百済が日本に七支刀を貢物として贈った理由ですが、日本書紀によると倭国が百済と共闘関係を結び、新羅を破ったからです。
倭国と百済は同盟関係にあった様ではありますが、日本書紀の記述を見る限りでは、百済は倭国に従属同盟を結んでいます。
神功皇后は新羅の珍奇な品を喜び、百済側は日本に軍事支援を願った様にも見えます。
日本書紀の神功皇后52年の秋九月十日に、百済に使者として行っていた千熊長彦が百済の久氐を従えて戻ってきました。
この時に、久氐は七支刀と七支鏡などの重宝を神功皇后に奉り、百済の近肖古王の言葉を伝えています。
日本書紀の記述によれば近肖古王は、孫の枕流王に「倭国のお陰で西に領地を得る事が出来た」と語り、貢物を絶やさぬ様にと述べています。
日本書紀の記述を見る限りでは、七支刀は倭国を百済の後ろ盾としたい百済の思惑があったとも言えるでしょう。
これが七支刀の日本に来た伝説となっています。
ただし、七支刀は史書に書かれており、七支刀自体が現存している事から、伝説ではなく史実ではないか?とも考えられています。
(쿠다라)백제가 일본에 칠지검을 공물로서 준 이유입니다만, 일본 서기에 의하면 야마토국이 (쿠다라)백제와 공투 관계를 묶어, 신라를 물리쳤기 때문에입니다.
야마토국과 (쿠다라)백제는 동맹 관계에 있던 님입니다만, 일본 서기의 기술을 보기로는, (쿠다라)백제는 야마토국에 종속 동맹을 맺고 있습니다.
진구 고고는 신라의 진기한 물건을 기쁨, (쿠다라)백제측은 일본에 군사 지원을 바란 님에도 보입니다.
일본 서기의 진구 고고 52년의 가을 9월10일에, (쿠다라)백제에 사자로서 가고 있던 천웅장언이 (쿠다라)백제의 구를 따르게 해 돌아왔습니다.
이 때에, 구는 칠지검과 7지경등의 귀중한 보물을 진구 고고에게 받들어, (쿠다라)백제의 근초고왕의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일본 서기의 기술에 의하면 근초고왕은, 손자의 침류왕에게 「야마토국의 덕분으로 서쪽으로 영지를 얻을 수가 있었다」라고 말해, 공물을 없애지 않는 님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 서기의 기술을 보기로는, 칠지검은 야마토국을 (쿠다라)백제의 후원자로 하고 싶은 (쿠다라)백제의 기대가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이것이 칠지검의 일본에 온 전설이 되어 지금?`키.
다만, 칠지검은 사서에 쓰여져 있어 칠지검 자체가 현존 하고 있는 일로부터, 전설은 아니고 사실이 아닌가?(이)라고도 생각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