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シマズ家門の公式記録 <事煩球技(薩摩球技)>の描写
が記録にはノリャン海戦当時シマズYoshihiroの倍加 **”賊船(朝鮮及び明水軍)に包囲されてコムチァックダルサックすることができない危機に処した”**その明示されています.
特に彼の息子のように大事にした甥シマズドヨヒサと家門の重臣たちがYoshihiroを脱出させるために代わりに戦死したという書き入れ時が出ます.
お腹があまりにも多く破損されてYoshihiroが違うお腹で乗り換えながら逃げ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緊迫な状況も記録されています.
2. 血なまぐさい生存率 (数字の証拠)
戦争が終わって日本に帰った人数を見れば課長ではではなければが分かります.
シマズ軍はノリャン海戦に約 1万人以上の兵力を投入したが, 暮して日本に帰った人員は数千人に過ぎなかったです. 艦船も 500余ぽんと中わずか 50余尺だけ収まって帰りました.
辞令官給人士が全体兵力の 80‾90%を失って本人だけやっとすり抜けて来た状況を置いて “やっと命だけ引き上げた”と表現することは非常に客観的な技術です.
3. 日本学界の視覚
現代日本の歴史学者たちもノリャン海戦でのシマズYoshihiroの退却を **”惨めな敗北”**路規定します. たとえ小西ユキナがを脱出させることに成功したのか分からなくても, その対価でシマズ家門の精鋭病と全力が事実上潰滅水準の打撃を受けたからです.
4. どうして日本はこんな記録を残しただろうか?
日本大名たちに壬辰の乱は “自分たちが願って一戦争”というより “秀吉の命令によって無理やりに参戦した戦争”の性格が強かったです.
したがって戦争後自分たちが経験した苦痛と被害を詳しく記録して **”私たちがこんなに大きい犠牲を支払った”**はことを家門内部と後代に知らせる必要があったのです.
結論的に, シマズ家門の記録に現われた惨状は韓国側記録と交差検証をして見ても一致する部分が非常に多くて, 決して誇張された表現ではないです.
1. 시마즈 가문의 공식 기록 <사번구기(사쓰마 구기)>의 묘사
이 기록에는 노량해전 당시 시마즈 요시히로의 배가 **"적선(조선 및 명나라 수군)에 포위되어 꼼짝달싹할 수 없는 위기에 처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특히 그의 아들처럼 아꼈던 조카 시마즈 도요히사와 가문의 중신들이 요시히로를 탈출시키기 위해 대신 전사했다는 대목이 나옵니다.
배가 너무 많이 파손되어 요시히로가 다른 배로 갈아타며 도망쳐야 했던 긴박한 상황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2. 참혹한 생존율 (숫자의 증거)
전쟁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간 인원수를 보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시마즈 군은 노량해전에 약 1만 명 이상의 병력을 투입했으나, 살아서 일본으로 돌아간 인원은 수천 명에 불과했습니다. 함선 또한 500여 척 중 겨우 50여 척만 수습해 돌아갔습니다.
사령관급 인사가 전체 병력의 80~90%를 잃고 본인만 겨우 빠져나온 상황을 두고 "겨우 목숨만 건졌다"고 표현하는 것은 매우 객관적인 기술입니다.
3. 일본 학계의 시각
현대 일본의 역사학자들도 노량해전에서의 시마즈 요시히로의 퇴각을 **"비참한 패배"**로 규정합니다. 비록 고니시 유키나가를 탈출시키는 데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그 대가로 시마즈 가문의 정예병과 전력이 사실상 궤멸 수준의 타격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4. 왜 일본은 이런 기록을 남겼을까?
일본 다이묘들에게 임진왜란은 "자신들이 원해서 한 전쟁"이라기보다 "히데요시의 명령에 의해 억지로 참전한 전쟁"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따라서 전쟁 후 자신들이 겪은 고통과 피해를 상세히 기록하여 **"우리가 이만큼 큰 희생을 치렀다"**는 것을 가문 내부와 후대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시마즈 가문의 기록에 나타난 참상은 한국 측 기록과 교차 검증을 해봐도 일치하는 부분이 매우 많으며,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