腕レビー国王がアメリカの全幅的な支援をもらいながらもいざアメリカの後頭部を打つ **“1973年石油波動(Oil Shock)”**を主導した理由は, 彼が単純にアメリカの絡繰り人形ではない **”偉いペルシア帝国の復活”**を夢見た野心家だったからです.
彼が石油価格高騰を追いやった 4種決定的な理由を整理して上げます.
1. “偉い文明(Great Civilization)”の建設資金
腕レビー国王はイランを単純に産油国ではなく, 世界 5大強国で作るという巨大な計画を持っていました.
白色革命(White Revolution): 近代化加速のために道路, ダム, 工場を建てて文盲を退治するのに天文学的なお金が必要でした.
軍事的野心: 彼は中東の警察官になりたがりました. アメリカの最新武器(F-14 戦闘機など)を次から次へ買受けたが, このショッピングリストを手におえようとすれば石油価格が今より何倍はもっと高くなければならないと計算しました.
2. “石油は枯渇する資源”という恐怖
腕レビーは西欧列強が安値に石油を持って行って自分たちのお腹だけふやかすという強い不満を抱いていました.
価値再評価: “石油は貴い資源なのに, 水より安く売れている”と言うのが彼の論理でした.
彼は石油が枯渇する前に最大限高く売ってそのお金を産業基盤で置き変えるとイランの未来があると信じました. それで 1973年 OPEC 会議で価格に 4倍以上あげるのに一番先に立ちました.
3. アメリカに対する “対等なパートナー” 要求
腕レビーは自分がアメリカの下手人ではなく同等な同盟者で供応を受けるのを願いました.
彼は石油を武器にしてアメリカとヨーロッパがイランの政治的, 軍事的位相を認めるようにしようとしました.
”私が石油バルブを握っているから, これからアメリカも出して機嫌を伺わなければならない”と言う自信感が彼を独断的な決定に導きました.
4. 西欧デモクラシーに対する軽蔑
腕レビーは西欧のデモクラシーシステムが弱気だと思いました.
彼は石油波動で西欧経済がひょろひょろすることを見て, 強い 1人独裁体制であるイランがむしろ優越だということを証明したがりました.
当時キッシンジャーに **”あなたたちは食べ過ぎてあまり浪費する. これから対価を支払う時だ”**と一喝したエピソードは有名です.
結果: キッシンジャーの怒りと “ソンゾル”の手始め
腕レビーのこういう “傲慢”はアメリカ戦略家たちに深刻な警告燈をつけました.
経済的打撃: 石油波動でアメリカ国内物価が高騰と並んで油を入れる事態が起ると, アメリカ政治権は腕レビーを “統制不能の化け物”で見始めました.
戦略的修正: “言葉よく聞くサウジを育てて, 野心満満した腕レビーは取り替えなければならない”は冷酷な計算がこの時からキッシンジャーの頭の中で作動し始めたのです.
要約しようとすると, 腕レビーはイランを強大国で作るために石油という刀を振り回したが, 逆説的にその刃が自分を保護したアメリカの手を切り取ってしまったし, それが本人の沒落(イラン革命傍助)につながる口火になりました.
팔레비 국왕이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도 정작 미국의 뒤통수를 치는 **"1973년 석유 파동(Oil Shock)"**을 주도했던 이유는, 그가 단순히 미국의 꼭두각시가 아닌 **"위대한 페르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꿨던 야심가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석유 가격 폭등을 밀어붙였던 4가지 결정적인 이유를 정리해 드립니다.
1. "위대한 문명(Great Civilization)"의 건설 자금
팔레비 국왕은 이란을 단순히 산유국이 아니라, 세계 5대 강국으로 만들겠다는 거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백색혁명(White Revolution): 근대화 가속을 위해 도로, 댐, 공장을 짓고 문맹을 퇴치하는 데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했습니다.
군사적 야심: 그는 중동의 경찰관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미국의 최신 무기(F-14 전투기 등)를 닥치는 대로 사들였는데, 이 쇼핑 리스트를 감당하려면 석유 가격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높아야 한다고 계산했습니다.
2. "석유는 고갈되는 자원"이라는 공포
팔레비는 서구 열강이 싼값에 석유를 가져가서 자신들의 배만 불린다는 강한 불만을 품고 있었습니다.
가치 재평가: "석유는 고귀한 자원인데, 물보다 싸게 팔리고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습니다.
그는 석유가 고갈되기 전에 최대한 비싸게 팔아 그 돈을 산업 기반으로 바꿔놓아야 이란의 미래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1973년 OPEC 회의에서 가격을 4배 이상 올리는 데 가장 앞장섰습니다.
3. 미국에 대한 "대등한 파트너" 요구
팔레비는 자신이 미국의 하수인이 아니라 동등한 동맹자로 대접받길 원했습니다.
그는 석유를 무기로 삼아 미국과 유럽이 이란의 정치적, 군사적 위상을 인정하게 만들려 했습니다.
"내가 석유 밸브를 쥐고 있으니, 이제 미국도 내 눈치를 봐야 한다"는 자신감이 그를 독단적인 결정으로 이끌었습니다.
4.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경멸
팔레비는 서구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나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석유 파동으로 서구 경제가 휘청거리는 것을 보며, 강한 1인 독재 체제인 이란이 오히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당시 키신저에게 **"당신들은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낭비한다. 이제 대가를 치를 때다"**라고 일갈한 일화는 유명합니다.
결과: 키신저의 분노와 "손절"의 시작
팔레비의 이런 "오만함"은 미국 전략가들에게 심각한 경고등을 켰습니다.
경제적 타격: 석유 파동으로 미국 내 물가가 폭등하고 줄서서 기름을 넣는 사태가 벌어지자, 미국 정치권은 팔레비를 "통제 불능의 괴물"로 보기 시작했습니다.
전략적 수정: "말 잘 듣는 사우디를 키우고, 야심만만한 팔레비는 갈아치워야 한다"는 냉혹한 계산이 이때부터 키신저의 머릿속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팔레비는 이란을 강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석유라는 칼을 휘둘렀지만, 역설적으로 그 칼날이 자신을 보호하던 미국의 손을 베어버렸고, 그것이 본인의 몰락(이란 혁명 방조)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