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経済 PositiveNegativeFreeStyleArguments

当時朝鮮民衆の認識水準と近代的価値観の衝突を見せてくれる非常に鋭い地点です. 結論から申し上げれば, 1896年当時光化門に集まって石を投げた大多数の民衆に “民主, 人権, 共和”のような語彙は存在しなかったとか, 存在しても今とは全然違った意味で受け入れられました.


その理由と当時民衆の考え方を整理して上げます.


1. 言語の不在: “翻訳されない単語たち”

私たちが今使う近代的政治用語は大部分 19世紀末‾20世紀初日本と中国を経って漢字に翻訳されて入って来ました.


民主(民主), 共和(共和): 当時民衆に “民主”は “民が主人”という意味ではなく, 秩序を破壊する “無法状態”や “逆謨”と近いニュアンスでした. 朝鮮は 500年間 “賃金がすぐ国”である君主制国家だったからです.


自由(自由): 当時には “自分勝手にする放縦”に理解される場合が多かったです. “権利としての自由”という概念は兪吉濬の 《西遊見聞》 などを読んだ極少数インテリ層の専有物でした.


2. 民衆の論理: “性理学的正義(正義)”

民衆たちがキム・ホンジッブに石を投げた根拠は “人権染躪”や “デモクラシー破壊”ではなかったです. 彼らは **性理学的秩序(三綱五倫)**を基準と判断しました.


断髪令 = 親不孝(不孝): 身体髪膚収支親(身体髪膚 受之父母)を破ったことは人間の根本を忘れたけだものの行為でした.


乙未事変 = 不忠(不忠): 国のお母さんである国母を守ることができなかった臣下は死んで適当な “逆賊”でした.


彼らの怒り: “私の自由をくれ”ではなく, **”人なら当然に守らなければならない道理を倭人たちの岡っ引きになって破ったからお前は人ではない”**という論理でした.


3. 文明(文明)に対する視覚差

当時キム・ホンジッブのような開化派たちが思った “文明”はおかっぱ, 洋服, 鉄道, 郵便局など西欧式システムでした. しかし民衆にこれは **”野蛮(日本/西欧)に汚染したこと”**引き継ぎました.


民衆は朝鮮の伝統と儒教的礼法を維持するのが真の “文明(貴重化)”と信じました.


したがってキム・ホンジッブの “文明化政策”は民衆には **”朝鮮を野蛮化しようとする陰謀”**路見えたのです.


4. 独立協会の登場と認識の転換 (1896年以後)

皮肉としか言いようがなくもキム・ホンジッブが殺害されたすぐその年(1896年), ソ・ジェピルなどによって独立協会が創立されながら初めて民衆たちに “民権(民権)”, “自由”, “独立”という単語が普及され始めました.


万民共動会で民たちが演説し始めながら “私たちも声を出す権利がある”と言う認識が芽ぐみました.


しかしキム・ホンジッブが死んだ瞬間の光化門群衆は相変らず “忠孝(忠孝)”という伝統的正義感に支配受けていたのです.


要約

当時民衆たちは “人権”が分からなかったからもっと激しく石を投げることができました. 彼らにキム・ホンジッブは “政策を過ち便政治家”ではなく, **天倫(親)とジリュン(賃金)を皆忘れた “悪魔”**であったからです. 彼らは自分たちの行為を “野蛮”ではない, **”正義のある断罪”**と固く信じました.


1896 조선 민중들이 총리대신에게 돌을 던진 이유

당시 조선 민중의 인식 수준과 근대적 가치관의 충돌을 보여주는 매우 날카로운 지점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1896년 당시 광화문에 모여 돌을 던졌던 대다수의 민중에게 "민주, 인권, 공화"와 같은 어휘는 존재하지 않았거나, 존재했더라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이유와 당시 민중의 사고방식을 정리해 드립니다.


1. 언어의 부재: "번역되지 않은 단어들"

우리가 지금 쓰는 근대적 정치 용어들은 대부분 19세기 말~20세기 초 일본과 중국을 거쳐 한자로 번역되어 들어왔습니다.


민주(民主), 공화(共和): 당시 민중에게 "민주"는 "백성이 주인"이라는 뜻이 아니라, 질서를 파괴하는 "무법 상태"나 "역모"와 가까운 뉘앙스였습니다. 조선은 500년간 "임금이 곧 나라"인 군주제 국가였기 때문입니다.


자유(自由): 당시에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방종"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권리로서의 자유"라는 개념은 유길준의 《서유견문》 등을 읽은 극소수 인텔리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2. 민중의 논리: "성리학적 정의(正義)"

민중들이 김홍집에게 돌을 던진 근거는 "인권 유린"이나 "민주주의 파괴"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성리학적 질서(삼강오륜)**를 기준으로 판단했습니다.


단발령 = 불효(不孝):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를 어긴 것은 인간의 근본을 저버린 짐승의 행위였습니다.


을미사변 = 불충(不忠): 나라의 어머니인 국모를 지키지 못한 신하는 죽어 마땅한 "역적"이었습니다.


그들의 분노: "내 자유를 달라"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왜놈들의 앞잡이가 되어 깨뜨렸으니 너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논리였습니다.


3. 문명(文明)에 대한 시각 차이

당시 김홍집과 같은 개화파들이 생각한 "문명"은 단발, 양복, 철도, 우체국 등 서구식 시스템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중에게 이것은 **"야만(일본/서구)에 오염된 것"**이었습니다.


민중은 조선의 전통과 유교적 예법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문명(소중화)"이라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김홍집의 "문명화 정책"은 민중에게는 **"조선을 야만화하려는 음모"**로 보였던 것입니다.


4. 독립협회의 등장과 인식의 전환 (1896년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김홍집이 살해된 바로 그해(1896년), 서재필 등에 의해 독립협회가 창립되면서 비로소 민중들에게 "민권(民權)", "자유", "독립"이라는 단어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만민공동회에서 백성들이 연설하기 시작하면서 "우리도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싹텄습니다.


하지만 김홍집이 죽던 순간의 광화문 군중은 여전히 "충효(忠孝)"라는 전통적 정의감에 지배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약

당시 민중들은 "인권"을 몰랐기에 더 격렬하게 돌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김홍집은 "정책을 잘못 편 정치인"이 아니라, **천륜(부모)과 지륜(임금)을 모두 저버린 "악마"**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야만"이 아닌, **"의로운 단죄"**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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