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歴史の流れ要約
1. 原人の到来と孤立 (旧石器時代)
**ホモサピエンス(知恵さん)**はアフリカで始めてユーラシア大陸を経って韓半島まで移動しました.
当時海水面が低くて韓半島と日本列島が陸地で繋がれていたし, これらは歩いて日本に渡って定着しました.
以後気温が上昇して氷河がとけながら海水面が高くなって日本は大陸と断絶されたし, これらは島に孤立したまま独自の進化を模索しました.
2. 繩文時代 (新石器時代)
日本列島に定着した人々は豊かな 海産物を楽しんで狩り生活をしました. 初期には階級とけんかがない平等な共同体でした.
お腹を発明してもっと広い海に進んで漁業と鯨狩りができるようになりました.
韓半島に渡った人々は 櫛形土器のような先進文物を接したし, 以後独自に **綱柄土器(繩文土器)**を作って 繩文時代を開きました.
主食はどんぐり加工式だったし, 不確実な食糧需給のため 自然崇拜 思想が発達しました.
3. 彌生時代と階級の発生
B.C. 200年頃, 韓半島から渡って来た移住民である **到来である(渡来人)**によって 稲作と発展した 彌生土器が九州北部地方を中心に伝えました.
稲作は一人でできなかったし, 效率的な耕作と水管理のために 協業が必要になりました.
農業を寝る知り合いが リーダーになって共同体を導きながら, 獲物を公平に分けた方式から脱してリーダーがもっと多い分け前を持って行って 余剰生産物が生じたし, おこる 階級社会の手始めになりました.
到来人は農業生産性を飛躍的に高さは 鉄器農機具を日本に紹介しました.
4. 戦争と大和政権の台頭
豊かになると共同体簡儀 欲心と 戦争が発生しました. 農機具だった鉄器が 武器に変わって人を害し始めました.
戦争の勝者は支配層になってぶんなぐろうという被支配層になりながら階級が確固になったし, 防御のために村に 木柵と望桜が建てられました.
全国的に起った戦争を経ってリーダーたちは力を合わせ 城邑国家を作って, これらが連合して 大和政権のような力強い勢力で発展しました.
5. 百済との交流と倭寇の誕生
大和政権は軍事力強化のために 物心が切実だったが, 日本では物心を生産する能力がなくて韓半島に寄り掛かりました.
当時韓半島の高句麗, 新羅, 伽揶は物心販売を断ったが, 百済は高句麗と新羅を牽制するために物心を提供する対価で軍事的支援を要請しました. この関係の中で **打つかも(七支刀)**が伝わったりしました.
新羅が三国を統一すると百済を中心に幾多の韓半島流民が日本に渡ったし, これらが 物心生産技術を日本に伝授してくれました.
鉄衣自給自足が可能になると日本の軍事力は急成長したし, この力で韓半島を 掠奪と盗みする **倭寇(倭寇)**が登場しました.
特に 14世紀頃, 日本の内乱と食糧不足でよって, 軍事力が弱くなった高麗を掠奪して食糧を確保しようとする動きが極甚になりながら倭寇の活動が絶頂に達し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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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의 흐름 요약
1. 원시인의 도래와 고립 (구석기 시대)
**호모 사피엔스(슬기 씨)**는 아프리카에서 시작해 유라시아 대륙을 거쳐 한반도까지 이동했습니다.
당시 해수면이 낮아 한반도와 일본 열도가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고, 이들은 걸어서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했습니다.
이후 기온이 상승하고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높아져 일본은 대륙과 단절되었고, 이들은 섬에 고립된 채 독자적인 진화를 모색했습니다.
2. 조몬 시대 (신석기 시대)
일본 열도에 정착한 사람들은 풍부한 해산물을 즐기며 사냥 생활을 했습니다. 초기에는 계급과 싸움이 없는 평등한 공동체였습니다.
배를 발명하여 더 넓은 바다로 나아가 어업과 고래 사냥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반도로 건너간 이들은 빗살무늬 토기와 같은 선진 문물을 접했고, 이후 독자적으로 **밧줄무늬 토기(조몬 토기)**를 만들어 조몬 시대를 열었습니다.
주식은 도토리 가공식이었으며, 불확실한 식량 수급 때문에 자연 숭배 사상이 발달했습니다.
3. 야요이 시대와 계급의 발생
기원전 200년경, 한반도에서 건너온 이주민인 **도래인(渡來人)**에 의해 벼농사와 발전된 야요이 토기가 규슈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전파되었습니다.
벼농사는 혼자 할 수 없었고, 효율적인 경작과 물 관리를 위해 협업이 필요해졌습니다.
농사를 잘 아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 공동체를 이끌면서, 수확물을 공평하게 나누던 방식에서 벗어나 리더가 더 많은 몫을 가져가며 잉여 생산물이 생겼고, 이는 계급 사회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도래인은 농업 생산성을 비약적으로 높인 철기 농기구를 일본에 소개했습니다.
4. 전쟁과 야마토 정권의 대두
풍요로워지자 공동체 간의 욕심과 전쟁이 발생했습니다. 농기구였던 철기가 무기로 바뀌어 사람을 해치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의 승자는 지배층이 되고 패자는 피지배층이 되면서 계급이 확고해졌고, 방어를 위해 마을에 목책과 망루가 세워졌습니다.
전국적으로 벌어진 전쟁을 거치며 리더들은 힘을 합쳐 성읍 국가를 만들고, 이들이 연합하여 야마토 정권과 같은 강력한 세력으로 발전했습니다.
5. 백제와의 교류와 일본인의 탄생
야마토 정권은 군사력 강화를 위해 철이 절실했지만, 일본에서는 철을 생산할 능력이 없어 한반도에 의존했습니다.
당시 한반도의 고구려, 신라, 가야는 철 판매를 거절했으나, 백제는 고구려와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철을 제공하는 대가로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이 관계 속에서 **칠지도(七支刀)**가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백제를 중심으로 수많은 한반도 유민이 일본으로 건너갔고, 이들이 철 생산 기술을 일본에 전수해주었습니다.
철의 자급자족이 가능해지자 일본의 군사력은 급성장했고, 이 힘으로 한반도를 약탈하고 노략질하는 **일본인(倭寇)**가 등장했습니다.
특히 14세기경, 일본의 내란과 식량 부족으로 인해, 군사력이 약해진 고려를 약탈하여 식량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극심해지면서 일본인의 활동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