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成皇后を弑害した一名 “乙未事変(1895年)”は日本工事 三浦梧樓の指揮の下日本軍人, 警察, そして 浪人(ロニン) 集団が結託してやらかした蛮行です.
当時景福宮屋号塁に乱入して直接的に弑害に加わった核心浪人たちは主に知識人層や新聞記者出身の極右浪人団体会員たちでした.
核心加担者名簿
弑害に加わった人物は数十人に達するが, 記録を通じて確認された主要人物たちは次の通りです.
- 三浦梧樓 (三浦 梧): 当時鋳造船日本工事で, 作戦の総責任者と同時に背後操縦者です.
- Adachiゲンゾ (安逹 謙): 浪人たちの動員と組職を担当した人物で, 後日日本内閣の長官(内相)まで勤めました.
- 岡本リュノ−スするように (岡本 柳之助): 日本公使館副官出身で, 現場指揮を引き受けました.
- グニトモしげあき (国友 重章): 明成皇后の寝室に一番先に乱入した人物の中で一つに指目されます.
- デラサキヤスズミ (寺崎 泰吉): グニトモとともに直接弑害に加わった核心浪人です.
事件以後の状況
日本政府は国際的な非難が激しくなるとこれらを本国で呼び入れて広島裁判所で裁判を進行しました. しかし結果的に ”証拠不十分”を理由で加担者 48人全員を釈放しました. これは日本政府が組織的にこの事件を隠蔽して加担者たちを保護したことを見せてくれる書き入れ時です.
参照: 最近日本の一歴史研究者によって当時加担者が使った刀である **”ヒゼント”**が日本神社に保管されているという事実が知られて今一度公憤を買ったりしました.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명 "을미사변(1895년)"은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의 지휘 아래 일본 군인, 경찰, 그리고 낭인(로닌) 집단이 결탁하여 저지른 만행입니다.
당시 경복궁 옥호루에 난입하여 직접적으로 시해에 가담한 핵심 낭인들은 주로 지식인층이나 신문 기자 출신의 극우 낭인 단체 회원들이었습니다.
핵심 가담자 명단
시해에 가담한 인물은 수십 명에 달하지만, 기록을 통해 확인된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미우라 고로 (三浦 梧楼): 당시 주조선 일본 공사로, 작전의 총책임자이자 배후 조종자입니다.
- 아다치 겐조 (安達 謙蔵): 낭인들의 동원과 조직을 담당한 인물로, 훗날 일본 내각의 장관(내상)까지 지냈습니다.
- 오카모토 류노스케 (岡本 柳之助): 일본 공사관 부관 출신으로, 현장 지휘를 맡았습니다.
- 구니토모 시게아키 (國友 重章): 명성황후의 침실에 가장 먼저 난입한 인물 중 하나로 지목됩니다.
- 데라사키 야스즈미 (寺崎 泰吉): 구니토모와 함께 직접 시해에 가담한 핵심 낭인입니다.
사건 이후의 상황
일본 정부는 국제적인 비난이 거세지자 이들을 본국으로 불러들여 히로시마 재판소에서 재판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가담자 48명 전원을 석방했습니다. 이는 일본 정부가 조직적으로 이 사건을 은폐하고 가담자들을 보호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참고: 최근 일본의 한 역사 연구가에 의해 당시 가담자가 사용했던 칼인 **"히젠토"**가 일본 신사에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다시금 공분을 사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