように受け止めているのか、興味津々だ。
朝鮮日報
長文だけど要は、中国人、朝鮮人には努力や忍耐がたりないと言う事のようだ。w
노벨상
30개의 일본과 2개의 한국
격차의 원인은?

오사카 대학의 사카구치 시부미특임교수가 금년도의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수상했다.
이 뉴스에 한국의 미디어는 빠짐없이 「일본 30개째의 노벨상을 수상 2년 연속」(조선 Bz) 「노벨 생리·의학상 니혼자카구 수상···「30번째의 노벨상」」(아시아 경제) 「일본 30번째의 노벨상 수상에 환호」(한겨레)이라고 전하고 있었다.
사카구치 교수의 수상 이유에 대해서도 노벨 위원회의 발표 및 일본의 보도를 베이스로 상세하게 전하고 있었다.
경제지 「서울 경제」만이 「 「면역 브레이크」를 밝힌 일본 과학자의 노벨상 수상···한국 의사외의 평가는?」라는 표제를 내걸어 「다양한 질환을 치료 생기는 길이 열렸다」라고 하는 이 분야의 대학병원 교수들의 칭찬의 소리를 소개하고 있었다.
노벨상 수상수에서는 일본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에 이어 세계 제 5위에 랭크 되고 있다.
또 경제력으로는 일본에 강요하면서 있다 한국은 김대중(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에 남북 정상회담을 처음으로 실현시킨 것으로 수상한 평화상과 작년의 한강(한·암) 작가의 문학상을 포함해 아직 2개이다.화학, 물리 등 학술 분야에서는 제로이다.
한국도 일본에 패배글자와 노벨상의 획득에 집념을 태우고 있지만, 생각하는 것처럼 가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에 대해 2021년 9월에 한국과학기술원의 김·원 쥰 교수는 「노벨상 관련의 과학기술 인프라가 취약한 것으로 원인이 있다」라고 분석하고 있었다.
구체적으로▲젊은 학자를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실패를 뜻에 개좌도 인내 강하게 연구하는 펀딩 제도가 불충분한 것▲아무도 트라이 하려고 하지 않는 연구 분야에의 투자나 기초과학에의 충분한 투자가 담보되어 있지 않은 것등을 지적하고 있었다.요점은, 젊은 연구자나 학자가 생활비등을 걱정하지 않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에 없는 것이 문제같다.
과연 원인은 그 만큼일까?
오늘 아침, 텔레비전을 보고 있으면, 사카구치 교수의 좌우명이 「하나하나」인 것을 알았다.연구를 40년간, 완고 외곬에게 완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하나」는 어떤 의미로는 「부지런히」라고 하는 의미에도 해석할 수 있다.한국은 이 「하나하나」의 축적에 약하고, 무엇을 하는데도 「한코보네」(한번으로) 있다 있어는 「탄보네)(한꺼번에)가 아니면 기분이 내키지 않는 기질이다.
지금부터 12년전에 졸저 「세계가 경의를 표하는 일본인, 유감인 일본인」(미카사 서점)을 출판하기 위해(때문에) 비슷하면서도 다른 일한의 문화나 국민성을 취재하고 있었을 때, 서울에서 일본 요리가게를 개업하고 있던 지인으로부터 「 약 15년 체제중에 60명 이상의 한국인을 채용했다」라고의 이야기를 들은 것을 생각해 냈다.
일본에서는 「다리걸기 몇 년」이라고 하는 말이 있어, 직공의 경우, 적어도 10년 이상 경험을 쌓아 간신히 한 사람 분이라고 하는 일자리가 많다.그런데 , 이 지인 가라사대, 「한 사람 분의 요리사에 기르려고 했지만, 한 명으로서 지속되지 않았다.1년간 참은 것은 60명중 23 밖에 없었다」 한다.
「처음은 매입으로 일본에 갈 때, 공부가 된다고 생각하고 일본에 데려서 가거나 했지만, 일본에 연수하러 가서, 조금 수행하면, 제 몫을 하게 된 생각으로 가게를 내 버린다」라고.
한국인은 국민 기질이 「파르리파르리」(빨리, 빨리)이므로 무슨 일도 빨리 결과를 내지 않으면 기분이 내키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발명, 개발에는 충실한 연구가 필수다.간단한 이야기, 강인한 인내력을 필요로 한다.그 말은, 대체로 일본인은 한국인에 비해 참을성이 많은 것인지도 모른다.지금부터 42년전, 일본에서 「벙어리응」이라고 하는 텔레비전 드라마가 일세를 풍미 했던 적이 있었다.
궁핍함으로부터 봉공에 나온 소녀 외국 글자째, 시어머니와의 확집, 전쟁등 거듭되는 불운하게 휩쓸리면서 성장해 가는 이야기로, 최고 시청률 62.9%, 평균 시청률 52.6%를 쫓아버린 월등함의 「도깨비 프로그램」이었다.필자도 포함 시청자는 무수한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문제를 넘어 가는 「벙어리응」의 참을성이 많음, 적극적인 자세에 가슴을 두드려졌다.
일본에서는 「행렬을 할 수 있는 가게」가 자주 방영되지만, 일본인은 맛있는 가게, 평판의 가게라고 (들)물으면, 장사의 열을 이루어서라도 참을성이 많게 차례를 기다린다.한국인은 아무리 맛있어도, 줄서서까지 먹고 싶은 사람은 일본만큼 그렇게 많지 않다.
한국에서는 오늘에도, 일본의 노벨상 수상에 대해 사설이나 칼럼에서 다루는 미디어도 나올 것이다.이 일한의 격차를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지, 흥미 진진하다.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