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経済 PositiveNegativeFreeStyleArguments

▲ 産経新聞(産新聞) 2022年 8月 2日付け西中ストム(西岡 力) 教授コラム ‘日本 ‘性悪説(性悪説)’と争ったAbe(日本「性」とった安倍氏)’


※ 見た追悼文は日本産経新聞(産新聞)に 2022年 8月 2日付けで載せられた西中ストム(西岡 力) 教授の ‘日本 ‘性悪説(性悪説)’と争ったAbe(日本「性」とった安倍氏)’ 題下追悼文を西中教授の許諾を得て完訳掲載したのです. (翻訳 : Yasuhito中)



日本 ‘性悪説(性悪説)’と争ったAbe

(日本「性」とった安倍氏)



‘前後(戦後) レジーム’ 逆転


Abe信條の前受賞は戦う政治家だった. そうだから私は犯人が主体になってAbeが被害者という意味の “暗殺”という言葉はこれ以上使いたくない. Abeが主体になる ‘殉職(殉職)’という表現が適切だと見ている.


Abeは何と争って来たのか. 一口で言おうとすると ‘前後(戦後) レジーム’と争って来た. その闘いは人生をかけた激しくてしつこいのだった. ここに今度彼の殉職は ‘戦死(戦死)’だったと, 私は感じている.


Abeが争って来た ‘前後レジーム’と言う(のは)何か. さまざまな論議があり得るが, 私はそれを日本民族に対する ‘性悪説(性悪説)’と呼んでいる.


今年 5月にこのコーナーで出る日本憲法専門に書いている “日本国民は... 政府の行為による戦争惨禍が再び発生しないようにすることを決意(する)”に対して言及した. ここで “政府の行為”と言う(のは)私たち日本政府の行為を示すことだが, これをそのまま捨ておけば “慰安婦強制連行”, “南京大虐殺”のような悪い事がまた起るはずであり, 一方に私たち日本政府以外国家政府たちは “平和を愛する”, “公正(公正)と信義(信義)”を取り揃えているということがすぐ日本民族に対する ‘性悪説’だ. それでここに基盤して日本国憲法 9条 2項にも私たちの日本だけ全世界国々の中で唯一に陸海空全力を持つことを認めないと言う内容が堂堂と銘記されていることだと私は指摘した事がある.


平成 9年(1997年), Abeは再選の衆院議員だった若い政治家時代にNakagawa章一(中川昭一) さん, 江藤Seiichi(衛藤晟一) さんなど意を共にする他の議員とともに ‘日本の未来と歴史教育を思う若い議員たちの集まり(日本の前途と史育を考える若手議員の)’という自民党内部の議員同盟を結成した. そして毎週一番(回)ずつ総九回慰安婦問題に関する勉強の集まりを持って彼 (研究) 成果を本にまで出版した.


慰安婦問題と拉北問題解決に力をつくす


当時は日本政治家たちが慰安婦問題に対して論議すること自体が大きくタブーの時された時だ. 言論ではこの問題を論議しようとするこれらを置いて惨めな経験を強要された韓国女性たちの人権を侵害する “歴史修正主義者”, “極右主義者”というふうのかさぶたを付ける事もはびこった. しかし, Abe連中は一応慰安婦 ‘性奴隷派’の意見も聞きながらなによりもこの問題の事実関係が何なのかを明らかにして行っていた.


あの時Abeは “日本軍が従軍慰安婦という国家的制度で 朝鮮女性を多数強制連行して慰安婦にした”と言う当時多数意見が実は朝日新聞の捏造補もあぶよって広がった嘘だったのを明かした. そしてこの嘘とのけんかを畢生の事業で思った. それでヘイセイ 24年(2012年) 12月, 第2次Abe政権発足式の前の党首(党首) シンポジウムでAbeは朝日新聞記者の質問に対して “慰安婦問題はあなたたち朝日新聞がYoshidaセイジ(吉田治)という嘘つきの話を事実のようにまき散らしたゴッイザンヌか”と聞き返したりした.


平成 28年(2016年) 1月には, そのまさに私は海衣 12月に日韓慰安婦合意に関する日本国会返事で “(慰安婦問題に関して) 海外での圧力を含んで, 虚偽に基盤した誹謗重傷があることは事実です. ‘性奴隷’ または ‘20万名’と言う事実はないです... 政府としてそれは事実ではないということをはっきりと表明して行きたいです”という歴史的な返事をしたりした.


Abeと拉北問題の関係は平成超, ヨーロッパでよど号グループ(よどグルプ)によって 北朝鮮で拉致されたアリモト慶子(有本子) さんのご両親との出会いで始まった. Abeは, 慶子さんのお母さんであるカヨコさんが 2年前に逝去した時 “まだ私がお父さんの秘書をしている頃から話を聞いたし, 長年の期間どうしても慶子さんを取り戻そうとするに争って来ました”と言った事があるのに, 実際にその言葉とおりして来た.


当時(1988年度)に拉北問題を扱うということもやっぱり巨大なタブーに挑戦する事だった. 日本憲法に盛られた ‘私たち日本政府の動きだけ阻んでいれば戦争は起こらない’と言うふう既存日本民族に対する性悪説(性悪説)の観点で見たら, 外国政府が私たち日本国民を拉致する事は最初あることができない事だ. だから拉致は根拠ない音と言いながら無視しなさいという式の強い圧力が加えられる事だった.


そんなタブーに負けないでアリモト慶子さんご両親の訴えを真剣に聞き入れたことはあの時Abe信條が秘書に働いていたAbeShintaro(安倍晋太) 事務所だけだったことだ. 当時産経新聞以外のメスゴミ(マスコミ, ごみ言論)たちはこんな重大な事件に対しても事実なのが疑わしいとほとんど無視ばかりしていた.


タブーに命をかけて挑戦する


私はアリモト慶子さんに対する拉北問題が浮び上がった平成 3年(1991年), 一月刊誌に学者としては初めて日本人が拉致されているという論文を書いた. その頃政府関係者を含んだ専門家たちから “身近に危険はなかったんですか”と言うウリョソックである質のを受けた. 匿名で “殺してしまう”と言う脅迫状も受けた. 日本人学者が日本の雑誌に日本人が 北朝鮮によって拉致されていると書くことだけでも身近に危険が及ぶことを心配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のだ. このような大きいタブーにAbeは命をかけて挑戦を続いた. Abeの拉北問題での闘いについては, 彼が殉職した日夜に ‘家族回(家族)’と ‘救出回(救う)’で声明を出して業績を列挙したりしたので参考してくれてほしい.


Abeの闘いは言論と選挙に対したこともあった. 平成 14年(2002年), 小泉純一郎受賞の訪北を通じて日本国民の中に多い人々が拉北が事実だったのを分かるようになったしそれで早くから被害者救出に力をつくして来たAbeの国民的人気が急上昇した. あの時彼は党内(党内)に同志をふやすために仲間議員, 立候補予定者集まりにも骨を惜しまないで出た. 彼は難病をつけていながらもいずれにせよ選挙で勝つのが ‘前後レジームと争う道’とゴ−ルトルヒ思って来た. そんなAbeが選挙応援演説途中に被襲されて逝去した. ところで, 前後レジームに対する闘いの中での ‘殉職’だった. (西中ストム)



https://www.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56117


戰後질서를 부정하는 것은 중국이 아니라 닛폰입니다.

▲ 산케이신문(産経新聞) 2022년 8월 2일자 니시오카 쓰토무(西岡 力) 교수 칼럼 ‘일본 ‘성악설(性惡說)’과 싸웠던 아베(日本「性悪説」と戦った安倍氏)’


※ 본 추도글은 일본 산케이신문(産経新聞)에 2022년 8월 2일자로 게재된 니시오카 쓰토무(西岡 力) 교수의  ‘일본 ‘성악설(性惡說)’과 싸웠던 아베(日本「性悪説」と戦った安倍氏)’ 제하 추도글을 니시오카 교수의 허락을 얻어 완역게재한 것입니다. (번역 : 야스히토 안)



일본 ‘성악설(性惡說)’과 싸웠던 아베

(日本「性悪説」と戦った安倍氏)



‘전후(戰後) 레짐’ 뒤집기


아베 신조 전 수상은 싸우는 정치가였다. 그렇기에 나는 범인이 주체가 되고 아베가 피해자라는 의미의 "암살"이라는 말은 더 이상 쓰고 싶지 않다. 아베가 주체가 되는 ‘순직(殉職)’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아베는 무엇과 싸워왔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후(戰後) 레짐’과 싸워왔다. 그 투쟁은 인생을 건 격렬하고도 끈질긴 것이었다. 이에 이번 그의 순직은 ‘전사(戰死)’였다고, 나는 느끼고 있다.  


아베가 싸워왔던 ‘전후 레짐’이란 무엇인가. 여러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나는 그것을 일본 민족에 대한 ‘성악설(性惡說)’이라고 부르고 있다.


올해 5월에 이 코너에서 나는 일본 헌법 전문에 쓰여 있는 “일본 국민은... 정부의 행위로 인한 전쟁 참화가 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을 결의(한다)”에 대해 언급했었다. 여기서 “정부의 행위”란 우리 일본 정부의 행위를 가리키는 것인데, 이를 그냥 방치하면 “위안부 강제연행”, “난징대학살”과 같은 나쁜 일이 또 벌어질 것이며, 반면에 우리 일본 정부 이외 국가 정부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공정(公正)과 신의(信義)”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바로 일본 민족에 대한 ‘성악설’이다. 그래서 이에 기반하여 일본국 헌법 9조 2항에도 우리 일본만 전 세계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육해공 전력을 갖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는 내용이 버젓이 명기되어 있는 것이라고 나는 지적한 바 있다.


헤이세이 9년(1997년), 아베는 재선의 중의원 의원이었던 젊은 정치인 시절에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씨, 에토 세이이치(衛藤晟一) 씨 등 뜻을 같이 하는 다른 의원과 함께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들의 모임(日本の前途と歴史教育を考える若手議員の会)’이라는 자민당 내부의 의원동맹을 결성했다. 그리고 매주 한 번씩 총 아홉 차례 위안부 문제에 관한 공부모임을 갖고서 그 (연구) 성과를 책으로까지 출판했다.


위안부 문제와 납북 문제 해결에 힘쓰다


당시는 일본 정치인들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 논의하는 것 자체가 크게 터부시됐던 때다. 언론에서는 이 문제를 논의하려는 이들을 두고서 비참한 경험을 강요당한 한국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역사수정주의자”, “극우주의자”라는 식의 딱지를 붙이는 일도 만연했었다. 하지만, 아베 일행은 일단 위안부 ‘성노예파’의 의견도 들으면서 무엇보다도 이 문제의 사실관계가 무엇인지를 밝혀나가고 있었다.


그때 아베는 “일본군이 정신대라는 국가적 제도로 朝鮮여성을 다수 강제연행해서 위안부로 삼았다”고 하는 당시 다수 의견이 실은 아사히신문의 날조보도 등에 의해서 퍼진 거짓말이었음을 밝혀냈다. 그리고 이 거짓말과의 싸움을 필생의 사업으로 여겼다. 그래서 헤이세이 24년(2012년) 12월, 제2차 아베 정권 발족식 전의 당수(黨首) 토론회에서 아베는 아사히신문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위안부 문제는 당신들 아사히신문이 요시다 세이지(吉田清治)라는 거짓말쟁이의 이야기를 사실처럼 퍼뜨린 것이잖느냐”고 반문하기도 했었다.


헤이세이 28년(2016년) 1월에는, 그 바로 전 해의 12월에 일한위안부합의에 관한 일본 국회 답변에서 “(위안부 문제에 관하여) 해외에서의 압력을 포함하여, 허위에 기반한 비방중상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성노예’ 또는 ‘20만 명’이라고 하는 사실은 없습니다... 정부로서 그것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표명해나가고 싶습니다”라는 역사적인 답변을 하기도 했다.


아베와 납북 문제의 관계는 헤이세이 초, 유럽에서 요도호 그룹(よど号グループ)에 의해 北朝鮮으로 납치되었던 아리모토 케이코(有本恵子) 씨의 부모님과의 만남에서 시작됐다. 아베는, 케이코 씨의 어머니인 카요코 씨가 2년 전에 서거했을 때 “아직 내가 아버지의 비서를 하고 있을 무렵부터 이야기를 들었고, 오랜 기간 어떻게든 케이코 씨를 되찾아오고자 함께 싸워왔습니다”고 말했던 적이 있는데, 실제로 그 말 그대로 해왔다.


당시(1988년도)에 납북 문제를 다룬다는 것도 역시 거대한 터부에 도전하는 일이었다. 일본 헌법에 담긴 ‘우리 일본 정부의 움직임만 막고 있으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식 기존 일본 민족에 대한 성악설(性惡說)의 관점에서 본다면, 외국 정부가 우리 일본 국민을 납치하는 일은 애초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납치는 근거 없는 소리라며 무시하라는 식의 강한 압력이 가해질 일이었다.


그런 터부에 지지않고 아리모토 케이코 씨 부모님의 호소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던 것은 그때 아베 신조가 비서로 일하고 있던 아베 신타로(安倍晋太郎) 사무소 뿐이었던 것이다. 당시 산케이신문 이외의 매쓰고미(マスコミ, 쓰레기 언론)들은 이런 중대한 사건에 대해서도 사실임이 의심스럽다며 거의 무시만 하고 있었다.


터부에 목숨을 걸고 도전하다


나는 아리모토 케이코 씨에 대한 납북 문제가 떠올랐던 헤이세이 3년(1991년), 한 월간지에 학자로서는 처음으로 일본인이 납치되고 있다는 논문을 썼었다. 그 당시 정부 관계자를 포함한 전문가들로부터 “신변에 위험은 없었습니까”라고 하는 우려섞인 질의를 받았다. 익명으로 “죽여버린다”는 협박장도 받았었다. 일본인 학자가 일본의 잡지에 일본인이 北朝鮮에 의해 납치되고 있다고 쓰는 것만으로도 신변에 위험이 미칠 것을 걱정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큰 터부에 아베는 목숨을 걸고 도전을 계속했다. 아베의 납북 문제에서의 투쟁에 관해서는, 그가 순직한 날 밤에 ‘가족회(家族会)’와 ‘구출회(救う会)’에서 성명을 내고 업적을 열거하기도 했으므로 참고해주길 바란다.


아베의 투쟁은 언론과 선거에 대한 것도 있었다. 헤이세이 14년(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의 방북을 통해서 일본 국민 중에 많은 이들이 납북이 사실이었음을 알게 됐고 그래서 일찍부터 피해자 구출에 힘써왔던 아베의 국민적 인기가 급상승했다. 그때 그는 당내(黨內)에 동지를 늘리기 위해 동료의원, 입후보 예정자 모임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나갔다. 그는 난치병을 달고 있으면서도 어떻든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전후 레짐과 싸우는 길’이라고 골똘히 생각해왔다. 그런 아베가 선거 응원연설 도중에 피습당해 서거했다. 바로, 전후 레짐에 대한 투쟁 중에서의 ‘순직’이었다. (니시오카 쓰토무)



https://www.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56117



TOTAL: 2768806

番号 タイトル ライター 参照 推薦
3/31(水) パッチ内容案内させていただ… 관리자 2023-03-24 342976 19
2768806 日本沈沒 QingPirate 04:45 4 0
2768805 ワールドカップチケットを購買しま....... (3) 신사동중국인 04:23 47 0
2768804 japの特集報道 (^_^)/ RichCa21 04:21 41 0
2768803 福島桃お嬢さん (^_^)/ RichCa21 04:02 53 0
2768802 大騷ぎさん一番可愛い女子高生1位 (^_....... RichCa21 03:52 49 0
2768801 日本はUNESCO世界自然遺産が5件 JAPAV57 03:39 55 0
2768800 Kjclub 閉鎖運動本部. vnfmsrlt33 03:30 50 0
2768799 内モンゴル零下 -42度 (2) cris1717 01:51 68 0
2768798 立民・岡田氏“ネットの反応”に懸....... 春原次郎左衛門 01:51 73 0
2768797 ソ連スターリン彼の 2 息子に命令 cris1717 01:42 41 0
2768796 ソ連スターリンは都市近郊別荘ダチ....... cris1717 01:33 36 0
2768795 どうして列島自然は美しくないの? (2) cris1717 01:19 85 0
2768794 kj 日本人たちの学生時代映像持って....... (1) Computertop6 01:03 62 0
2768793 Wwwwwwwwwwwwwwwwwwwwwwwwww 신사동중국인 00:57 77 0
2768792 今日のくそ PrideOfChina 00:51 54 1
2768791 中国はタカ理が辞退するまで攻勢を....... (4) 신사동중국인 00:38 79 0
2768790 大便民国は「戦勝国」として認めら....... terara 00:29 76 0
2768789 深夜エロ bibimbap 00:27 57 0
2768788 カナダ経済省相韓国火薬オーシャン....... 신사동중국인 00:23 64 0
2768787 ビビンパの気質は朱蒙区とまったく....... (1) 신사동중국인 00:21 64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