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一番目でよく見ることは朝鮮立木誌の変化振り子と質的特性に対するのだ. <図 6>は 1927‾1943年間山林率の変化推移を見せてくれる. 李偶然の指摘どおり林野面積で立木誌の占める面積は 1927‾1935年間急激に増加するがその成り行きは 1935年まででその後は維持または減少した. 李偶然の主張どおり 1942年まで臨床が持続的に改善したのではなく成り行きが 1927‾1935年に限定されたのだ.も彼の言葉通り 1910‾1942年間 82オックボンの苗木が韓半島林野の 14.5%にあたる面積に植えられたにも 1935年以後立木誌の面積は停滞されて林木蓄積はますます減少した.
評価時期の 1927‾1943年の間林木の年間生長量以上に用材を生産して林木蓄積量は減少したしその結果毎年山林資源は減った. 同期間林木の年間生長量以上に燃料用材を使ったし産業用材の生産量も同期間二つの倍以上増加した. また 1927‾1943年の間の林木生長量に比べて総 54百万〓, 年平均 339万〓義用材が超過生産されたがこの羊は同じ期間朝鮮山林の林木蓄積減少量 63百万〓義 86%にあたった.
一方朝鮮山林の持続性は前期間民間の家庭用燃料用材消費量が大きい影響を及ぼした. 1926年朝鮮臨時政府計画樹立以後産業用材生産量の持続的な増加も山林の持続性に否定的影響を及ぼしたし, 1937年以後には木材と木炭が重要な展示資材に編入されるによって激増した展示資材需要が民間の家庭用燃料用材消費より林木蓄積減少にもっと大きい影響を及ぼした.
統計で見られるように 1927‾1943年の間朝鮮の山林資源は減少成り行きだった. 具体的に林野面積は 1.2%(198千ha), 林木蓄積は 23%(63百万〓)が減った. 同期間林木の年間生長量備え 134%の伐採が成り立って山林の持続性は大きく毀損された. 例外的に立木誌面積は 1927‾1935年間大きく増加したが以後は維持または低い割合の減少成り行きで切り替えた. 朝鮮総督府は植民地である北海道, 禾太, 台湾に比べて貧弱な山林資源を保有した朝鮮のこのような山林問題を認識していた. したがって 1927年朝鮮の平均林木蓄積 16.7〓/情報が端的に言ってくれるように朝鮮の山林政策は残っている山林を保護して荒廃された山林を復旧する山林資源の造成と育成政策が必要だった.
しかし朝鮮総督府は 1926年朝鮮臨時政府計画を樹立して山林歳入を確保するために国有林の伐採量をふやした. 国有林をズングボルして増えた山林財源の一部を民有林の造成と保護に投入して 1927‾1935年間立木誌増加を根拠で 1942年まで総督府の政策が朝鮮の山林録画に寄与したという李偶然の評価は山林資源の減少と持続性の毀損, 環境的に価値が高いヤングガング流域の天然林減少をそっぽを向いたという側面で均衡を失った. 朝鮮総督府山林政策の中心には国有林, 特に鴨緑江と豆満江流域の国有林があった. 朝鮮総督府は天恵の環境資源を空しく腐って消える対象で扱って計画されたズングボルを越してグァボルハだった. その結果 1927‾1943年間咸境道と平北の林木蓄積は 36%が減少したしその中咸鏡南道は 16年という短期間に林木蓄積の半分が消えた.
朝鮮後期には家庭用オンドル使用の拡大による燃料用材消費増加で人々が居住する周辺山林が荒廃されたら日帝の時はそれさえも残っていたヤングガング流域の天然林が切られた. 朝鮮総督府は朝鮮の貧弱な山林資源を充分に認識したにも山林歳入拡大と展示資材供給のために過度な伐採をしたからだ.
https://book.nifos.go.kr/&/10213/contents/5815890
末年に行っては総督府でも山河が限界に至ったが今のために準悲恨と思って生産量をふや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評価するが..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조선 입목지의 변화 추이와 질적 특성에 대한 것이다. <그림 6>은 1927~1943년간 산림률의 변화 추이를 보여준다. 이우연의 지적대로 임야면적에서 입목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1927~1935년간 급격히 증가하나 그 추세는 1935년까지이며 그 이후는 유지 또는 감소했다. 이우연의 주장대로 1942년까지 임상이 지속적으로 개선된 것이 아니라 추세가 1927~1935년에 한정된 것이다. 또한 그의 말대로 1910~1942년간 82억본의 묘목이 한반도 임야의 14.5%에 해당하는 면적에 심어졌음에도 1935년 이후 입목지의 면적은 정체되고 임목축적은 갈수록 감소하였다.
평가 시기인 1927~1943년 동안 임목의 연간 생장량 이상으로 용재를 생산하여 임목축적량은 감소하였고 그 결과 매년 산림자원은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임목의 연간생장량 이상으로 연료용재를 사용하였으며 산업용재의 생산량 역시 같은 기간 두 배 이상 증가하였다. 또한 1927~1943년 동안의 임목 생장량에 비해 총 54백만㎥, 연평균 339만㎥의 용재가 초과 생산되었는데 이 양은 같은 기간 조선 산림의 임목축적 감소량 63백만㎥의 86%에 해당하였다.
한편 조선 산림의 지속성은 전 기간 민간의 가정용 연료용재 소비량이 큰 영향을 미쳤다. 1926년 조선임정계획 수립 이후 산업용재 생산량의 지속적인 증가 역시 산림의 지속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으며, 1937년 이후에는 목재와 목탄이 중요한 전시자재로 편입됨에 따라 격증한 전시자재 수요가 민간의 가정용 연료용재 소비보다 임목축적 감소에 더 큰 영향을 미쳤다.
통계에서 볼 수 있듯이 1927~1943년 동안 조선의 산림자원은 감소 추세였다. 구체적으로 임야면적은 1.2%(198천ha), 임목축적은 23%(63백만㎥)가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임목의 연간 생장량 대비 134%의 벌채가 이루어져 산림의 지속성은 크게 훼손되었다. 예외적으로 입목지 면적은 1927~1935년간 크게 증가하였으나 이후는 유지 또는 낮은 비율의 감소 추세로 전환하였다. 조선총독부는 식민지인 북해도, 화태, 대만에 비해 빈약한 산림자원을 보유한 조선의 이러한 산림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1927년 조선의 평균 임목축적 16.7㎥/정보가 단적으로 말해주듯이 조선의 산림정책은 남아 있는 산림을 보호하고 황폐된 산림을 복구하는 산림자원의 조성과 육성 정책이 필요하였다.
그러나 조선총독부는 1926년 조선임정계획을 수립하고 산림세입을 확보하기 위하여 국유림의 벌채량을 늘렸다. 국유림을 증벌하여 늘어난 산림재원의 일부를 민유림의 조성과 보호에 투입하고 1927~1935년간 입목지 증가를 근거로 1942년까지 총독부의 정책이 조선의 산림녹화에 기여하였다는 이우연의 평가는 산림자원의 감소와 지속성의 훼손, 환경적으로 가치가 높은 양강 유역의 천연림 감소를 외면하였다는 측면에서 균형을 잃었다. 조선총독부 산림정책의 중심에는 국유림, 특히 압록강과 두만강 유역의 국유림이 있었다. 조선총독부는 천혜의 환경자원을 헛되이 썩어 없어질 대상으로 취급하고 계획된 증벌을 넘어 과벌하였다. 그 결과 1927~1943년간 함경도와 평북의 임목축적은 36%가 감소하였고 그 중 함경남도는 16년이라는 단기간에 임목축적의 반이 사라졌다.
조선후기에는 가정용 온돌 사용의 확대로 인한 연료용재 소비 증가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주변 산림이 황폐되었다면 일제 때는 그나마 남아있던 양강 유역의 천연림이 베어졌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빈약한 산림자원을 충분히 인식하였음에도 산림 세입 확대와 전시자재 공급을 위하여 과도한 벌채를 하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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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년에 가서는 총독부에서도 山河가 한계에 이르렀지만 지금을 위해 준비한거라고 생각하고 생산량을 늘려야한다고 평가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