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高麗時代: 高句麗継勝意識と “北進政策”
煮こもうとする国号から高句麗を受け継ぐという意味を盛ったし, 絶えず北方領土回復を試みました.
太祖王健の北進政策: 平壌を西経にして清川江流域まで領土を広げました.
尹館の東北 9性: 搖り返し族を追い出して咸境道一帯に 9個の城を積みました. (たとえ後で返したが, 積極的な攻勢でした.)
恭愍王の領土修復: 元国が衰退する時サングソングチォンググァンブを攻撃してチォルリョング以北の地を取り戻しました.
遼東征伐推進: 高麗末, 崔ヨン将軍は明の無理な要求に対立して李成桂に 遼東(Liaodong) 征伐を言い付けました. しかしこれは “威化島回軍”につながって朝鮮建国のきっかけになります.
2. 朝鮮時代: 領土拡張と “北伐論”
朝鮮は初期に領土を確定したし, 中期以後には恥辱を返すための “北伐”を論議しました.
世宗大王の 4だね 6陣: ツェユンドックとキム・ジョンソを送って鴨緑江と豆満江流域の搖り返し族を征伐して, 今日の韓半島国境線を定めました.
曉鐘の北伐論: 丙子胡乱の恥辱を返すために清を打とうという 北伐(Northern Expedition) 計画を立てました. 宋時烈などとともに軍事力を育てたが, 曉鐘の急な昇唖で実行に移すことはできなかったです.
肅宗と情調の意志: 以後にも清の情勢が心細い時度に遼東征伐や北方修復に対する論議が間歇的に起きました.
いつ属国だったというか?
1. 고려 시대: 고구려 계승 의식과 "북진 정책"
고려는 국호부터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담았고, 끊임없이 북방 영토 회복을 시도했습니다.
태조 왕건의 북진 정책: 평양을 서경으로 삼고 청천강 유역까지 영토를 넓혔습니다.
윤관의 동북 9성: 여진족을 몰아내고 함경도 일대에 9개의 성을 쌓았습니다. (비록 나중에 돌려주었지만, 적극적인 공세였죠.)
공민왕의 영토 수복: 원나라가 쇠퇴할 때 쌍성총관부를 공격해 철령 이북의 땅을 되찾았습니다.
요동 정벌 추진: 고려 말, 최영 장군은 명나라의 무리한 요구에 맞서 이성계에게 요동(Liaodong) 정벌을 명령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위화도 회군"으로 이어지며 조선 건국의 계기가 됩니다.
2. 조선 시대: 영토 확장과 "북벌론"
조선은 초기에 영토를 확정 지었고, 중기 이후에는 치욕을 갚기 위한 "북벌"을 논의했습니다.
세종대왕의 4군 6진: 최윤덕과 김종서를 보내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여진족을 정벌하고, 오늘날의 한반도 국경선을 확정했습니다.
효종의 북벌론: 병자호란의 치욕을 갚기 위해 청나라를 치자는 북벌(Northern Expedition) 계획을 세웠습니다. 송시열 등과 함께 군사력을 키웠으나, 효종의 갑작스러운 승하로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숙종과 정조의 의지: 이후에도 청나라의 정세가 불안할 때마다 요동 정벌이나 북방 수복에 대한 논의가 간헐적으로 일어났습니다.
언제 속국이었다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