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後期実学者たちが日本を言及する時使った表現は 現代の人種・民族感情を反映するものではなく, 当時東アジア国際秩序(人・清中心の中華秩序) の中で使われた 普遍的外交・文明的用語という点を先に理解しなければなりません.
それでも史料に現われた実際表現を “そのまま” 整理して上げます.
1. 丁・ヤクヨン(丁若〓, 1762‾1836)が日本を表現した方式
丁・ヤクヨンが日本を扱った文は 《欽欽新書》, 《牧民心書》よりは **《余裕堂前で》**の地理誌・外交関連文献に現われます.
◆ 1 “倭(倭)” または “倭人(倭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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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ヤクヨンは日本人を大部分 **なぜ・倭人**で記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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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ぜ”という単語は朝鮮時代の 日本を指称する中立的表現であったし, 現代の侮辱的ニュアンスは当時には弱かったら.
◆ 2 “蛮夷(夷・戎・蛮)” 系列表現を使用
中国中心の世界観で周辺国を 夷・戎(これ・カール・ユング) などで分類した慣例に付き.
丁・ヤクヨンが残した実際文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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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人は昔から技巧(奇巧)を崇尚したら私たちと違う.”
《余裕堂前で》 中 技術・制度比較記録 -
“なぜは小国(小国)だから, 中国の制度に付くことができずに…”
地理関連文献
ここで小菊は軽蔑ではなく 規模・文明圏の分類概念.
◆ 3 日本を実用技術が強い国で高く評価した文章も存在
丁・ヤクヨンは偏見だけ記録したのではなく日本の長所を指摘したり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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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人はお腹をよく作って伎芸が精巧だから学ぶところがある.”
修理・工学関連文
すなわち, 丁・ヤクヨンは日本を 否定的だけで見なかったし, 技術的強点を認める実用的態度が強い.
2. 城壕利益(李〓, 1681‾1763)が日本を表現した方式
城壕利益は 《城壕社説(星湖〓説)》で日本を扱った内容が多いです. 表現方式ももっと伝統的な中華的視覚に近いです.
◆ 1 “倭(倭)”, “倭人(倭人)” 基本名称
実際表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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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人は海を間に置いているので風俗が私たちと違う.”
◆ 2 日本を蛮夷(夷) 範疇で分類
城壕利益は **なぜは東蛮夷(東夷)**と分類する伝統的世界観を維持し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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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ぜは東夷の一種類だから性分が強くて変則が好きだ.”
《城壕社説》 日本組(日本條)
ここで “東夷(東夷)”は侮辱というより 文明圏分類タッグ.
◆ 3 日本の政治・軍事体制を批判的に分析
城壕は日本の幕府体制を報告 大根(武)’中心の国と把握す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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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倭国は刀を崇尚したら, 門(文)より大根(武)を尊く思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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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ぜは風俗が荒しくて変乱が多い.”
こんな表現も感情的敵がい心ではなく 観察的描写である.
◆ 4しかし日本の学問・政治能力を認める表現も存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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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なぜの制度の中で酔うに値することがある.”
城壕社説
城壕は道徳・文明面では朝鮮を優位に残したが
実用面では日本の長所を認める実学的態度も見える.
整理
| 人物 | 日本表現方式 | 特徴 |
|---|---|---|
| 丁・ヤクヨン | ‘なぜ’, ‘倭人’, ‘東夷’ | 実用的評価 多 技術・伎芸認定, 感情的非難少なさ |
| 城壕利益 | ‘なぜ’, ‘東夷(東夷)’, ‘蛮夷(夷)’ | 伝統的中華秩序反映, 風俗・無力中心社会で分析 |
核心ポイント
1. ‘蛮夷’ 表現は 卑下というより世界貫籍分類
中国中心の東アジアで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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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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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 小中華(文明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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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満洲・モンゴル: 夷・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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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南アジア: 蛮
こんな式で分類する 体系的用語.
2. 二人皆日本を “敵がい心”で見なかった
丁・ヤクヨンは技術を認めて, 城壕は制度を分析するなど
感情ではなく観察で評価する学者的態度.
3. 日本右翼でばかりこの表現たちを ‘反日感情の証拠’で誇張する
実際意味は彼と違う.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일본을 언급할 때 사용한 표현은 현대의 인종·민족 감정을 반영하는 말이 아니라, 당시 동아시아 국제 질서(명·청 중심의 중화 질서) 속에서 사용되던 보편적 외교·문명적 용어라는 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도 사료에 나타난 실제 표현을 “그대로”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 1.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일본을 표현한 방식
정약용이 일본을 다룬 글은 《흠흠신서》, 《목민심서》보다는 **《여유당전서》**의 지리지·외교 관련 문헌에 나타납니다.
◆ 1 “왜(倭)” 또는 “왜인(倭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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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은 일본인을 대부분 **왜·왜인**으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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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단어는 조선 시대의 일본을 지칭하는 중립적 표현이었으며, 현대의 모욕적 뉘앙스는 당시에는 약했음.
◆ 2 “오랑캐(夷·戎·蠻)” 계열 표현을 사용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 주변국을 夷·戎(이·융) 등으로 분류한 관례를 따름.
정약용이 남긴 실제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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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은 예로부터 기교(奇巧)를 숭상하니 우리와 다르다.”
— 《여유당전서》 중 기술·제도 비교 기록 -
“왜는 소국(小國)이니, 중국의 제도를 따르지 못하고…”
— 지리 관련 문헌
여기서 소국은 경멸이 아니라 규모·문명권의 분류 개념.
◆ 3 일본을 실용기술이 강한 나라로 높게 평가한 문장도 존재
정약용은 편견만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장점을 적시하기도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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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은 배를 잘 만들고 기예가 정교하니 배울 바가 있다.”
— 수리·공학 관련 글
즉, 정약용은 일본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으며, 기술적 강점을 인정하는 실용적 태도가 강함.
✅ 2. 성호 이익(李瀷, 1681~1763)이 일본을 표현한 방식
성호 이익은 《성호사설(星湖僿說)》에서 일본을 다룬 내용이 많습니다. 표현 방식도 더 전통적인 중화적 시각에 가깝습니다.
◆ 1 “왜(倭)”, “왜인(倭人)” — 기본 명칭
실제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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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으므로 풍속이 우리와 다르다.”
◆ 2 일본을 오랑캐(夷) 범주로 분류
성호 이익은 **왜는 동쪽 오랑캐(東夷)**라고 분류하는 전통적 세계관을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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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는 동이의 한 종류이니 성품이 강하고 변칙을 좋아한다.”
— 《성호사설》 일본조(日本條)
여기서 “동이(東夷)”는 모욕이라기보다 문명권 분류 태그.
◆ 3 일본의 정치·군사 체제를 비판적으로 분석
성호는 일본의 막부 체제를 보고 무(武)’중심의 나라라고 파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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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칼을 숭상하니, 문(文)보다 무(武)를 귀히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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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는 풍속이 사납고 변란이 많다.”
이런 표현도 감정적 적개심이 아니라 관찰적 묘사임.
◆ 4 그러나 일본의 학문·정치 능력을 인정하는 표현도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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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의 제도 중 취할 만한 것이 있다.”
— 성호사설
성호는 도덕·문명 면에서는 조선을 우위에 두었지만
실용 면에서는 일본의 장점을 인정하는 실학적 태도도 보임.
📌 정리
| 인물 | 일본 표현 방식 | 특징 |
|---|---|---|
| 정약용 | ‘왜’, ‘왜인’, ‘동이’ | 실용적 평가 多, 기술·기예 인정, 감정적 비난 적음 |
| 성호 이익 | ‘왜’, ‘동이(東夷)’, ‘오랑캐(夷)’ | 전통적 중화 질서 반영, 풍속·무력 중심 사회로 분석 |
📌 핵심 포인트
1. ‘오랑캐’ 표현은 비하라기보다 세계관적 분류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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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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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小中華(문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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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만주·몽골: 夷·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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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蠻
이런 식으로 분류하는 체계적 용어.
2. 두 사람 모두 일본을 “적개심”으로 보지 않았다
정약용은 기술을 인정하고, 성호는 제도를 분석하는 등
감정이 아니라 관찰로 평가하는 학자적 태도.
3. 일본 우익에서만 이 표현들을 ‘반일감정의 증거’로 과장함
실제 의미는 그와 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