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日本人が描写しておいた 白村江の戦闘
白村江の戦闘がまるで 唐の陸軍と水軍が全部集まって日本と対決したことのように描いている.

しかし歴史の真実は日本は団地高句麗と唐の対決中, 高句麗勢力の下に参戦したことに過ぎなかった.
日本軍は唐の主力である陸軍とは遭遇したこともないし, 唐の陸軍が日本軍で向けたこともなくて, 日本軍が遭遇した 唐の水軍は, 水軍の中でも少数に過ぎないいち部隊だった.
真実はこのようなことにも日本人は唐と日本の大大的な対決だったように捏造して印象操作したかったのだ.



白村江の戦闘で日本軍と戦った唐の武将,
唐水軍大将 「劉仁軌」と書いている.
日本側は, 倭軍 総大将 中大兄皇子(天智天皇)と書いている.
唐水軍大将 「劉仁軌」
日本が相対した唐の武将が, まるで唐水軍全体の大将だったように書いておいた.
しかし真実はどうかな.
当時唐水軍(14道行軍)の本当に大将(大総管)は,
従1品 上柱国〓国公 「蘇定方」だった.
唐水軍には 「蘇定方」 以外にも,
「劉仁軌」より上位の武将はとても多かった.
日本が相対した唐の武将 「劉仁軌」はどの位置にあっただろうか.
「劉仁軌」は元々水軍の輸送担当だったが,
白村江の戦闘当時には無能に罷職されて補職解任状態だったし,
上官だった 正4品 左衛中郎将 「王文度」が不在して代行を引き受けたことだけだった.
要するに日本が相対したことは陸軍の補助だった水軍の大将の部下の部下の代行.
唐水軍の主力を相対したことは高句麗だ.
唐水軍の 大総管 「蘇定方」は高句麗軍に敗退して唐で脱出する.
唐陸軍の 大総管 「〓孝泰」, 大総管 「程名振」, 大総管 「任雅相」を含んだ, その旗下陸軍武将たちは高句麗軍に敗れてつかまって殺される.
しかし日本の総力は唐の水軍の中でも下級武将の中で一つに過ぎなかった 「劉仁軌」に潰滅されて敗退する.
日本人に残念だが真実はこれだ.




↑
일본인이 묘사 해놓은 白村江의 전투
白村江의 전투가 마치 唐의 육군과 수군이 전부 모여서 일본과 대결했던것 처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의 진실은 일본은 단지 고구려와 당나라의 대결 중, 고구려 세력하로 참전했던 것에 불과했다.
일본군은 唐의 주력인 육군과는 조우한적도 없으며, 唐의 육군이 일본군으로 향한적도 없고, 일본군이 조우했던 唐의 수군은, 수군 중에서도 소수에 불과한 일개 부대였다.
진실은 이러한 것임에도 일본인은 당나라와 일본의 대대적인 대결이었던 것처럼 날조하여 인상조작 하고 싶었던 것이다.



白村江의 전투에서 일본군과 싸운 당나라의 무장,
唐水軍大將 「劉仁軌」라고 쓰여있다.
일본 쪽은, 왜군 總대장 中大兄皇子(天智天皇)라고 쓰여있다.
唐水軍大將 「劉仁軌」
일본이 상대했던 당나라의 무장이, 마치 당나라 수군 전체의 대장이었던 것처럼 써놨다.
하지만 진실은 어떨까.
당시 당나라 수군(14道行軍)의 진짜 대장(大총관)은,
從1品 上柱國邢國公 「蘇定方」이었다.
당나라 수군에는 「蘇定方」 이외에도,
「劉仁軌」보다 상위의 무장은 굉장히 많았다.
일본이 상대했던 당나라의 무장 「劉仁軌」는 어느 위치에 있었을까.
「劉仁軌」는 원래 수군의 수송 담당이었지만,
白村江의 전투 당시에는 무능으로 파직되어 보직해임 상태였으며,
상관이었던 正4品 左衛中郞將 「王文度」이 부재하여 대행을 맡은 것 뿐이었다.
요컨대 일본이 상대했던 것은 육군의 보조였던 수군의 대장의 부하의 부하의 대행.
당나라 수군의 주력을 상대했던 것은 고구려이다.
당나라 수군의 大총관 「蘇定方」은 고구려군에 패퇴하여 당나라로 탈출한다.
당나라 육군의 大총관 「龐孝泰」, 大총관 「程名振」, 大총관 「任雅相」을 포함한, 그 휘하 육군 무장들은 고구려군에 패해 붙잡혀 죽임을 당한다.
하지만 일본의 총력은 당나라의 수군 중에서도 하급 무장 중 하나에 불과했던 「劉仁軌」에 궤멸되어 패퇴한다.
일본인에게 유감이지만 진실은 이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