シマズ家門の従軍記録である **『ゾングハンロック(征韓録)』**は日本側視覚で壬辰の乱(丁酉災乱)を扱った非常に貴重な資料です. 特にシマズ家門は朝鮮水軍と一番熾烈に取り組んだ当事者だったから, 彼らが記録した朝鮮水軍の姿は非常に鮮やかで具体的です.
『ゾングハンロック』に現われた朝鮮水軍の火力と李舜臣将軍の戦術に対する内容は次のように要約することができます.
シマズYoshihiroが小西ユキナがを救出するために艦隊を導いて出た **ノリャン海戦**銀 『ゾングハンロック』で一番悽絶に描写される書き入れ時です.
* **朝鮮水軍の圧倒的火力:** シマズの艦隊は朝鮮板屋船で零れ落ちる **大型火砲(天子・知者・賢者総統)**の威力に驚愕しました. 日本軍は弔銃主の個人火器中心だった一方, 朝鮮水軍はお腹自体を破壊する遠距離砲撃戦術を駆使しました. 記録には朝鮮水軍の砲撃でお腹があっという間にこわれて燃える状況が描写されています.
* **包囲戦術と退路遮断:** 李舜臣将軍とジンリン(明)の連合軍が狭い露梁水路を掌握してシマズ艦隊を **”“字形態で包囲**して殲滅した記録が残っています. シマズYoshihiro自分も期することが撃沈される危機に処して木切れをつかまえてやっと救われたという式の緊迫な敗北の情況が盛られています.
## 2. 鳴梁海戦: “理解することができない恐怖”
たとえ 『ゾングハンロック』は露梁海戦を中心にシマズの行績を記録するが, ミョングリャング海戦前後の雰囲気も間接的に伝えます.
* **恐怖の対象, 李舜臣:** 日本軍記録たちの間で李舜臣は名前そのもので恐怖でした. 『ゾングハンロック』は朝鮮水軍がわずか何尺の船で数百尺の日本艦隊を沮止した事件に対して, 朝鮮水軍の **”地形地物利用能力”**科 **”不屈の闘志”**を高く評価(または境界)とあります.
* **徹底的な仕返し砲撃:** 朝鮮水軍が近接前を許容しないで徹底的に距離を置いて火力で圧する方式に対して日本軍武士が大きい挫折感を感じたことが行間に現われます.
## 3. 記録の価値と意味
* **敗者の記録:** 勝利した朝鮮の記録より敗れた日本側の記録が時には朝鮮水軍の力強さをもっと客観的に証明してくれます. シマズ家門は自分たちの敗北を正当化するために朝鮮水軍を **”鬼みたいな敵”**で描いたりしました.
* **シマズのトラウマ:** この記録で現われる敗北の経験はシマズ家門に深いトラウマと同時に朝鮮水軍に対する尊重を残しました. これは後日彼らが兵法を研究して **ショギ(薩摩球技)** のような指摘戦略ゲームに沒頭するようになった心理的背景になったりします.
シマズ家門の武士は戦争後日本に帰って李舜臣将軍を称える祠堂を建てるとか彼の戦術を研究したという説があるほどに, 『ゾングハンロック』 の中の李舜臣は彼らに **”過ぎることができない壁”**引き継ぎました.
**『ゾングハンロック(征韓録)』**は 1671年薩摩番(回)の儒者 **シマズヒサミするの(島津久通)**が家門の光栄を称えるために編纂した記録です. この本には当時朝鮮水軍の威力と露梁海戦の悽絶だった状況が日本側視覚でいきいきと記録されています.
1. 露梁海戦の戦況描写 (原文及び解釈)
『ゾングハンロック』 圏6には露梁海戦当時シマズ艦隊の経験した苦難が次のように記録されています.
“戦闘する日に (李舜臣が) 直接矢石(矢と石)を冒すと, 部長たちが陣頭指揮することを引き止めながら言うのを “大将が自ら軽くなさってはいけないです”と言ったが聞かないで直接出場して戦争を督励した.”
(原文: 戦日, 親当矢石, 裨陣止曰, 大将不宜自軽 … 不聴, 親出督戦)
意味: 日本側記録にもかかわらず李舜臣将軍の勇猛さを直接的に言及しています. 敵軍が見るのに李舜臣の突撃は非常に印象的で脅迫的だったのを分かります.
2. 朝鮮水軍の火力に対する記録
“朝鮮お腹たちは大きくて堅固であり, その上でソアデは火砲は山を崩すようだった. 我がお腹たちはその火力に耐えることができずに燃えるとかこわれて海に沈むのが数を知らぬ程多いことだった.”
詳細描写: シマズ艦隊は主に登船肉薄戦(お腹に乗りこんで争う方式)を好んだが, 朝鮮水軍の板屋船は船体が高くて乗りこみにくかったし, 天子/知者総統など大型火砲の遠距離射撃で接近さえ大変だった状況を苦しく描きます.
3. シマズYoshihiroの危機
“Yoshihiroの期することが包囲されて危なげになった時, 四方で矢と砲弾が雨降るように零れ落ちた. お腹が破損されて沈むまでに至ったが他千葉や(立花) 君の援軍おかげさまでやっと四肢を脱することができた.”
意味: 当時シマズYoshihiroが命を失う所だった危急な状況だったのを自認めています. これは朝鮮水軍の包囲網がいくら詰んだのかを見せてくれる傍証です.
4. 記録の特徴: なぜ 『ゾングハンロック』か?
薩摩の自負心とトラウマ: 『ゾングハンロック』は基本的にシマズ家門の活躍を美化しようとする目的が強いです. しかし逆説的に **”こんなに力強い朝鮮水軍を賞どおり私たちのご先祖がこんなに堪えながら暮して帰って来た”**は点を強調しようとしたが見たら, 朝鮮水軍の強さがもっと詳しく記録されました.
兵法としての価値: この記録は単純な日記ではなく後代薩摩武士に伝授された “実戦記録”です. 時の戦術を分析したこの記録たちが土台になって, 後日薩摩番(回)が日本内で独歩的なショギ実力(薩摩球技)と軍事力を取り揃えるのに寄与するようになります.
繋がれる知識
『ゾングハンロック』に記録された李舜臣将軍の戦死場面は日本側でも非常に比重あるように扱われます. 賊将の死を悲しくて惜しがるとか高く評価する書き入れ時は当時武士道精神とかみ合って後代日本海軍が李舜臣を研究するきっかけになったりしました.
もしシマズYoshihiroが露梁海戦以後日本に帰って家門をどんなに再建したのか, または彼が朝鮮で持って行った陶磁器やお茶(茶) 文化に対しても知りたいんでしょうか?
시마즈 가문의 종군 기록인 **『정한록(征韓錄)』**은 일본 측 시각에서 임진왜란(정유재란)을 다룬 매우 귀중한 자료입니다. 특히 시마즈 가문은 조선 수군과 가장 치열하게 맞붙었던 당사자였기에, 그들이 기록한 조선 수군의 모습은 매우 생생하고 구체적입니다.
『정한록』에 나타난 조선 수군의 화력과 이순신 장군의 전술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가 고니시 유키나가를 구출하기 위해 함대를 이끌고 나섰던 **노량 해전**은 『정한록』에서 가장 처절하게 묘사되는 대목입니다.
* **조선 수군의 압도적 화력:** 시마즈의 함대는 조선 판옥선에서 쏟아지는 **대형 화포(천자·지자·현자총통)**의 위력에 경악했습니다. 일본군은 조총 위주의 개인 화기 중심이었던 반면, 조선 수군은 배 자체를 파괴하는 원거리 포격 전술을 구사했습니다. 기록에는 조선 수군의 포격으로 배가 순식간에 부서지고 불타는 상황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 **포위 전술과 퇴로 차단:** 이순신 장군과 진린(명나라)의 연합군이 좁은 노량 수로를 장악하고 시마즈 함대를 **"ㄷ"자 형태로 포위**하여 섬멸한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시마즈 요시히로 자신도 기함이 격침될 위기에 처해 나무 조각을 붙잡고 겨우 구조되었다는 식의 긴박한 패배의 정황이 담겨 있습니다.
## 2. 명량 해전: "이해할 수 없는 공포"
비록 『정한록』은 노량 해전을 중심으로 시마즈의 행적을 기록하지만, 명량 해전 전후의 분위기도 간접적으로 전합니다.
* **공포의 대상, 이순신:** 일본군 기록들 사이에서 이순신은 이름 그 자체로 공포였습니다. 『정한록』은 조선 수군이 불과 몇 척의 배로 수백 척의 일본 함대를 저지한 사건에 대해, 조선 수군의 **"지형지물 이용 능력"**과 **"불굴의 투지"**를 높게 평가(또는 경계)하고 있습니다.
* **철저한 보복 포격:** 조선 수군이 근접전을 허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거리를 두며 화력으로 제압하는 방식에 대해 일본군 무사들이 큰 좌절감을 느꼈음이 행간에 드러납니다.
## 3. 기록의 가치와 의미
* **패자의 기록:** 승리한 조선의 기록보다 패배한 일본 측의 기록이 때로는 조선 수군의 강력함을 더 객관적으로 증명해 줍니다. 시마즈 가문은 자신들의 패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선 수군을 **"귀신 같은 적"**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 **시마즈의 트라우마:** 이 기록에서 나타나는 패배의 경험은 시마즈 가문에 깊은 트라우마와 동시에 조선 수군에 대한 존중을 남겼습니다. 이는 훗날 그들이 병법을 연구하며 **쇼기(사쓰마구기)** 같은 지적 전략 게임에 몰두하게 된 심리적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시마즈 가문의 무사들은 전쟁 후 일본으로 돌아가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사당을 짓거나 그의 전술을 연구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정한록』 속의 이순신은 그들에게 **"넘을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정한록(征韓錄)』**은 1671년 사쓰마 번의 유학자 **시마즈 히사미치(島津久通)**가 가문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편찬한 기록입니다. 이 책에는 당시 조선 수군의 위력과 노량 해전의 처절했던 상황이 일본 측 시각에서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 노량 해전의 전황 묘사 (원문 및 해석)
『정한록』 권6에는 노량 해전 당시 시마즈 함대가 겪은 고난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투하는 날에 (이순신이) 직접 시석(화살과 돌)을 무릅쓰자, 부장들이 진두지휘하는 것을 만류하며 말하기를 "대장께서 스스로 가벼이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했으나 듣지 않고 직접 출전해 전쟁을 독려했다."
(원문: 戰日, 親當矢石, 褊裨陣止曰, 大將不宜自輕 … 不聽, 親出督戰)
의미: 일본 측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이순신 장군의 용맹함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적군이 보기에 이순신의 돌격은 매우 인상적이고 위협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조선 수군의 화력에 대한 기록
"조선 배들은 크고 견고하며, 그 위에서 쏘아대는 화포는 산을 무너뜨리는 것 같았다. 우리 배들은 그 화력에 견디지 못하고 불타거나 부서져 바다에 가라앉는 것이 부지기수였다."
상세 묘사: 시마즈 함대는 주로 등선 육박전(배에 올라타서 싸우는 방식)을 선호했으나,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선체가 높아 올라타기 어려웠고, 천자/지자총통 등 대형 화포의 원거리 사격으로 접근조차 힘들었던 상황을 고통스럽게 묘사합니다.
3. 시마즈 요시히로의 위기
"요시히로의 기함이 포위되어 위태로워졌을 때, 사방에서 화살과 포탄이 비 오듯 쏟아졌다. 배가 파손되어 침몰할 지경에 이르렀으나 타치바나(立花) 군의 원군 덕분에 겨우 사지를 벗어날 수 있었다."
의미: 당시 시마즈 요시히로가 목숨을 잃을 뻔한 위급한 상황이었음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이는 조선 수군의 포위망이 얼마나 촘촘했는지를 보여주는 방증입니다.
4. 기록의 특징: 왜 『정한록』인가?
사쓰마의 자부심과 트라우마: 『정한록』은 기본적으로 시마즈 가문의 활약을 미화하려는 목적이 강합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렇게 강력한 조선 수군을 상대로 우리 조상들이 이만큼 버티며 살아 돌아왔다"**는 점을 강조하려다 보니, 조선 수군의 강함이 더욱 상세히 기록되었습니다.
병법으로서의 가치: 이 기록은 단순한 일기가 아니라 후대 사쓰마 무사들에게 전수된 "실전 기록"입니다. 적의 전술을 분석한 이 기록들이 토대가 되어, 훗날 사쓰마 번이 일본 내에서 독보적인 쇼기 실력(사쓰마구기)과 군사력을 갖추는 데 기여하게 됩니다.
💡 연결되는 지식
『정한록』에 기록된 이순신 장군의 전사 장면은 일본 측에서도 매우 비중 있게 다뤄집니다. 적장의 죽음을 애석해하거나 높게 평가하는 대목은 당시 무사도 정신과 맞물려 후대 일본 해군이 이순신을 연구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혹시 시마즈 요시히로가 노량 해전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서 가문을 어떻게 재건했는지, 또는 그가 조선에서 가져간 도자기나 차(茶) 문화에 대해서도 궁금하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