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秘録大東亜戦史 朝鮮篇」森高高雄編 (1953年出版)

「三八線に変貌する北と南-朝鮮引揚史 その三-」
朝鮮人側の民族感情は、非常にきびしく、京城で前警察関係者でテロにあうものもでていた。米軍も憂慮して、エンダース外事課長は「日本人が一カ所に集結すればMPで保護する」とまでいっていた。
襲撃を恐れて引揚を躊躇していた日本人もぞくぞく引揚げるようになっていた。
昭和二十年末の南鮮日本人は、二万八千余となっていた。
帰りたくないものは帰らなくてもよいであろうという漠然たる甘い考えは、敗戦国たる日本人に許されないことが、だんだんわかってきた。
マッカーサー司令部は「外地にいる日本人は、全部強制的に本国に帰還せしめる」とはっきり断言した。
ロス中尉の健闘
そのころ外事課の日本人送出指揮官ロス中尉の健闘ぶりは、当時の世話会会報につぎのごとく記されている。送出指揮官ロス中尉は、二十九日午後一時から世話会の係員とともに、在留日本人引揚勧誘のため、ジープをもって大和町から黄金町、新堂町、竹添町、北米倉町、吉野町、古市町、竜山(りゅうざん)世話会、永登浦町(えいとほちょう)、とオープンのジープで、疾駆すること三時間半、町会を通じて、「日本人はすべて一月三十一日までに、引揚登録を日本人世話会に届けでて出発の準備をなさい」とつたえた。
そばによってきた子供達に自分のポケットからチューインガムを出してあたえ「チューインガムはのみこんではいけない」と注意する。
ロス中尉は、引揚列車の車輛から車輛へ、掃除のこと、荷物の整頓のこと、人の乗込みのことなど心こまやかに気を配ってまわり、汽車が出発して最後の車輛の姿がみえなくなるまでホームに立って日本人を見送り、ようやくジープに引返すという。
出発当日は、全員ホームに整列し、見送りの米軍司令官チーヴス将軍および軍政庁将校を前にして、”さらば仁川よ”を二回繰返し、歌いつつみな泣いた。

日本人の子供たちに声をかけるロス中尉
終戦後、朝鮮半島では日本人に対する集団暴行が過激化して、前警察関係者を狙った対日テロまで発生した。
その日本人へ頻発した暴力事件のあまりの酷さに憂慮した米軍のエンダース外事課長は「日本人が一カ所に集結すればMPで保護する」と決定した。ついこの間まで敵だった日本人を米軍が朝鮮人から保護する、という奇妙な状態となった。
仁川を占領した米軍に日本人送出指揮官ロス中尉は、ジープで仁川中を走りまわって日本人を探し、朝鮮からの引揚げを勧告して回った。ロス中尉は日本人の子供たちに会えばチューインガムを与え、保護した日本人が引揚げる日には朝鮮人に襲撃されないよう、引揚げ列車が出発する竜山駅まで米軍が護送して朝鮮人から守った。そして日本人を引揚げ列車に乗せると「ロス中尉は、引揚列車の車輛から車輛へ、掃除のこと、荷物の整頓のこと、人の乗込みのことなど心こまやかに気を配ってまわり、汽車が出発して最後の車輛の姿がみえなくなるまでホームに立って見送り、ジープに引返した」
仁川を出発する日、日本人たちは全員ホームに整列して見送りの米軍司令官チーヴス将軍および軍政庁将校、米軍政庁の将校たちに感謝文を読みあげ、贈物をし、”さらば仁川よ”という歌を泣きながら歌ったとのこと。
この手記は、日本人を殺しまくり強姦しまくった凶悪な朝鮮人から保護してくれたロス中尉や米軍への感謝を綴った手記となっている。
「비록 대동아 전사 조선편」모리타카 타카오편 (1953년 출판)

「38선에 변모하는 북쪽과 남한국인양사 그 3」
한국인측의 민족 감정은, 매우 어렵고, 경성에서 전 경찰 관계자로 테러에 맞는 것도 나오고 있었다.미군도 우려하고, 엔다스 외사과장은 「일본인이 1개소에 집결하면 MP로 보호한다」라고까지 말하고 있었다.
습격을 무서워해 인양을 주저 하고 있던 일본인도 오싹오싹 인양같게 되어 있었다.
쇼와 20년말의 남선일본인은, 2만8천여가 되고 있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돌아가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라고 하는 막연한 허튼 생각은, 패전국인 일본인에 용서되지 않는 것이, 점점 알아 왔다.
막카서 사령부는 「외지에 있는 일본인은, 전부 강제적으로 본국에 귀환 하게 한다」라고 분명히 단언했다.
로스 중위의 건투
그 당시 외사과의 일본인 송출 지휘관 로스 중위의 건투상은, 당시의 도움회 회보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다.송출 지휘관 로스 중위는, 29일 오후 1시부터 도움회의 관계자와 함께, 재류 일본인 인양 권유 때문에, 지프를 가지고 타이와쵸에서 코가네쵸, 신도우쵸, 타케첨 마치, 북미 쿠라마치, 요시노쵸, 후루이치쵸, 타츠야마(자리응) 도움회, 영등포마을(있어 나비), 라고 오픈의 지프로, 찬`세구 하는 것 3시간반, 반상회를 통해서, 「일본인은 모두 1월 31일까지, 인양 등록을 일본인 도움회에 보내 나와 출발의 준비를 없음 있어」라고 전했다.
곁에 들러 온 아이들에게 자신의 포켓으로부터 추잉껌을 꺼내 내려 「추잉껌은 삼켜 안 된다」라고 주의한다.
로스 중위는, 인양 열차의 차량으로부터 차량에, 청소, 짐의 정돈, 사람의 승포함등 마음 세심하게 배려해 주위, 기차가 출발해 마지막 차량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홈에 서서 일본인을 보류해, 간신히 지프에 인 돌려준다고 한다.
출발 당일은, 전원 홈에 정렬해, 전송의 미군 사령관 치브스 장군 및 군정청장교를 앞에 두고,"안녕히 인천이야"를 2회 반복, 노래하면서 모두 울었다.

일본인의 아이들에게 얘기하는 로스 중위
종전 후, 한반도에서는 일본인에 대한 집단 폭행이 과격화하고, 전 경찰 관계자를 노린 대일 테러까지 발생했다.
그 일본인에 빈발한 폭력 사건의 너무나 가혹함 우려한 미군의 엔다스 외사과장은 「일본인이 1개소에 집결하면 MP로 보호한다」라고 결정했다.바로 이전까지 적이었던 일본인을 미군이 한국인으로부터 보호한다, 라고 하는 기묘한 상태가 되었다.
인천을 점령한 미군에 일본인 송출 지휘관 로스 중위는, 지프로 인천중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일본인을 찾아, 조선으로부터의 인양를 권고해 돌았다.로스 중위는 일본인의 아이들을 만나면 추잉껌을 주어 보호한 일본인이 인양일에는 한국인에 습격되지 않게, 인양열차가 출발하는 용산역까지 미군이 호송하고 한국인으로부터 지켰다.그리고 일본인을 인양열차에 실으면 「로스 중위는, 인양 열차의 차량으로부터 차량에, 청소, 짐의 정돈, 사람의 승포함등 마음 세심하게 배려해 주위, 기차가 출발해 마지막 차량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홈에 서서 전송해, 지프에 인 돌려주었다」
인천을 출발하는 날, 일본인들은 전원 홈에 정렬해 전송의 미군 사령관 치브스 장군 및 군정청장교, 미군 정청의 장교에 감사문을 읽고 선물을 해,"안녕히 인천이야"라고 하는 노래를 울면서 노래했다는 것.
이 수기는, 일본인을 마구 죽여 마구 강간한 흉악한 한국인으로부터 보호해 준 로스 중위나 미군에의 감사를 쓴 수기가 되고 있다.

