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 死の美学で一般化して
韓国人は内部的に日本を同一視...
直接経験して見た人は違うが..
韓国は根深い儒教的文化で臣下を女性と同一視..w
韓国教育機関で学習されていることはそういうものだ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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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の中で一番美しい死はどんな死だろう? 美しいという話は二つの意味を持っている. 一つは死の形式と係わる様式的美学で, 他の一つは死の内容と係わる錫牲的提議(祭儀)だ.
世の中で一番美しい様式的死はクレオパトラの死ではないか. 彼女は当代傑出した英雄であるシージャとアントニウスを誘惑して手に入れた. しかし三番目男オクタビアヌスを誘惑するのに失敗して彼の攻撃を受けてたまらなさの道に行く. クレオパトラが毒蛇にムルリョズックオッダは歴史的記録は画家たちに多くのお爺さんを与えた. 画家たちはコブラが裸になった女王のゾッがスムを聞く刺激的な場面を選択して描くのが慣習のようになった. 彼女はタナトスよりエロチシズムをもっとひしと漂う死の美学を完成した.
隣国日本の小説家三島由紀夫の死もそういう死の最高峰に上がるに値する. 彼は東京大学法大を出て ‘金閣寺’ ‘憂国’を使ってノーベル賞候補に上がった日本文学の巨匠だった. しかし彼は自衛隊中でアナクロニズム的な天皇制復活を要求して切腹をした. 伝統的さむらい方式で彼が刀でお腹を割って膓を取り出すと彼の腹心は日本島で彼の後首を打って落とした. 日本的美意識に土台した彼の小説のように彼の死も徹底的に日本的な美意識によるのだった.
私たちはこのような死が本当に美しい死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よく分かる. それは金種涯の市 ‘北打つ少年’に出る ‘内容ない美しさ’に過ぎない. 人類精神社に深く刻まれた美しい死は他人のために犠牲する死だ. 代表的なことがキリストの死だ. イスラエルを含めた古代近東では人がズックウルジェを犯せば幼い羊を捕って代わりに死ぬようにした. こんな伝統の中でキリストは贖いさんのようにズックウルジェを犯した人類の代わりをして十字架に死んだというのだ. キリストが人類の代わりをして死んだことが課長なら, 最小限彼は自分を裏切った 12弟子の代わりをしてたまらなかった. この 12弟子がキリストの代わりをして殉教して以後ローマの迫害の下に数百万名のクリスチャンたちがキリストの代わりをして殉教した. キリスト教はこんな死の贖いさんコードを理解しなくては成立されることができない宗教だ.
このような死の美学対極店にあることが他人の生命を奪う殺人の美学だ. 彼らの歪んだ美意識は人を残酷に殺す時美しいと思う. 殺人魔オワンツンは娘をおかゆよ鎖骨以下全身の肉を刀で殻を取り去って 280切れを出した. 死体が発見された時は実験室の人骨標本のように挫いてやつれているように現われた状態だったと言う. 柳永哲と強豪純度他人の生命を奪取する時快感を感じるそんな部類の殺人魔だ.
作家バックサングリュングの小説 ‘死の一研究’に出る主人公もサイコパスだ. 彼は構図の道を発って師匠に会う. しかし真理を覚ましてくれた師匠を殺して, 自分を助けてあげた二名医僧侶さえ殺す. 結局彼もチォッブルスングに殺人罪に処刑される. 死んで殺す単純な因果応報型の筋書でどんなに死に対する奥深い答を得ようか? バックサングリュングは以上の ‘五感も’ 以後韓国文段で一番難解な書き込みでうわさが立った作家だ.
私がこの難しい小説を読んで解読したコードはこのようだ. 私たちは真理をチァッヌンダブシで出て見るが結局迷夢(迷夢)に抜けてズックウルジェを犯して生きて行く存在だ. ところで必ずその対価で死という死刑宣告を受ける. 死が死刑宣告という認識は ‘生はまことに大事だから抱えこんで暮しなさい’と言う逆説的な真理を言ってくれる. まるで自殺しようとする人に死刑宣告や癌診断を下げれば生に対する未練がまた生ずることのように. この小説を一言で要約すれば ‘死よ, 私をいかしなさい!’だ.
処刑される直前主人公はせっかく整頓された文章で思惟する. ‘私はどんな理由で日差しだけ食べてからも土室距離(通り)は果肉がならなくて, 時に覆われてからこそ初めて清らかになる骨董品もならなくて私はどんな理由でこんなに死ぬようになったのか!’
そうだ. ‘時に覆われてからこそ初めて清らかになる骨董品’が罪深い私たち生の本姿ではないか? ところで日差し食べた土室距離(通り)は果肉のように時なしに清くて純粋なうちの学生たちがどうして相次いでたまらなくなければならないか. 彼らの秘宝を接して取り止めもなく死に関する壇上を書いて見た.
出処 : 記号日報(https://www.kihoilbo.co.kr)
일본 = 죽음의 미학으로 일반화 하고
한국인은 내부적으로 일본을 동일시...
직접 겪어본 사람은 다르지만..
한국은 뿌리 깊은 유교적 문화로 신하를 여성과 동일시..w
한국 교육 기관에서 학습되고 있는 것은 그런것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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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죽음은 어떤 죽음일까? 아름답다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죽음의 형식과 관련된 양식적 미학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의 내용과 관련된 희생적 제의(祭儀)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양식적 죽음은 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이 아닐까. 그녀는 당대 걸출한 영웅인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해 손에 넣었다. 하지만 세 번째 사내 옥타비아누스를 유혹하는 데 실패하고 그의 공격을 받아 죽음의 길로 간다. 클레오파트라가 독사에게 물려죽었다는 역사적 기록은 화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화가들은 코브라가 벌거벗은 여왕의 젖가슴을 무는 자극적인 장면을 선택해 그리는 것이 관습처럼 되었다. 그녀는 타나토스보다 에로티시즘을 더 강렬하게 풍기는 죽음의 미학을 완성했다.
이웃나라 일본의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도 그러한 죽음의 최고봉에 오를 만하다. 그는 도쿄대 법대를 나와 ‘금각사’ ‘우국’을 써서 노벨상 후보에 오른 일본문학의 거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위대 안에서 시대착오적인 천황제 부활을 요구하며 할복자살을 했다. 전통적 사무라이 방식으로 그가 칼로 배를 갈라 창자를 꺼내자 그의 심복은 닛뽄도로 그의 뒷목을 쳐 떨어뜨렸다. 일본적 미의식에 바탕한 그의 소설처럼 그의 죽음도 철저히 일본적인 미의식에 따른 것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죽음이 진정으로 아름다운 죽음이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그것은 김종삼의 시 ‘북 치는 소년’에 나오는 ‘내용 없는 아름다움’에 불과하다. 인류 정신사에 깊이 새겨진 아름다운 죽음은 남을 위해 희생하는 죽음이다. 대표적인 것이 예수의 죽음이다. 이스라엘을 비롯한 고대 근동에서는 사람이 죽을죄를 지으면 어린 양을 잡아 대신 죽게 했다. 이런 전통 속에서 예수는 속죄양처럼 죽을죄를 지은 인류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이다. 예수가 인류를 대신해 죽은 것이 과장이라면, 최소한 그는 자신을 배반한 12제자를 대신해 죽었다. 이 12제자가 예수를 대신해 순교하고 이후 로마의 박해 하에 수백만 명의 크리스천들이 예수를 대신해 순교했다. 기독교는 이런 죽음의 속죄양 코드를 이해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는 종교이다.
이러한 죽음의 미학 대극점에 있는 것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살인의 미학이다. 그들의 일그러진 미의식은 사람을 잔혹하게 죽일 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살인마 오원춘은 처녀를 죽여 쇄골 이하 몸 전체의 살을 칼로 발라내어 280조각을 내었다. 시신이 발견되었을 때는 실험실의 인골 표본처럼 뼈만 앙상하게 드러난 상태였다고 한다. 유영철과 강호순도 타인의 생명을 탈취할 때 쾌감을 느끼는 그런 부류의 살인마이다.
작가 박상륭의 소설 ‘죽음의 한 연구’에 나오는 주인공도 사이코 패스다. 그는 구도의 길을 떠나 스승을 만난다. 그러나 진리를 깨우쳐준 스승을 죽이고, 자신을 도와준 두 명의 승려마저 죽인다. 결국 그도 촛불승에게 살인죄로 처형당한다. 죽고 죽이는 단순한 인과응보형의 줄거리에서 어떻게 죽음에 대한 심오한 답을 얻을 것인가? 박상륭은 이상의 ‘오감도’ 이후 한국문단에서 가장 난해한 글쓰기로 소문난 작가이다.
내가 이 어려운 소설을 읽고 해독한 코드는 이렇다. 우리는 진리를 찾는답시고 나서보지만 결국 미몽(迷夢)에 빠져 죽을죄를 짓고 살아가는 존재이다. 그런데 반드시 그 대가로 죽음이라는 사형선고를 받는다. 죽음이 사형선고라는 인식은 ‘삶은 참으로 소중하니 껴안고 살아라’는 역설적인 진리를 말해준다. 마치 자살하려는 사람에게 사형선고나 암 진단을 내리면 삶에 대한 미련이 다시 생기는 것처럼. 이 소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죽음아, 날 살려라!’이다.
처형되기 직전 주인공은 모처럼 정돈된 문장으로 사유한다. ‘나는 어찌하여 햇볕만 먹고도 토실거리는 과육이 못 되고, 때에 덮여서야 비로소 맑아지는 골동품도 못 되고 나는 어찌하여 이렇게 죽게 되었는가!’
그렇다. ‘때에 덮여서야 비로소 맑아지는 골동품’이 죄 많은 우리 삶의 본 모습이 아닌가? 그런데 햇볕 먹은 토실거리는 과육처럼 때 없이 맑고 순수한 우리 학생들이 왜 잇따라 죽어야 하는가. 그들의 비보를 접하고 두서없이 죽음에 관한 단상을 적어 보았다.
출처 : 기호일보(https://www.kihoilb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