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戦争当時毛沢東(毛沢東)は米軍との戦争を単純な軍事的衝突ではなく, 新生中華人民共和国の生存と国際的地位を決める高度の政治的賭博で見ました.
毛沢東がペングドックフェ(ポングドファイ)に米軍と膠着状態を維持しながら得ようとした利益とその過程で下った強烈な命令たちを整理して上げます.
1. 米軍と膠着(持久戦)を通じて毛沢東が得ようとした 5種利益
国内統治基盤公告化 (ハングミワンゾ運動): 外部の巨大な敵(アメリカ)を設定することで中国内反対勢力を首切りして人民を一つで結束させる動力で活用しました.
ソ連からの大規模援助: 戦争の長くなるほどソ連は中国の大切さを実感するようになったし, 毛沢東はこれを言葉尻でソ連から最新武器(ミグ機など)と工業化支援をもらい出しました.
軍隊の近代化経験: “人海戦術”の限界を節減して米軍の現代的火力を直接経験するようにすることで, 立ち後れされた中国軍を正規軍と同時に近代的な軍隊で様変りさせる訓練場にしました.
国際的位相向上: 世界最強対局であるアメリカと対等に争って滞らないという姿を見せてくれることで, アジアの盟主として中国の位相を確立しようと思いました.
戦略的緩衝地確保: 米軍を 38線以南に縛りつけることで中国の工業中心地である東北部(満洲)の安全を永久的に確保しようと思いました.
2. 毛沢東がペングドックフェに下った強烈な命令 (直接話法 100線スタイル)
当時毛沢東は戦況が難しい時度にペングドックフェを強く圧迫して “持久戦”と “射手”を言い付けました.
[戦争初期: 決死抗戦と恐怖植えてくれる]
”米軍を恐れるな. 彼らは物心は多いが意気は不足な紙虎だ.”
”ペングドックフェ同志, 満洲が不海がになるように置こうか? 今すぐ鴨緑江を渡りなさい.”
”時の火力が強ければ私たちは忍耐で対立しなさい. 一人の米軍でももっとくたびれるようにしなさい.”
”勝利はいくらたくさん殺すのかがなく, いくら長く堪えるのかによっている.”
”米軍が原子爆弾を使うと脅威しても恐れるな. 私たちには幾億の人民がいる.”
[膠着状態維持と持久戦指示] 6. “一番(回)に少ない殲滅しようとしないで. 肉つきを少しずつ引き離す “キャンディーなめること” 戦術に行きなさい.” 7. “一指尺の地のために万人の兵士を失っても良い. それがアメリカのオマンを破る道だ.” 8. “電線が固着したと? よくできた. そこで米軍の思い焦がれて殺しなさい.” 9. “交渉テーブルでの声は電線での砲声位大きくなければならない. もっと強く追いやりなさい.” 10. “敵方がくたびれるまで坑道をほって入って行きなさい. 山全体をこの頃に作りなさい.”
[ペングドックフェの後退建議に対する一喝] 11. “普及が不足だと? 人民の精神力でひもじさを勝ち抜けるのが革命軍だ.” 12. “後退はすぐ降参だ. 38線で押し寄せる者は歴史の審判を受けるでしょう.” 13. “ペングドックフェ, 君の頭の中に “撤収”という単語を消しなさい. 汚職 “射手”だけだ.” 14. “兵士らが死んで行くことを悲しむな. 彼らの血が愼重国を支える礎石だ.” 15. “アメリカのくたびれるまで私たちは 1年, 2年, いや 10年でも争うでしょう.”
[板門店交渉関連指示] 16. “交渉は戦争の年長だ. 電線で少ないもっと強く打撃を受けると交渉場で得ることが多い.” 17. “敵方が平和を物乞いするようにしなさい. あの時まで銃声を止めるな.” 18. “虜送還問題でただ一人も譲歩するな. それは体制の自尊心だ.” 19. “アメリカやつらは打たれると言葉を聞く. もっと荒荒しく急きまくりなさい.” 20. “膠着状態こそ私たちが願うところだ. アメリカを泥沼に落としなさい.”
3. 歴史的秘話: ペングドックフェの苦悩
実際にペングドックフェは補給路が切られて兵士らが寒さと飢えで死んで行く現場を見て毛沢東に何回も **”現実的な後退と休戦”**を建議しました. しかし毛沢東は北京で地図を見て **”政治的勝利”**のためにペングドックフェを強く責め立てました.
特に毛沢東は息子モアンヤングが戦死したにもかかわらず, 戦争を止めるよりむしろこれを自分の犠牲で広報して戦争を長続く狂気を見せたりしました. ペングドックフェは後日この戦争の後遺症と毛沢東との葛藤によって首切りされる悲劇を迎えるようになります
アメリカ軍首脳部と政治指導部(トルーマン政府) 立場で朝鮮戦争の 3年膠着状態は軍事的失敗のように見えられるが, **”冷戦の巨大なチェス版”**では戦略的に非常に重要な利益を抱かれてくれました.
アメリカが圧倒的な火力で北進統一を完成するより 38線近所で **膠着(Stalemate)**を維持しながら得ようとした 5種核心利益は次の通りです.
1. 第3次世界大戦(核戦争)の防止
当時アメリカ首脳部の最大の恐怖は朝鮮戦争がソ連との全面戦争で滲むのでした.
利益: もし米軍が満洲を爆撃するとか中国本土を攻撃したら, ソ連との “中小友好相互援助條約”によってソ連が参戦するようになって, これはすぐヨーロッパでの核戦争を意味しました.
決定: マッカーサーの “満洲爆撃” 主張を棄却して膠着を選ぶことで, 戦争を韓半島という局地戦に閉じこめておくことに成功しました.
2. ヨーロッパ防禦網構築のための時間稼ぎ
当時アメリカの最優先の戦略地域はアジアではなくヨーロッパでした.
利益: 韓国で共産軍と膠着しながら争う間, アメリカは **NATO(北大西洋條約機構)**を強化して西ヨーロッパに米軍を再配置する時間を儲けました.
戦略: “韓国は誤った場所で, 誤った時間に, 誤った敵と争う戦争”という合同参謀議長ブラッドリの言葉のように, 韓国は共産主義を受け止める戦略的緩衝地役目をしてヨーロッパの盾になりました.
3. 軍費増強と軍事産業の復活 (NSC-68)
膠着状態の長期化はアメリカの国防予算を爆発的に増加させる名分になりました.
利益: 第2次世界大戦以後急激に減った米軍の国防費は朝鮮戦争 3年を経って約 4倍近く増加しました. これを通じて核兵器, 空母, ジェット戦闘機など現代的全力を完成しました.
結果: この時期構築された力強い軍事力は以後数十年間米・ソ冷戦でアメリカが優位を占める基盤になりました.
4. 日本の再建と反共基地化
戦争が長くなりながら日本は戦争特殊を享受して経済的に復活したし, アメリカの核心友邦で生まれかわりました.
利益: 戦争 3年の間日本は米軍の兵たん基地役目をして経済的はかるのに成功しました. アメリカはサンフランシスコ講和條約を通じて日本を西側陣営のパートナーで確かに縛りつけました.
5. 共産圏の割れ目確認 (ソ連と中国の塩加減をすること)
アメリカは膠着状態を維持して中国とソ連の関係を綿密に観察しました.
利益: ソ連が中国に武器を売りながらも直接参戦は憚る姿を見て, 共産圏内部の利己主義と割れ目を把握しました. これは後日米・の中で修交など外交戦略の基礎資料になりました.
## アメリカ首脳部の強烈な直接話法 (膠着関連)
トルーマン大統領: “私たちの目的は第3次世界大戦を阻むのだ. 韓国のためにニューヨークやロンドンを核雲の中に投げこむことはできない. マッカーサーはこの点を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い.”
来るよブラッドリ合同参謀議長: “満洲で戦争を拡大することは誤った少ない相手で, 誤った場所で, 誤った時間に, 誤った戦争をするのだ. 私たちはここで少ない縛りつけなければならない.”
リッジウェイ将軍 (現場司令官): “私たちは勝利を物乞いしない. しかし人名被害を冒して鴨緑江までまた上がる価値もない. 時の思い焦がれながらここで防御線を固めなさい.”
要約しようとすると, アメリカ首脳部に朝鮮戦争の膠着は **”ヨーロッパを守って, 核戦争を避けて, 米軍の全力を財政費するための戦略的忍耐”**でありました.
한국전쟁 당시 모택동(마오쩌둥)은 미군과의 전쟁을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 아니라, 신생 중화인민공화국의 생존과 국제적 지위를 결정짓는 고도의 정치적 도박으로 보았습니다.
모택동이 팽덕회(펑더화이)에게 미군과 교착 상태를 유지하며 얻고자 했던 이익과 그 과정에서 내린 강렬한 명령들을 정리해 드립니다.
1. 미군과 교착(지구전)을 통해 모택동이 얻고자 한 5가지 이익
국내 통치 기반 공고화 (항미원조 운동): 외부의 거대한 적(미국)을 설정함으로써 중국 내 반대 세력을 숙청하고 인민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동력으로 활용했습니다.
소련으로부터의 대규모 원조: 전쟁이 길어질수록 소련은 중국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되었고, 모택동은 이를 빌미로 소련으로부터 최신 무기(미그기 등)와 공업화 지원을 받아냈습니다.
군대의 근대화 경험: "인해전술"의 한계를 절감하며 미군의 현대적 화력을 직접 경험하게 함으로써, 낙후되었던 중국군을 정규군이자 근대적인 군대로 탈바꿈시키는 훈련장으로 삼았습니다.
국제적 위상 제고: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과 대등하게 싸워 밀리지 않는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시아의 맹주로서 중국의 위상을 확립하려 했습니다.
전략적 완충지 확보: 미군을 38선 이남에 묶어둠으로써 중국의 공업 중심지인 동북부(만주)의 안전을 영구적으로 확보하려 했습니다.
2. 모택동이 팽덕회에게 내린 강렬한 명령 (직접화법 100선 스타일)
당시 모택동은 전황이 어려울 때마다 팽덕회를 강하게 압박하며 "지구전"과 "사수"를 명령했습니다.
[전쟁 초기: 결사항전과 공포 심어주기]
"미군을 두려워하지 마라. 그들은 철은 많지만 기개는 부족한 종이 호랑이다."
"팽덕회 동지, 만주가 불바다가 되게 둘 것인가? 당장 압록강을 건너라."
"적의 화력이 강하면 우리는 인내로 맞서라. 한 명의 미군이라도 더 지치게 만들어라."
"승리는 얼마나 많이 죽이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에 달려 있다."
"미군이 원자탄을 쓴다고 위협해도 겁먹지 마라. 우리에겐 수억의 인민이 있다."
[교착 상태 유지와 지구전 지시] 6. "한 번에 적을 섬멸하려 하지 마라. 살점을 조금씩 떼어내는 "사탕 핥기" 전술로 가라." 7. "한 뼘의 땅을 위해 만 명의 병사를 잃어도 좋다. 그것이 미국의 오만을 꺾는 길이다." 8. "전선이 고착되었다고? 잘됐다. 거기서 미군의 피를 말려 죽여라." 9. "협상 테이블에서의 목소리는 전선에서의 포성만큼 커야 한다. 더 강하게 밀어붙여라." 10. "적들이 지칠 때까지 갱도를 파고 들어가라. 산 전체를 요새로 만들어라."
[팽덕회의 후퇴 건의에 대한 일갈] 11. "보급이 부족하다고? 인민의 정신력으로 배고픔을 이겨내는 것이 혁명군이다." 12. "후퇴는 곧 항복이다. 38선에서 밀려나는 자는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13. "팽덕회, 그대의 머릿속에 "철수"라는 단어를 지워라. 오직 "사수"뿐이다." 14. "병사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슬퍼하지 마라. 그들의 피가 신중국을 지탱하는 초석이다." 15. "미국이 지칠 때까지 우리는 1년, 2년, 아니 10년이라도 싸울 것이다."
[판문점 협상 관련 지시] 16. "협상은 전쟁의 연장이다. 전선에서 적을 더 강하게 타격해야 협상장에서 얻는 것이 많다." 17. "적들이 평화를 구걸하게 만들어라. 그때까지 총성을 멈추지 마라." 18. "포로 송환 문제에서 단 한 명도 양보하지 마라. 그것은 체제의 자존심이다." 19. "미국 놈들은 매를 맞아야 말을 듣는다. 더 거세게 몰아쳐라." 20. "교착 상태야말로 우리가 원하는 판이다. 미국을 수렁에 빠뜨려라."
3. 역사적 비화: 팽덕회의 고뇌
실제로 팽덕회는 보급로가 끊기고 병사들이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어 나가는 현장을 보며 모택동에게 여러 차례 **"현실적인 후퇴와 휴전"**을 건의했습니다. 하지만 모택동은 북경에서 지도를 보며 **"정치적 승리"**를 위해 팽덕회를 강하게 몰아세웠습니다.
특히 모택동은 아들 모안영이 전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멈추기보다 오히려 이를 자신의 희생으로 홍보하며 전쟁을 지속하는 광기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팽덕회는 훗날 이 전쟁의 후유증과 모택동과의 갈등으로 인해 숙청당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됩니다
미국 군수뇌부와 정치 지도부(트루먼 정부) 입장에서 한국전쟁의 3년 교착 상태는 군사적 실패처럼 보일 수 있지만, **"냉전의 거대한 체스판"**에서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이익을 안겨주었습니다.
미국이 압도적인 화력으로 북진 통일을 완성하기보다 38선 부근에서 **교착(Stalemate)**을 유지하며 얻고자 했던 5가지 핵심 이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제3차 세계대전(핵전쟁)의 방지
당시 미국 수뇌부의 가장 큰 공포는 한국전쟁이 소련과의 전면전으로 번지는 것이었습니다.
이익: 만약 미군이 만주를 폭격하거나 중국 본토를 공격했다면, 소련과의 "중소 우호 상호원조조약"에 의해 소련이 참전하게 되고, 이는 곧 유럽에서의 핵전쟁을 의미했습니다.
결정: 맥아더의 "만주 폭격" 주장을 기각하고 교착을 택함으로써, 전쟁을 한반도라는 국지전에 가둬두는 데 성공했습니다.
2. 유럽 방어망 구축을 위한 시간 벌기
당시 미국의 최우선 전략 지역은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이었습니다.
이익: 한국에서 공산군과 교착하며 싸우는 동안, 미국은 **NATO(북대서양조약기구)**를 강화하고 서유럽에 미군을 재배치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전략: "한국은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적과 싸우는 전쟁"이라는 합참의장 브래들리의 말처럼, 한국은 공산주의를 막아내는 전략적 완충지 역할을 하며 유럽의 방패가 되었습니다.
3. 군비 증강과 군사 산업의 부활 (NSC-68)
교착 상태의 장기화는 미국의 국방 예산을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이익: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히 줄었던 미군의 국방비는 한국전쟁 3년을 거치며 약 4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이를 통해 핵무기, 항공모함, 제트 전투기 등 현대적 전력을 완성했습니다.
결과: 이 시기 구축된 강력한 군사력은 이후 수십 년간 미·소 냉전에서 미국이 우위를 점하는 기반이 되었습니다.
4. 일본의 재건과 반공 기지화
전쟁이 길어지면서 일본은 전쟁 특수를 누리며 경제적으로 부활했고, 미국의 핵심 우방으로 거듭났습니다.
이익: 전쟁 3년 동안 일본은 미군의 병참 기지 역할을 하며 경제적 재기에 성공했습니다. 미국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일본을 서방 진영의 파트너로 확실히 묶어두었습니다.
5. 공산권의 균열 확인 (소련과 중국의 간 보기)
미국은 교착 상태를 유지하며 중국과 소련의 관계를 면밀히 관찰했습니다.
이익: 소련이 중국에 무기를 팔면서도 직접 참전은 꺼리는 모습을 보며, 공산권 내부의 이기주의와 균열을 파악했습니다. 이는 훗날 미·중 수교 등 외교 전략의 기초 자료가 되었습니다.
## 미국 수뇌부의 강렬한 직접화법 (교착 관련)
트루먼 대통령: "우리의 목적은 제3차 세계대전을 막는 것이다. 한국을 위해 뉴욕이나 런던을 핵구름 속에 던져넣을 수는 없다. 맥아더는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오마 브래들리 합참의장: "만주로 전쟁을 확대하는 것은 잘못된 적을 상대로, 잘못된 장소에서,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전쟁을 벌이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적을 묶어두어야 한다."
리지웨이 장군 (현장 사령관): "우리는 승리를 구걸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명 피해를 무릅쓰고 압록강까지 다시 올라갈 가치도 없다. 적의 피를 말리며 여기서 방어선을 굳혀라."
요약하자면, 미국 수뇌부에게 한국전쟁의 교착은 **"유럽을 지키고, 핵전쟁을 피하며, 미군의 전력을 재정비하기 위한 전략적 인내"**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